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2 간행도서

푸른생각 / 윌리엄 셰익스피어, <맥베스>

by 푸른사상 2022. 2. 7.

 

분류--문학(소설), 영미소설

 

맥베스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이태주 옮김|세계 문학을 읽는다 2|146×210×11 mm|180쪽

18,000원|ISBN 979-11-92149-06-6 03840 | 2022.2.5

 

 

■ 도서 소개

 

인간을 타락과 파멸로 이끄는 탐욕을 경계하라

 

세계적인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맥베스』(이태주 옮김)가 <세계 문학을 읽는다 2>로 출간되었다. 권력을 향한 야욕에 이끌려 왕위 찬탈을 자행하고 악행을 거듭한 맥베스의 비극적인 최후를 그린 작품이다. 끊임없는 갈등 속에서 숨 막히는 긴장감을 유지하는 이 작품은 탐욕과 양심 사이에서 갈등하는 한 존재를 통해 모순된 인간사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다.

 

 

■ 저자 소개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과 제임스 1세 시대를 대표하는 극작가. 청년기인 1585년부터 1592년까지 그가 무엇을 하며 지냈는지는 알려진 것이 없지만, 1592년 런던 템스강 남쪽 극장가에서 이름이 나기 시작했다. 그 이후 20년 동안 37편의 희곡(「두 사람의 귀공자」 「에드워드 3세」 「토머스 모어 경」까지 3편을 추가할 수 있다)과 소네트, 4편의 시극을 남겼다. 벤 존슨이 “그는 한 시대의 사람이 아니라, 모든 시대의 시인이었다”라고 말했듯이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현재까지 오페라, 무용, 미술, 영화, 뮤지컬 등 수많은 장르에 영감을 불어넣고 있다.

 

 

■ 옮긴이 소개

 

이태주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 영어영문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하와이대학교 및 조지타운대학교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셰익스피어 관련 저서로는 『이웃사람 셰익스피어』 『원어와 함께 읽는 셰익스피어 명언집』 『셰익스피어와 함께 읽는 채근담』 등이 있고, 이외에 『세계 연극의 미학』 『연극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브로드웨이』 『R 교수의 연극론』 『충격과 방황의 한국연극』 『한국연극 전환시대의 질주』 『재벌들의 밥상』 『유진 오닐:빛과 사랑의 여로』 『불멸의 연인들:로렌스 올리비에와 비비안 리』 등이 있다.

단국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및 연극영화학과 교수·공연예술연구소장·대중문화예술대학원장, 한국연극학회 회장, 국제연극평론가협회(IATC) 집행위원 겸 아시아-태평양 지역센터 위원장, 예술의전당 이사, 국립극장 운영위원, 서울시극단장, 한국연극교육학회장, 한국연극평론가협회 회장, 동아방송예술대학교 초빙교수 등을 역임했다. 현재 공연예술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 목차

 

∎ 책머리에

 

맥베스

 

∎ 작품 해설

∎ 작가 연보

∎ 셰익스피어 가계도

∎ 장미전쟁 역사극의 가계도

∎ 영국 왕가 족보

 

 

■ 출판사 리뷰

 

세계적인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맥베스』를 셰익스피어 연구자인 이태주 교수가 번역하고 해설을 달았다. 간결한 길이와 빠른 전개로 숨 쉴 틈 없이 긴장감을 유지하는 이 작품은 다른 비극작품에서 찾아볼 수 없는 탁월한 극작술을 선보이고 있다. 마녀의 예언과 아내의 부추김에 현혹되어 왕위 찬탈을 자행하고, 왕위를 유지하기 위해 악행을 거듭하는 맥베스의 비극적인 최후를 그린다. 끊임없는 갈등 속에서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이 작품은 탐욕과 양심 사이에서 갈등하는 한 존재를 통해 모순과 역설로 점철된 우리 인간사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다.

스코틀랜드의 충성스럽고 우직한 장군인 맥베스는 반군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밴쿠오와 함께 궁으로 돌아가던 길에 황야의 세 마녀를 마주친다. 장차 왕이 될 것이라는 마녀들의 달콤한 예언을 들은 맥베스는 왕위를 향한 야욕에 사로잡히게 된다. 양심의 가책으로 인해 주저하는 맥베스는, 그의 나약함을 꾸짖고 살인을 부추긴 부인으로 인해 결국 국왕을 시해하고 만다. 그로 인한 자책감과 왕위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불안감에 시달린 그는 폭정을 일삼으며, 왕권을 위협하는 인물들에 또다시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 종국에는 귀족들과 선왕의 왕자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며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마녀와 유령이라는 환상적인 존재와 작품 전체에 드리운 어두운 이미지는 공포와 초자연적인 두려움을 조성하는 효과를 자아낸다. 마녀들의 예언으로 일깨워진 맥베스의 권력을 향한 야욕과 그 욕망에서 시작된 피비린내 나는 권력 다툼, 살인과 악행을 거듭하며 파멸에 이르기까지. 탐욕과 양심, 즉 선과 악 사이에서 고뇌하는 인간의 비극적인 이야기는 결국 파국을 맞을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 작품 세계

 

<맥베스>도 홀린셰드의 <연대기>에서 그 소재를 구했다. <맥베스>는 창작연대로 볼 때 <리어 왕>과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사이에 있다. 셰익스피어는 이미 <로미오와 줄리엣> <줄리어스 시저> <햄릿> <오셀로> 그리고 <리어 왕> 등의 작품 공연으로 극작가로서의 지위가 확고해지고, 극작술이 원숙기에 접어들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오셀로>가 극 후반에서 관객들에게 숨 쉴 틈을 주지 않은 것과는 대조적으로 <맥베스>는 처음부터 중반에 이르기까지 관객을 긴장시키면서, 맥베스의 흉중을 살피게 한다. 처음의 마녀 장면에서, 마녀들이 지껄이는 주문과 맥베스의 대사를 통해 우리는 환상과 현실의 이중적 상황을 알게 된다. 맥베스가 국왕 살해의 흉계를 품고 한 걸음 한 걸음 목적 달성을 향하여 다가서는 숨 막히는 과정에서 긴장감이 고조되다가 드디어 살인이 행해질 때까지 우리는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전반부에 맥베스의 일거일동으로 집중되던 초점이 국왕 살해 후에는 여러 사건으로 확대되면서 맥베스의 몰락으로 귀결된다. 드라마 구성의 압축감과 긴밀성은 다른 비극작품에서 찾아볼 수 없는 탁월한 극작술이었다.(중략)

흥미로운 것은 셰익스피어가 맥베스를 살인마의 성격으로 창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것은 주인공에 대한 관객의 공감을 불러일으키자는 능숙한 극작술인데, 맥베스에게 악행을 행하게 하면서도 그에게 인간적인 약점이나 부드러운 인간성, 고결한 성품을 약간 부여하여 주인공에 대한 관객들의 혐오감을 억제시켜 극적 공감을 획득하도록 하는 수법인 것을 알 수 있다. 맥베스 부인을 과격한 악의 화신으로 성격을 창조하여 그와 대조시킨 의도도 이런 각도에서 생각해보면 쉽사리 수긍이 간다. 그러나 종국에 가서 맥베스 부인이 정신착란을 일으켜 자살하는 장면은, 셰익스피어가 악을 하나의 추상적인 개념으로 다루지 않고 살아 있는 인간 속에 구상화시키려 했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마녀 장면으로써 어두운 인간 악의 상황을 강조한다든지, 극적 아이러니를 사용함으로써 극적 긴장감을 높이는 방법은 놀라운 수법이라 아니할 수 없다. 셰익스피어의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맥베스>는 대조의 체계적 방법을 극에 도입해서 큰 성과를 거두고 있는데, 이는 죽음과 생의 끊임없는 갈등을 주제로 삼고 있는 이 작품을 성공시킨 요인이기도 하다.

<맥베스>는 초자연적 환상의 의미표출을 위한 극작술이 탁월한 작품일 수 있다. 마녀들과 밴쿠오의 망령 등이 등장해서 극 전개의 결정적 역할과 가능을 다하고 있는 장면은, 희곡에 있어서 초자연적인 요소가 어떤 극적 분위기를 조성하며 극적 행동의 동인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정확한 해답을 준 경우라 할 수 있다.

― 작품 해설 중에서

 

 

■ ‘책머리에’ 중에서

 

셰익스피어의 비극 세계는 선과 악이 혈투를 벌이는 무대입니다. 햄릿은 클로디어스와 대결합니다. 리어왕은 고네릴과 리건과 대결합니다. 에드거는 에드먼드와 대결합니다. 이아고는 오셀로와 대결합니다. 맥베스는 덩컨 스코틀랜드 왕과 대결합니다. 코델리아는 왜 죽어야 합니까. 데스데모나는 왜 죽어야 합니까? 리어왕, 햄릿, 오셀로, 덩컨은 왜 그렇게 죽어야 합니까? 글로스터 백작은 왜 두 눈을 빼앗겼습니까? 거트루드는 왜 독약을 마셔야 했습니까? 싸움은 끝나지 않습니다. 전쟁은 계속됩니다. 악이 선을 제압하고, 악은 자멸합니다. 세상은 말세의 혼란이요 황무지입니다. 셰익스피어는 이런 문명의 황야 속에서 펜을 들었습니다. 그는 역사와 대결합니다. 그는 악의 근절을 위해, 평화와 질서를 위해 싸웁니다. 그의 작품은 악에 대한 저항의 선언이요, 절실한 기도요 통곡입니다.

비극을 읽고 참담했을 때 아리스토텔레스는 위안이 되었습니다. 비극이 주는 정화작용, 카타르시스(Katharsis) 때문입니다. 비극은 인간의 마음에 건강한 효과를 미친다는 것입니다. “연민과 공포를 통해 감정을 정화시킨다”는 것입니다. 병적인 정서는 다분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이며, 자기중심적인 요소가 됩니다. 우리는 비극을 통해 비극적 인물과 그 상황에 동화되면서 자기중심적인 몰입에서 차츰 벗어나 ‘외부’로 자신의 존재가 확산되는 것을 알게 됩니다. 동정(同情)을 통한 영혼의 확대는 심리적이며 도덕적인 건강에 이롭게 작용합니다. 비극이 인간 생활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불가피성을 비극의 수용자는 인식하게 되고, 우리의 통찰력은 고통을 극복하고 얻어지는 조화로운 정신적 안정을 모색하게 됩니다. 이때 도달되는 정화작용을 통해 정신은 새로운 삶의 인식에 도달합니다. 비극작품은 행동의 모방을 통해 동화작용을 일으키면서 개인의 영역을 벗어난 보편성(universality)을 얻게 됩니다. 비극작품은 질서와 조화의 가능성과 필요성을 역설하는 수단이 됩니다. (중략)

기도와 자비심과 용서는 셰익스피어가 작품에서 남긴 유언의 ‘키워드’입니다. 셰익스피어 비극의 끝머리는 항상 그렇게 마무리되었습니다. 셰익스피어는 <햄릿>, <리어왕>, <오셀로>, <맥베스> 등 비극의 주인공들이 겪은 환멸과 절망 너머로 인간의 가능성과 희망을 보았습니다. 그의 비극을 읽는 희열과 행복은 바로 이것입니다.

 

 

■ 작품 속으로

 

맥베스 : 할 수 있다면 말을 해보라. 너희들의 정체는 뭐냐?

마녀 1 : 맥베스 만세! 글래미스 영주께 축복을!

마녀 2 : 맥베스 만세! 코더 영주께 축복을!

마녀 3 : 맥베스 만세! 앞날의 임금님이시여!

밴쿠오 : 왜 그렇게 놀라시오? 놀랍도록 듣기 좋은 그 말에 뭘 그렇게 두려워하고 있소? 진정코 묻고 싶다만, 너희들은 환영인가 아니면 눈에 보이는 그대로인가? 내 친구를 보고 너희들은 현재의 신분과 새로운 작위와 앞으로 군림하게 될 왕의 칭호로 불렀는데, 그 예언에 이 착한 친구는 어리둥절해하고 있다. 그런데 나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구나. 만약 너희들이 시간의 종자 속을 들여다보고 능히 판별할 수 있는 힘이 있어서, 자랄 수 있는 종자와 그렇지 못한 종자를 가려내어 예언할 수 있다면 나에게도 말하라. 하나 나는 너희들의 은혜를 바라거나 증오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니다.

(19~20쪽)

 

맥베스 : 나는 외치는 소리를 들은 듯하오. ‘이젠 잠을 잘 수 없다! 맥베스가 잠을 죽여버렸다.’ 아, 천진난만한 잠이여, 근심 걱정의 엉킨 실타래를 풀어주는 잠이여, 매일매일의 죽음인 잠이여, 힘겨운 노동 뒤의 목욕이여, 마음의 상처를 아물게 하는 약이여, 대자연이 언제나 준비하고 있는 은혜여, 이 세상 향연의 최고의 자양분인 잠이여…….

맥베스 부인 : 그것이 어떻다는 거죠?

맥베스 : 언제까지나 부르짖고 있었소. ‘이젠 잠을 잘 수가 없다!’ 온 성 안이 떠들썩했지. ‘글래미스가 잠을 죽였다. 그렇기 때문에 코더는 영영 잠을 이룰 수 없다. 맥베스는 이제 잠을 잘 수 없다!’

(41쪽)

 

환영 3 : 사자 같은 용기를 지니고 가슴을 펴고 살아라. 신경을 곤두세우지 마라. 누가 화를 내건, 누가 초조해하건, 어디서 반역자가 나타나건 맥베스는 결코 멸망하지 않으리라. 버남의 대삼림이 던시네인의 높은 언덕까지 쳐들어오지 않는 한.

맥베스 :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누가 숲을 움직일 수 있으며, 나무에게 명령하여 땅속에 뻗은 뿌리를 뽑게 할 수 있겠는가? 기분 좋은 예언이다! 좋아! 버남의 숲이 두둥실 일어서기 전에는 반역자의 시체가 다시 되살아나지 않을 것이다. 맥베스는 왕위를 차지하고 천수를 다할 것이다. 죽음의 순간이 닥쳐올 때까지 태평한 세월을 누릴 것이다. 그러나 내 마음은 단 한 가지 궁금증 때문에 안달하고 있다. 말해다오, 너의 신통력으로 말할 수 있다면. 밴쿠오의 후손이 이 나라에 군림할 수 있겠느냐?

(79~80쪽)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