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문학(시)
비상(飛翔)
김응혁 지음|134×214×12mm(하드커버)|192쪽|15,000원
ISBN 979-11-308-1891-7 03810 | 2022.2.15
■ 시집 소개
넓은 창공을 수놓는 철새들의 비상을 노래하다
김응혁 시인의 시선집 『비상(飛翔)』이 푸른사상사에서 출간되었다. 완주 삼례 출신인 시인은 지역을 향한 애정과 고향에 서린 아름다운 추억, 고향 땅에서 벌어진 역사적 비극의 현장에서 찾아낸 선조들의 흔적을 노래한다. 가문의 역사를 넘어 민족의 애환까지 담아내는 이 시집은 깊은 감동을 준다.
■ 시인 소개
김응혁
전북 완주 삼례에서 태어났다. 전주 신동아학원, 익산 남성학원 등에서 후학을 지도하였다. 시집으로 『빈들』 『덩어리 웃음』 『비상』, 산문집으로 『저 아침의 소리는』 『풍탁소리 들으러 왔다가』, 편저로 『통천김씨가족사(通川金氏家族史)』 『통천김씨천년사(通川金氏千年史)』 부도(婦道)를 잇는 가문(家門)의 여인들』 등이 있다. 현재 통천김씨종친회장으로 종회 일을 보면서 글을 쓰고 있다.
■ 목차
제1부 백일홍
목줄 / 소 / 노숙자 / 흙질 / 떠돌이 개 / 고집 / 허수아비 / 까치밥 / 백일홍 / 고인돌 / 숨 / 씨눈 / 한물 / 꼬실럿부러 / 불꽃 / 재 / 가을 눈빛 / 콩타작 / 적송(赤松) / 능선 / 하늘 가르고 갑니다 / 울력 / 물소리
제2부 당신 꽃
백련(白蓮) / 백목련 / 새 / 꽃신 / 꽃씨 / 당신 꽃 / 어머니 / 통마늘 할머니 / 간장 항아리 / 요강 / 굴뚝 / 빈 항아리 / 기러기 / 매미의 목청 / 하늘 / 박꽃 같던 누나 / 가을 만장(輓章) / 내림보 / 토종개 / 몌별(袂別) / 가을 한 잎 / 씨앗 주머니
제3부 품
모악산(母岳山) / 내장산 / 목천가도(木川街道) / 한내 / 만경강(萬頃江) / 늪 / 인북선(仁北線) / 사뿐사뿐 삼례여 / 비비정(飛飛亭) / 찰방터 / 스레트 남향 집 / 선산 가는 날 / 설원(雪原) / 마의(麻衣)의 고혼(孤魂) / 금양 김씨(金壤金氏) / 눈물 / 안덕원(安德院) 항전 / 남계정(南溪亭) / 초혼장(招魂葬) / 통천의 여인 / 옥류정사(玉流精舍) / 아랫목 / 순 / 억새밭 / 품
제4부 솟대
단풍 / 몽돌 / 빈 들 1 / 빈 들 4 / 빈 들 5 / 흙 1 / 흙 2 / 노을 1 / 노을 2 / 노을 3 / 노을 4 / 갯벌 / 고향 / 느티나무 / 산여울 / 억새 / 연기 / 눈 / 쪽방촌 사람들 / 솟대 / 치미(鴟尾) / 비상 / 덩어리 웃음 / 풍탁소리 들으러 왔다가
작품 해설 : 역사적 상상력과 공동체의식-김현정
■ '시인의 말' 중에서
새순은 언제나 새롭다. 새싹은 이음의 질서요 희망이다, 아래로만 흐르는 물의 본새처럼.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이런 세상에 어떻게 대처하며 사는 게 옳은 일인가를 두리번거리게 된다.
그동안 발표한 작품집에서 추리고 최근에 쓴 것을 모아 한 눈으로 일별할 수 있도록 엮었다. 엮고 보니 눈을 밝혀 표현하려 했던 삶의 질곡, 씨족의 내력, 지역사, 자연의 풍광 등을 응축하여 승화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다락논을 갈다가 소를 몰고 가는 농부의 워낭 소리를 듣는다. 먹이를 삼키지 못하고 먼 창공을 날아와 토악질을 하는 어미새의 본질을 생각한다. 상여(喪輿)가 지나는 길에 펄럭이던 만장(輓章)의 훈기를 그린다.
일제강점기에 시골 선비의 아내로 일곱이나 되는 아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눈까지 멀었던 우리 할매, 이 자식 저 자식 등에 업혀 요강 단지를 들고 끌려다니면서도 끄먹끄먹 인자함을 잃지 않으셨던 할머니, 그리고 7형제 장남으로 어린 동생들을 위해 피를 말렸던 아버지의 얼룩진 삶, 만장이 지나간 자리에서 유품(遺品) 태웠던 아픔을 잊어본 일이 없다.
명절날 아들 딸 가족들이 거실에서 함께 뒤엉켜 잠이 든 양을 보고 싹수 있게 자리 잡는 손주들의 치다꺼리로 애를 태웠을 혈족의 일념을 생각한다. 씨족의 유적 복원과 씨족사 정리에 힘을 모아주신 일가분들, 여러 곳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제자들, 그리고 함께 어울려 살았던 이웃분들에게 감사한다.
역사적 시련으로 오늘날 소족으로 남은 현실에서 일념으로 복원한 유지(遺址) 관리와 씨족사 정리에 후손들이 합심하기를 기대한다. 엄벙덤벙 먼 길을 돌아온 오늘, 뒤돌아보지 않고 편안히 청명동 선산에 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간 간간이 써놓은 것을 옹알이의 습성처럼 되뇌어본다. 생활의 하수와 치사한 인정을 가린 운해(雲海)가 한결 아름답게 보인다.
■ 작품 세계
김응혁 시인(1936~ )은 전북 완주 출신으로 시집 2권과 산문집 1권, 시문선 1권 등을 펴낸 지역 원로문인이다. 1960년대 대학 시절부터 습작 활동을 해온 그는 산문집 『저 아침의 소리는』(1996)을 발간한 뒤 2003년에 늦깎이로 『문예활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하였고, 이후 시집 『빈들』(2005), 『덩어리 웃음』(2011)과 시문선 『풍탁소리 들으러 왔다가』(2015)를 발간하였다. 요즘 시인들이 평균 4~5년에 시집 한 권씩을 발간하는 것에 훨씬 못 미치는 과작이라 할 수 있다. 이는 평소 시 한 편 한 편에 정성을 많이 들인 점과 자신의 작품에 대한 겸손함과 엄정함 등이 작용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오랜 기간 교직에 몸담으며 교육에 심혈을 기울인 점과 가족사(족보)를 올바르게 복원하기 위한 작업을 40여 년에 걸쳐 한 점 등도 일정 정도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의 시에는 삶과 문학의 ‘시원(始原)’에 관한 내용이 자주 등장한다. 자신의 정체성(identity)을 찾기 위한 우직한 발걸음을 통해 시인은 생의 근원을 파악하게 되고, 역사와 현실의 이면을 엿보게 되며, 나아가 시의 길까지 보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탐색하는 일이 역사와 현실, 문학의 길과 맥이 닿아 있음을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시인들과 차별되는 점은 그의 행보가 승자의 시선보다는 ‘역사적 비극’을 경험한, 권력 없고 힘없는 패배자의 시선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시조(始祖)이기도 한, 신라에서 고려로 국운이 넘어가는 상황 속에서도 개골산에 들어가 끝까지 신라의 자부심과 긍지를 지키려 한 ‘마의태자’에서부터 실마리를 풀어가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의 시가 우울하거나 비관적이지 않은 것은 그의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시세계는 역사적 비극과 현실적 고통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생명력과 자연의 섭리에 바탕을 둔 낙천성의 융화라 할 수 있다.(중략)
철새의 본능은 비상이다. 그리하여 한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나그네 새’인 철새는 마치 오랜 기간 연습이라도 한 것처럼 질서정연하게 군무를 보여준다.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장관의 모습이다. 시인은 해가 질 무렵 망망한 갯벌 위를 떼 지어 날아오르는 철새들이 비상하는 모습, 군무를 통해 ‘비상’을 꿈꾼다. “이 세상을 아름답게 물들이며/새날을 밝게 하기 위하여 해가 지고 있다”라고 한 데서 여명을 내장한, 희망적인 일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것이 그가 끊임없이 비상할 수 있었던, 시의 길이자 시인의 길이었던 것이다.
- 김현정(문학평론가) 작품 해설 중에서
■ 시집 속으로
당신 꽃
이른 봄 밭머리에
하얀 옷고름 매만지며 웃음 띠던
당신 꽃
집안일 다 떠맡고 만날
발 동당거리며 구정물 헹구던
당신 꽃
꽃손자 둘러업고
아장아장 까치발 띄우던 함박 같은
당신 꽃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른 새벽, 이슬길 밟던
당신 꽃
함박눈 흐르륵 쏟아지던 날
옹달샘 맨바닥에
보콜보콜하게 핀
당신의 하얀 꽃을 보았습니다
선산 가는 날
뿌리를 찾으려
선산엘 가는 날은
쩌렁 풀기 어린 말씀들이 떠오른다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청명동
고갯길을 마악 돌아서면
주르르 뼛속까지 스며드는
우리 선조들의 삼베 등거리
금강산 통천으로
천년 사직의 한을 달랜
우리 조상 마의태자
그 아드님 교(較)
“선비는 절대로 곧아야 하느니라”
“가족끼리는 다투지 말라” 하시던
우리 남계(南溪) 할아버지
비록 대는 끊이고, 출입도 끊이고
일가친척의 수마저 줄었지마는
그래도 조상의 넋처럼
그렇게 화목하게 살리라
뿌리를 찾으려
선산엘 가는 날은
에헴에헴 우리 증조할아버지의
얼 묻은 말씀들이
하나씩 하나씩 떠오른다
비상
해가 지고 있다
이 세상을 아름답게 물들이며
새날을 밝게 하기 위하여 해가 지고 있다
끝없이 펼쳐지는 하늘
군데군데 갈대 덮인 망망한 갯벌 위를
철새가 떼지어 날아오른다
세상을 들썩거리게 하는 군집의 비상
하늘을 가르며
먹이를 찾아 한마음으로 비상하는 가창오리의 본심(本心)
떼지어 산을 이루다가
합심하여 글자를 만들다가
다시 엎질러버리는 장엄한 군무(群舞)
누가 이런 질서를 본받게 했는가
이런 정신을 누가 이어지게 했는가
사람들의 온갖 욕심으로
더러워진 이 땅을 벗어나기 위하여
이 차가운 겨울에도
나그네 새는
그저
힘차게 비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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