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현장서 만난 ‘제자들 애정’ 시로 풀다
교사 시인 이봉환 제6시집 ‘중딩들’ 펴내
작품 속 인연 된 학생들 시화…70여 편 수록
현직 중학교 선생님이 제자들 한명 한명을 시속 인물로 형상화시켜 수록한 시편들을 세상에 내놓았다. 스승과 제자가 예전만큼 못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지만 시인은 교사로서 아이들과 한 약속을 철석같이 지켜내며 그게 틀렸다는 것을 입증해 보였다.
교사 시인인 전남 고흥 출생 이봉환씨가 푸른사상 시선 153번째 권으로 펴낸 제6시집 ‘중딩들’이 그것으로, 시인이 교직을 천직으로 알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면서 만났던 제자들의 이름과 그들의 꿈을 어루만진, 푸근한 손길의 흔적들을 시편 곳곳에 녹여냈다.
특히 아이들과 함께 한 오랜 학교 생활의 마감(퇴직)을 앞두고 차마 붙잡지 못하는 세월을 야금야금 아껴가며 따라가는 시적 화자를 만날 수 있는 이번 시집은 무안청계중 국어 교사로 재직해온 시인이 3년째 근무하면서 아이들에게 시 한편씩 선물하겠다는 약속을 했고, 이번 시집을 통해 그 약속을 실천했다.
이번 시집은 2부로 구성, 시집 곳곳에 제자들에 대한 추억과 격려가 투영된 시 70여편이 실렸다.
시인에게 중학생 제자들은 표제시 ‘중딩들’에서처럼 눈동자들이자 꽃망울, 빗방울, 쥐눈이콩알들로 그려진다. 온갖 특성을 다 보이는 제자들에 차별없이 대하는 선생님으로서 애정이 듬뿍 묻어나는 시선이 읽혀진다.
‘이리 저리 늘 움직거리며 유쾌한 유아가 학교에서는 그러나 자주 삐걱댄다/저 소녀의 천진한 즐거움을 학교는 다 수용하지 못한다/당당 멀었다’(‘유아스런 정유아’ 일부)거나 ‘선은인 우련한 제 마음을 뽀득 뽀득 닦고 싶어서였을까/ 혼자서 웃고 혼자 놀고 혼자서 울기도 잘하는/그 애가 애써 닦아낸 바닥은 청초한 벌판이어서/언젠간, 그 한 구석 쯤이 푸르게 빛나지 않겠는가’(‘신선은’ 일부)라고 노래한다.
또 ‘사과는 흠이 많고 주근깨가 다닥다닥, 붉은 바탕의 껍질에 박힌 흰 점은 가을 햇살의 흔적, 아프다고 맨날 결석하고 지각하는 명수지의 사춘기 흔적’(‘명수지’ 일부)이라거나 ‘무슨 시간이든,/노트에/허공에/코 박고/눈 박고/소설 쓰는 금솔이는/밭둑에 논둑에 산에 들에/코 박고 익어가는 까마중/까맣게 여물어가는 까마중’(‘고금솔’ 전문), ‘한 달이 지났다/두 달이 지났다/물결에 웃음이 일었다/물안개 같은/일렁임이 수면에 조용히 일었다’(‘물결이가 전학을 왔다’ 일부)고 읊는다.
시인은 제자들이 삐걱거려도 이들에의 애정을 학교 제도의 한계로 에둘러 표현하는 동시에 최대한 제자들의 모난 행동까지 껴안으려고 하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음을 시 문맥을 통해 직감할 수 있다.
김진경 시인은 추천사를 통해 “그의 시들은 그 호명이 가장 어려운 학교 현장에서 사람과 삶의 풍경을 하나하나 불러내고 있다. 생생하게 다가오는 아이들, 동료 교사들과 그 삶을 둘러싼 풍경을 통해 우리의 삶이, 교육이 목적지로 가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과정 자체가 목적임을 일깨워준다”고, 조지영씨(무안청계중 교사)는 “그의 시집 속에는 풍경을, 계절을 삼킨 나무들이 즐비해 있다. 교직이란 여린 나무와도 같은 그네들의 결을 쓰다듬어주는 다듬질”이라고 각각 평했다.
시인은 작가의 말을 통해 “이제 너희도 새로운 시작이고 나도 그렇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이 생활들을, 시간들을 아무렇지 않게 이어가는 것이 삶이란다. 수많은, 그러나 결국은 한 길인, 삶의 길목에서 다시 만나자. 사랑한다. 나의, 언제나 첫사랑들아. 그리고 안녕”이라고 밝혔다.
이봉환 시인은 1988년 문예지 ‘녹두꽃’에 ‘해창만 물바다’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 그동안 시집 ‘응강’을 비롯해 ‘밀물결 오시듯’, ‘내 안에 쓰러진 억새꽃 하나’, ‘해창만 물바다’, ‘조선의 아이들은 푸르다’ 등을 펴냈다.
광남일보, "교육현장서 만난 ‘제자들 애정’ 시로 풀다", 고선주 기자, 2022.3.13
링크 : http://gwangnam.co.kr/article.php?aid=1647163555411217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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