[작가와의 만남] 갈매기처럼 세계를 마주하기… 첫 산문집 내놓은 박설희 시인
세 편의 시집에 이은 첫 산문집…‘틈이 있기에 숨결이 나부낀다’
“세차게 부는 바람에 떠밀려 가지 않으려고 그 갈매기는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었다.”(‘틈이 있기에 숨결이 나부낀다’ 中 ‘충혈’, 박설희)
한 시인이 내놓은 첫 산문집 속 담담하게 새겨진 글자에서 그가 지향하는 세계가 엿보인다. 박설희 시인(58)은 앞으로 자신의 문학 세계를 형상화하는 데 있어 한 마리의 갈매기에 자신을 투영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바람이 매섭게 불었던 어느 겨울, 그가 화성시 궁평항에서 맞닥뜨린 건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고고한 자태로 바람을 버텨내는 갈매기의 모습이었다. 쉼 없이 흘러가는 세상의 흐름 속에서 닻을 내린 듯 거센 바람을 고고히 온몸으로 받아내는 한 마리의 갈매기 말이다.
지난 2일 출간된 그의 산문집 ‘틈이 있기에 숨결이 나부낀다’는 갈매기와의 만남을 다뤘던 ‘충혈’로 시작한다. 박 시인은 고심 끝에 책의 입구에 ‘충혈’을 배치했다. 바람을 버티고 바다를 맞서며 세계를 응시하는 갈매기를 닮고 싶다는 그는 이번 산문집 발간을 계기로 마음 한구석에 두려움과 설렘이 함께 피어났다고 고백했다. 적절히 숨기거나 감추면서 조절할 수 있는 시와 다르게 산문을 쓸 때는 숨을 곳이 없기 때문이다. 어느정도 정제된 시어에서 벗어나는 순간, 그의 세계관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평소 품었던 생각들이 독자들에게 고스란히 드러나는 셈이다.
평소 사람들과 맞닥뜨리고 부대끼면서 소통하는 데에서 희열과 생명력을 얻는다는 박 시인은 시를 써내려 갈 때 세상과 맞닿은 눈으로 사람과 세계의 단면을 음미한다.
'틈이 있기에 숨결이 나부낀다' (푸른사상刊). 예스24 제공
그런 점에서 이번 산문집은 그의 생각이 녹아든 시집들과 절대로 동떨어져 있지 않다. 그가 ‘쪽문으로 드나드는 구름’, ‘꽃은 바퀴다’, ‘가슴을 재다’ 등 세 편의 시집을 펴내면서 계속해서 인식이 확장되고 시야가 변화하는 순간들에 느꼈던 감정과 생각들이 역시 산문집에서도 흐름에 맞게 재편됐다.
1부에는 지역 신문에 실렸던 칼럼, ‘한국산문’에 발표했던 원고 등 작가의 손을 떠나 필터가 덧입혀진 채 세상과 만났던 글들이 뒤섞여 있다. 2부로 진입하면 박 시인이 세상과 사회를 바라보며 느꼈던 사유가 담긴 글들이 기다리고 있다. 마지막 3부에서는 시인으로 살아가면서 시와 예술과 문학이 도대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돌아보면서 정리하는 생각의 흐름이 담겼다. 이번 산문집은 10여년간 지속됐던 궤적 속에서 유영하던 글이 모인 뒤 끊임없는 퇴고로 재구성된 산물이다.
박 시인은 “첫 시집을 내는 것이 그동안 발표했던 시를 모으는 과정이라면, 두 번째, 세 번째 시집을 낼 때부터는 고민이 시작된다”며 “동어반복하고 있지는 않은지, 매너리즘에 빠질 위험은 없는지 늘 조심하고자 한다. 그래서 산문집을 또 내게 된다면, 그런 점을 신경 쓰게 될 것 같다. 어쩌면 미학적 관점에서 풀어낸 글이 포함되지 않을까 싶다”고 전했다.
경기일보, "[작가와의 만남] 갈매기처럼 세계를 마주하기… 첫 산문집 내놓은 박설희 시인", 송상호기자·이다빈수습기자, 20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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