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불교 학술서- 김옥성의 〈한국 현대시와 불교생태학〉
만해·김달진·조지훈·서정주 ‘불교 생태학’으로 읽다
만해 등 현대시단 선지식들
‘불교생태학’ 관점서 조명해
중앙불전 출신 文人 공통점
만해, 연기론 입각 생태사상
“탈근대적 관점서 시사점 커”
만해 한용운 스님, 서정주, 김달진, 조지훈은 한국 현대 시단을 이끈 선지식들이다. 이들은 모두 동국대 전신인 중앙불교전문학교 출신이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현대 불교문학의 비조(鼻祖)인 만해 스님(1879~1944)은 명진학교 설립에 참여했으며, 1918년 중앙학림 강사로 취임했다. 서정주(1915~2000)는 1933년 박한영의 문하생으로 입문해 개운사 대원암 내 중앙불전에 입학했으며, 김달진(1907~1989)은 1936년 중앙불전에 입학해 1939년 졸업했다. 조지훈(1920~1968)은 1938년 중앙불전에 입학해 1941년 불전이 개칭된 혜화전문학교를 졸업했다.
이들은 불교적 시학 세계를 펼치며 한국 현대시단에 큰 족적을 남겼고, ‘중앙불전 문인’이라는 독특한 계보를 형성했다.
김옥성 단국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출간한 학술서 〈한국 현대시와 불교생태학〉은 현대 불교 문인들의 작품에 담긴 불교적 상상력과 생태 사상에 대해 분석했다.
연기론과 윤회론 등으로 대표되는 불교 사상은 가장 생태주의적인 종교로서 오랜 세월 동안 우리 민족과 역사를 함께하며 한국인의 의식에 깊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현대 시인들은 불교의 순환과 영원성, 생태주의적인 요소를 수용하고 시로 형상화함으로써 창조적인 상상력을 펼쳐왔다.
이에 대해 김옥성 교수는 “불교 교리는 생태주의적인 사상들로 충만하다”면서 “만유의 인과성과 상호의존성을 담고 있는 연기론은 불교사상의 생태주의적 면모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연기론은 근대과학과 신과학 차원에서 근대적 가용성, 대안과학의 가능성이 진단됐다. 연기론은 불교가 갖는 현대사회에서의 적응력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핵심 요소 중 하나”라며 “불교의 연기사상에 호흡을 댄 연기적 상상력은 불교 계열 시인들의 시에 폭넓게 나타난다”고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만해 스님의 평등주의와 구세주의, 조지훈의 생명과 사랑의 시론까지, 한국 현대 시문학사에서 생태주의적인 사유와 상상을 바탕으로 불교적 시학을 전개해온 시인들의 문학론을 조명한다. 불교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도 불교에 구속되지 않고 자율적이고 창조적으로 전개되는 현대 미학으로서의 불교적 시학에 초점을 두었다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이다. 한국 현대시 전반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불교 생태학적 상상력의 양상과 그 의미를 밝혀낸다.
6부로 구성된 이 책은 불교적 시학, 불교 생태시학, 선적 미학 등의 개념을 고찰한다. 불가 계열 시인으로 대표되는 만해 한용운, 김달진 등의 문학을 살펴본다. 생태 사상에 기반한 만해 스님의 시 세계를 살펴보자.
저자는 만해 사상의 요체는 “불교를 토대로 한 근대의 수용과 탈근대적 비전”이라고 봤다. 만해 스님은 불교를 사상적 기저로 선택해 유교적 국수주의와 거리를 뒀고, 비판적으로 근대를 수용해 기독교·이슬람교·유교·불교 등의 미신적 요소를 비판했다. 나아가 불교를 토대로 근대 계몽에 대한 계몽의 자세를 취하며 탈근대적 전망도 확보한다.
만해 스님은 자연에 인과론적 질서가 내재하며, 과학적 지식과 이성으로 물질과 에너지 세계의 인과론을 파악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이를 통해 저자는 만해의 생태주의를 “만물이 평등하며, 인과론으로 연결돼 있다. 우주는 만물이 펼치는 인과론적 상호작용의 유기체”이며 “타자는 인과론적으로 자아를 탄생시키는 원인자이므로 어버이와 같다. 타자를 존중하고 평등을 실현해야 한다”고 요약했다.
그러면서 그는 “근대과학과 불교의 선택적 결합으로 만들어진 만해의 생태주의는 최근 근대에 대한 위기의식에서 급부상한 생태학 담론에도 뒤지지 않는 참신한 면모를 갖추고 있다”면서 “만해의 생태주의는 탈근대적 전망으로서 동양 사상이 대안으로 주목받는 오늘날에 많은 시사점을 제공해준다”고 강조했다.
미당 서정주가 보여준 작품 세계 속 ‘중생일가관’은 만해의 사상과 유사하다. 불교의 연기론적 세계관에 입각해 세계를 유기적 전체로 파악하고 자아와 우주의 구성원들을 평등한 관계로 인식하며, 나아가 자아와 우주 전체를 동일시한다. 차이점도 존재한다. 미당은 삼국시대 역사에서 ‘오래된 미래’로서 선조들의 세계관을 찾았고, 이를 근대 미학의 영역으로 끌어 올려 자신의 고유한 사상과 시학 체계를 세웠다.
저자는 “만해와 달리 미당은 불교적-신비주의적 세계관으로 근대를 주관적으로 해석하면서 자신의 세계관이 결코 외부에 속하지 않음을 주장한다”면서 “비록 환원론적 오류를 안고 있지만 근대와 불교를 화해시키면서 독자적인 생태사상과 사학의 틀을 견고하게 확립했다”고 평가했다.
이밖에도 조지훈 시인은 유가 계열 시인으로 인식되지만, 유불선을 비롯한 동양적 사유를 전개하며 다양한 종교적 시학의 관점을 보여줬음에 저자는 주목했다. 이외에도 불교적 관점에서 간과된 시인들의 불교적 사유를 다양하게 밝혀내며 불교시의 문학사를 보다 입체적으로 논의한다.
이와함께 저자는 기후위기가 현실로 다가온 지금, 불교 생태시학은 미학적이며 윤리적 의미를 가짐을 강조한다.
그는 “산업화 시대 이전 시인들의 불교 생태사상과 상상력은 후배 시인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으며, 생태 문제가 더욱 중요해지는 미래의 시인들에게도 풍요로운 생태시학을 위한 시적 자양분을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라며 “한국 현대시사에서 불교 생태학적 상상력은 해체주의·파괴주의·반생태주의에 맞서 서정시의 본령을 고수해온 만큼, 차후에도 시대적 요청에 반응하면서 한국시의 미학성과 윤리성을 지켜내는 데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불교, "주목! 불교 학술서- 김옥성의 〈한국 현대시와 불교생태학〉", 신성민 기자, 2022.3.21
링크 : http://www.hyunbu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04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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