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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사상 미디어서평

[공감신문] 이경옥, <경옥이 그림일기>

by 푸른사상 2022. 11. 7.

 

[김도진의 북 리뷰]경옥이 그림일기

 

[공감신문] 김도진 칼럼나스트=경옥이 그림일기

 

지은이 이경옥

 

출판사 푸른사상

 

출판연도 2022

 

 

저자는 나와 오랜 기간 교류를 해오고 있는 ()동구바이오제약 조용준 대표이사의 모친이다. 치열했던 삶의 깊이를 사색하면서 자신을 차분히 되돌아보는 모습이 푸근해 보인다. 저자가 하고 싶은 그림과 글쓰기를 오랫동안 하기를 소망해 본다.

 

 

 

(P.3) 작가의 말

 

여든에 접어들면서 내 인생의 여름 방학이 끝나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정말 잘 살아왔는지, 또 앞으로 어떻게 잘 살아야 하는지 나도 이제는 나를 돌아보고 싶었다.

 

 

 

나는 화가도 작가도 아니다. 여든 세 해의 삶을 그림으로 글로 이야기하고 싶었다.

 

 

 

밀린 방학 숙제를 제출해야 할 시간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기 때문에 쉴 사이 없이 인생을 쓰고 그리면서 하루가 짧았지만 내 생애 그 어느 때보다 참으로 행복했다.

 

 

 

(P.25) 5센티만 크면 좋겠다

 

내 키가 작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엄마를 닮아서 키가 작았지만, 엄마가 큰 손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잘했기 때문에 별로 문제 되지 않았는데, 갈수록 뒷자리에서 앞 자리로 오면서 선생님 말씀을 놓치지 않는 키 작은 얌전이가 되었다. 선생님과 나만이 공부하는 것 같았다. 공부할 때는 키가 작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했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길을 걸어갈 때면, 5센티미터만 키가 크면 좋겠다는 생각이 늘 떠나지는 않았다.

 

 

 

어른이 되면서 사회 활동이나 리더로서 누구보다 더 열심히 했다. 나 스스로가 작은 키에 큰 마음을 담아서, 나를 보는 사람들이 내 키보다 내 마음을 먼저 볼 수 있기를 바랐다.

 

 

 

(P.37) 아버지의 죽음

 

아버지 죽음으로 나는 철이 들었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발을 들였다. 오직 엄마를 도와서 잘 살아내야 한다는 생각들이었다.

 

 

 

아버지의 죽음은 좌절을 이기고 빨리 어른이 되도록 나를 이끌어 주셨다.

 

 

 

'사랑의 기쁨은 어느덧 사라지고

 

사랑의 슬픔만 영원히 남았네.'

 

 

 

별다른 감정 없이 부르던 노래였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부를 때면 아버지의 사랑으로 감정이 바뀌면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

 

 

 

(P.55) 동구의 탄생

 

남편은 회사가 안정될 때까지 아이들의 교육을 전적으로 내게 부탁했다. 그래도 회사 일에 바쁜 남편이 아이들에게 아버지로서 점수를 따게 하려고 기회 닿을 때마다 아이들과 가족 여행을 계획했다. 그러나 남편의 몸은 가족들이랑 있어도 생각은 늘 자신의 목표를 벗어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남편은 1970년 서른여섯 살, 드디어 맨땅에 '동구약품'을 창립했다. 유럽으로 세미나를 가도 동행들이 다 자는 동안에 그 옆 나라를 다녀올 정도였다. 파도처럼 쉬지 않고, 회사 성장에 인생 전부를 쏟아부었다.

 

 

 

(P.65) 폭설

 

겨울에 눈이 내리는 것은 당연하지만 대책 없이 나는 폭설을 맞았다. 남편이 갑자기 아파서 나는 부사장, 유학 준비 중이던 아들은 부장으로 회사에 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회사 일을 잘 알기 위해서 각종 회의와 워크숍, 특히 서울 각 지점과 지방까지 직접 다니며, 회사의 꽃이라는 영업부에 더 신경을 썼다. 직원 이름을 기억하고, 대소사에 신경을 쓰는 일이 나의 중요 업무였다. 본사 일은 부장인 아들을 거쳐 부서장들의 브리핑을 서면으로 받았다.

 

 

 

남편은 오 년간의 투병생활을 이겨내지 못하고 우리 곁을 떠났다. 나는 쉰아홉에 동구제약 사장이 되면서 또 한 번의 폭설인 IMF를 맞았다. 그래도 남편과 함께 시작했던 분들이 긴축 재정을 우선으로 회사를 살리는 일에 한마음이 되어주셨다. 그 힘들었던 시간들을 한마디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어느 날 문득 그 상황들이 파노라마로 눈앞에 펼쳐질 때 나도 모르게 숨을 몰아쉰다.

 

 

 

(P.67) 연리지(連理枝)

 

내 생활의 기둥은 아버지였다가 어머니가 되었고, 그리고 남편이었는데, 남편 하관식을 하며, 나는 순전히 남편 그늘에서 누리고 잘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잘못해서 놓친 것도 같았다. 회사를 빨리 우뚝 세우고 싶었던 책임감에 병이 들었다는 불쌍한 생각이 들어 삼일 밤낮을 울기만 했다.

 

 

 

나는 남편 대신 회사를 이끌어가야 했다. 울음을 그치고 하나님을 기둥으로 삼고 다시 일어섰다. 남편 기일이나 명절이 되면, 나는 똑같은 말을 반복한다.

 

 

 

"누구 하나 보태주지 않는 회사를 혼자서 이끌어가느라 얼마나 힘들었어요?"라고 말하면 남편이 내 옆에 오는 것 같다.

 

 

 

(P.79) 그림 그리기를 시작하다

 

일흔에 들어서 교회 초등부 아이들과 함께 부활절 전시회에 아크릴화 몇 점을 내면서 그림에 대한 막연한 꿈은 더 잘 그려보고 싶다는 열망으로 솔솔 피어 올라오고 있었다. 인사동에서 어반 스케치와 크로키를 시작하면서 인천여고 '녹미전'에 몇 점을 내다가, 여든 셋에 목적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수채화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내 마음에 하루하루가 새날로 떠올랐다.

 

 

 

(P.93) 이만큼의 거리

 

내가 낳은 자식도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데, 환경이 다른 곳에서 살아온 며느리에게는 더 조심스러웠다. 나도 시어머님과 함께 살아봐서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는 좀처럼 좁히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당연한 거리를 인정하고 따로 살자고 결정한 것이다.

 

 

 

너도 나처럼 생각하는지, 혹시 나한테 서운한 것이 있는데 나만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가끔 궁금하기도 했다.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모신다고 하는 것이 꼭 함께 살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란다. 나는 너와 관계에서 이만큼의 거리로 충분하다.

 

 

 

누구보다 자식 교육 잘 하고, 남편 잘 챙기는 너는 내 아들에게 좋은 아내이며 내 식구다.

 

 

 

(P.99) 어머니가 아들에게

 

네가 유학을 포기하고 아버지 일을 맡게 되어 늘 마음이 안쓰러웠다. 그러나 네가 선택한 일이 아니었지만, 너랑 같이 회사 일을 할

 

수 있어서 내게는 큰 힘이 되었다.

 

 

 

네가 "엄마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셔야 해요"라는 말을 할 때면 '아직도 내가 네 곁에서 뭘 더 챙겨줘야 하나?' 하는 생각을 먼저 한다. 그래서 지켜보기보다는 부족한 점을 먼저 지적하였다. 끝내는 네가 이끌어갈 회사였기에 늘 노심초사라 그랬구나.

 

 

 

너는 우뚝 서서, 지금 누구보다도 네 궤도를 잘 잡아 운행하고 있어 마음 든든하다.

 

 

 

(P.115) 나에게 칠 일이 남았다면

 

하루 - 나의 인생을 함께 했던 사람들에게 일일이 감사의 말을 전하다.

 

이틀 - 한 팀이 되었던 사람들과 정을 나누다.

 

사흘 - 남편이 만들고, 내가 거들고, 아들이 확장한 회사를 둘러보고 사원들과 악수를 하다.

 

나흘 - 새벽 기도를 소리 내서 하다.

 

닷새 - 형제들과 밥상을 같이하다.

 

엿새 - 가족들과 '내가 없는 미래'를 이야기하다.

 

이레 - 하루를 남겨두다.

 

 

공감신문, "[김도진의 북 리뷰]경옥이 그림일기》", 김도진 칼럼니스트, 2022.11.4

링크 : https://www.gokorea.kr/news/articleView.html?idxno=735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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