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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간행도서

이봉환 시집, <중딩들>

by 푸른사상 2022. 2. 10.

 

분류--문학()

 

중딩들

 

이봉환 지음|푸른사상 시선 153|128×205×6mm|104쪽|10,000원

ISBN 979-11-308-1890-0 03810 | 2022.2.5

 

 

■ 도서 소개

 

싱그러운 한 그루 나무와도 같은 아이들

 

이봉환 시인의 시집 『중딩들』이 <푸른사상 시선 153>으로 출간되었다. 교단에서의 오랜 생활을 마무리하면서 함께 부대끼고 성장한 아이들의 이름을 깊고도 따스한 눈길로 한 명 한 명 호명한다. 교실 바닥에 콩콩 책상 위에 통통 튀어 오르는 아이들의 모습이 더없이 생생하다.

 

 

■ 시인 소개

 

이봉환

1988년 『녹두꽃』에 「해창만 물바다」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응강』 『밀물결 오시듯』 『내 안에 쓰러진 억새꽃 하나』 『해창만 물바다』 『조선의 아이들은 푸르다』가 있다. 아이들과 함께한 오랜 학교 생활의 마감을 앞두고 차마 붙잡지는 못하는 세월을 야금야금 아껴가며 따라가고 있다.

 

 

■ 목차

 

제1부

첫 / 연필이 사라졌어요 / 저를 사랑하는 솔희 / 잠에서 깨어난 하모니카 / 상수가 당당해졌다 / 경호 / 장필오가 좀 전에 / 12월은 준형이가 청소하는 달 / 미치겠다 / 허수하 / 오수빈 / 유아스런 정유아 / 정혜인 / 신선은 / 한결이의 글말 / 명수지 / 박은희 / 정해원 / 유하나 / 고데기 써클렌즈 매니큐어 못난 교칙 / 유진이표 청량음료 / 문수현 / 차홍희 / 윤주네 반 / 민웅이와 은빛이 / 한수휘는 한 수 위 / 화장실 갔다 오는 시간 / 반어와 역설 / 이가애 / 표경배 / 신고해라 / 사기를 쳐야 해요 / 밖으로 나온 웃음 / 천생이 선생 / 참 상냥하고 맑은 / 마지막이 그대여서

 

제2부

박두창이의 의문 / 조원호가 어른이 되는 날 / 이 가을에 정안아 / 박여빈 / 때죽나무 시인 / 고금솔 / 신머빈 / 김준현 / 박주영 / 박준상 / 박정연 / 릴리 / 참 맑고 서느런 / 김기윤 / 김치준 / 이서환 / 조희창 / 서이태 / 김연주 / 유자후 / 오미지 / 김선미 / 문지빈 / 봄꽃 박연정 / 비티에스와 배다은 / 최은규 / 정승은 / 박주란 / 이예술 / 박대형 / 함채인 / 물결이가 전학을 왔다 / 중딩들

 

작품 해설 : 존재의 가장 빛나는 모습을 바라보는 눈 - 최은숙

 

 

■ '시인의 말' 중에서

 

어쩌다 여기서 우린 만났을까. 벌써 30여 년. 시간이, 쏜 화살 같구나. 헤어질 땐데 막상 시작도 끝도 없었구나. 시작도 끝도 없는 만남이고 이별이로구나. 시작이 끝이고 그 끝이 다시 시작인데, 그렇다면 지금은 이별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인 게로구나.

중딩, 너희들과 희로애락한 지, 그 희로애락을 시로 써온 지 30여 년. 그리고 여기 이곳의 너희하고는 3년. 올가을에는 너희하고 이런 약속을 하였지? “내 너희에게 시를 한 편씩 선물하마.” 갖가지 너희의 아름다움을, 발칙스러움을, 변화무쌍함을, 찬란함을 너희 밖으로 불러내 나무로, 시로 보여주겠노라고.

이제 너희도 새로운 시작이고 나도 그렇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이 생활들을, 시간들을 아무렇지 않게 이어가는 것이 삶이란다. 수많은, 그러나 결국은 한 길인, 삶의 길목에서 다시 만나자. 사랑한다. 나의, 언제나 첫사랑들아. 그리고 안녕.

 

 

■ 작품 세계

  

오늘 제가 근무하는 학교도 졸업식을 했습니다. 학교가 커서 수업 중에 만나지 못한 학생들이 대부분이고 그나마 마스크로 얼굴을 절반 이상 가린 채 지냈으니 길에서 마주쳐도 알아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3년이나 같은 공간과 시간을 공유했는데 마스크 위로 보이는 눈의 표정과 출석부에 표기된 이름조차 자신 있게 연결하지 못하는 선생이 되었습니다. 대규모 학교의 학생과 선생님들이 겪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여기, 이름뿐 아니라 자기가 했던 말, 자신도 모르는 사이 선생님의 마음과 눈에 담긴 모습, 어쩌면 자신도 아직 발견하지 못했을 가능성, 감춰진 보석을 새겨 넣은 시를 졸업 선물로 받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시인 이봉환 선생님과 3년을 부대끼며 성장한 전남 무안청계중학교 서른세 명의 학생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시인 선생님이 그려낸 학생들의 재잘거림이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후다닥 복도를 뛰는 소리, 수업과 상관없는 엉뚱한 이야기에 터뜨리는 웃음소리도 귀에 맴돕니다.

졸업생을 포함하여 무안청계중학교 1, 2학년 학생들, 또 그간 선생님이 만나온 학생들, ‘성자가 된 청소부’를 떠올리게 하는 교장 선생님, 컴맹인 시인 선생님의 곤란을 곁에서 척척 해결해주시는 동료 선생님들까지 저마다 다른 모습의 생명이 건강하게 조화를 이룬 숲을 보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한 그루, 한 그루 나무를 심은 시인이었군요. 아니, 처음부터 싱그러운 한 그루 나무인 아이들의 이름을 틀리지 않게 불러준 선생님이었군요. 은사시나무, 때죽나무, 회화나무, 사람주나무 그렇게 이름이 불릴 때 이름에 꼭 맞는 모습으로 환하게 색이 입혀지는 아이들의 모습이 참으로 감동적이었습니다. 나무만 서 있는 숲은 없지요. 댕댕이덩굴, 까마중, 재잘거리는 직박구리, 바람과 햇살이 고루 어울린 이 숲을 시인이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타고난 대로 가장 자기답게 살아가도록 함부로 손대지 않고 다만 곁에서 따스하게 지켜보며 하루하루 함께하는 것이 숲을 사랑하는 선생님의 방식이라는 것도 알겠습니다. (중략)

자연인 우리가 자연인 아이들과 만나 묻고 배우고 믿고 기다리고 웃으며 살아가는 이야기가 담긴 이 시집은 저에게도 선물이었습니다. 시원하고 달콤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신 기분입니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서 아늑한 낮잠을 잔 것 같기도 하고 새소리를 따라 이끼를 밟으며 달린 것도 같습니다. “몇 달 전 전학을 와서 이 마을 숲이 된,/기꺼이 산이 된 나무 한 그루인 듯/기꺼이 골목을 이룬 집 한 채인 듯/오래된 자연인 듯/여기서 태어나 같이 자란 듯”한 머빈이처럼(「신머빈」) 시를 읽는 동안 저도 이 마을 숲에 깃들어 있었습니다.

- 최은숙(시인) 작품 해설 중에서

 

 

■ 추천의 글

 

고속도로를 차를 몰고 가면 목적지만 남고 풍경은 스쳐 지나간다. 우리의 삶이 대강 이와 같다. 시인의 일은 거꾸로 목적지를 지우고 스쳐 지나가던 풍경 하나하나를 호명하여 우리 삶의 한순간을 목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하여 맹렬한 속도로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삶이 결국 최종 도달점인 죽음 앞에 허망한 것임을 성찰하게 하는 일이다. 이봉환의 시들은 그 호명이 가장 어려운 학교 현장에서 사람과 삶의 풍경을 하나하나 불러내고 있다. 생생하게 다가오는 아이들과 동료 교사들과 그 삶을 둘러싼 풍경을 통해 우리의 삶이, 교육이 목적지로 가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과정 자체가 목적임을 일깨워준다.

― 김진경(시인)

 

퇴직을 앞둔 그의 시집 속에는 풍경을, 계절을 삼킨 나무들이 즐비해 있다. 어쩌면 교직이란 여린 나무와도 같은 그네들의 결을 쓰다듬어주는 다듬질이 아닐까. 우여곡절로 함께 물든 3년의 시간. 자신의 빛깔로 반짝일 그들의 내일이 궁금해 다시 한번 그들의 얼굴을 바라본다.

― 조지영(무안청계중 교사)

 

봉환 쌤과 3년 동안 함께한 수업이 모두 좋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온몸을 써가며 수업을 하실 때나, 친구들의 발표가 재미있을 때, 어쩌다가 발표를 많이 할 수 있을 때는 웃음이 절로 났다. 반면에 쌤이 아재 개그를 하시거나, 손을 백 번 천 번 들어도 안 시켜주실 때는 기분이 싸해지기도 했다. 이런저런 추억을 시로 쓰신 봉환 쌤. 우리의 추억이 하나 더 생겨서 좋다.

― 배다은(무안청계중 3학년)

 

선생님과 수업하고 놀면서 국어를 참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었다. 선생님은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 우리에게 들려주셔서 수업 내용을 폭넓게 이해할 수 있었고, ‘나도 글을 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3년간의 아름다운 추억들이 이 시들을 통해 내 마음속에 오래도록 새겨질 것이다.

― 릴리(무안청계중 3학년)

 

 

■ 시집 속으로

 

장필오가 좀 전에

 

수업을 시작하자마자 필오가 뛰쳐나온다.

목이 타버릴 것 같아요, 살려줘요, 선생님.

학생 목이 타면 안 되니까 물 먹고 오라고 보낸다.

한참 수업하는데 언제 갔다 왔는지 필오가

또 튀어나온다. 그럴 땐 꼭, 얼굴을 찡그리며 바짓가랑이를 움켜잡는다.

물을 너무 먹어서 오줌보가 터져버리겠어요, 쌤.

빨랑 갔다 와라! 화장실 쪽으로 급한 손짓을 한다.

학생 오줌보 터지면 큰일이니까, 얼른 보낸다.

 

 

조원호가 어른이 되는 날

 

조원호가, 초코바를 까더니 껍질을 나무가 바람에 낙엽 떨구듯 아주 자연스럽게 흘리고 간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아주 대단한 경지!

나무들은 몇천 몇만 번을 얻었다 놓아야 어른이 되는 걸까 원호가 버리고 간 낙엽이 가을바람에 바스락바스락 운동장 구석을 뒹굴고 있다

 

신머빈

 

영어 시험 보는데 슬그머니

컴퓨터용 사인펜을 떨어뜨려놓고

가만히 날 쳐다보고만 있네

가만히 다가가 주워서 건네자

빙긋 웃고는 고개를 숙이는 너는

몇 달 전 전학을 와서 이 마을 숲이 된,

기꺼이 산이 된 나무 한 그루인 듯

기꺼이 골목을 이룬 집 한 채인 듯

오래된 자연인 듯

여기서 태어나 같이 자란 듯

 

 

참 맑고 서느런

 

서윤이가 태만이와 사귄다는 소식이 오늘 점심 찬이다 서윤이는 패션모델을 꿈꾸는 훌쩍한 아인데 톱으로 키우려는 부모한테 극심한 관리를 받고 있다고, 태만이는 코리안 드림을 꿈꾸는 태국 부모를 따라 이민하여 온 눈이 시커멓고 커다란 아이

둘이 사귀는 걸 서윤이 부모가 알면 펄쩍펄쩍 뛸 거라고, 갖가지 어른들의 편견과 서윤이의 참 맑은 눈빛을 섞어 만든 비빔밥을 한참 씹고 있으려니, 깊고도 드높은 어떤 서늘함이 천천히 입안을 감도는 것이었다

 

 

중딩들

 

찬란함을 잉태하려 하는구나 투명들아 까르르 댕댕일 닮은 청먹빛 눈동자들아

수미산을 담아도 아수라의 희로애락이 다 배어들어도 좋을 꽃망울들아.

가장 예쁜 사랑을 꿈꾸고 아픈 이별과 크나큰 모험 들을 준비하는구나.

아슬아슬 학교 건물 끄트머리 대롱대롱 매어 달린 저 위험한 빗방울들아

교실 바닥에 콩콩 책상 위에 통통 튀어 오르는 데굴데굴 구르는 쥐눈이콩알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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