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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사상 시선

카페, 가난한 비

by 푸른사상 2013. 2. 14.

 

 

박석준 시집 ,『카페, 가난한 비』

 

  

 

 

 

2008년 『문학마당』신인상에 시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한 박석준 시인의 첫 번째 시집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도시에서 살아가면서 현 세계가 나의 가장 확실한 시적 조건이라고 생각하는 시인은 이번 시집을 통해 ‘말, 만남, 존재’의 관계, 말의 실현 여부에 따라 달라지는 시간의 색깔, 존재의 진정성을 흔들리게 하는 결여가 어떠한 것인지를 모색하고 있다.

말과 말 사이, 말이 사라지고, ‘그것’에 대해 ‘그것’이라는 근원적 양상이어야 할 시의 말을 찾아가는 가운데 존재의 의미를 되새기도록 해준다.

 

 

 

1. 시집 내용(목차)

 

 

 

■ 시인의 말

 

 

  제1부 시간 속의 아이

 

비 내리는 날

언덕의 아이

한 소년

아는 사람과 사랑하는 사람

돈을 세며, ‘돈을 세는 사람’을

난 널 어떻게 만났지?

시간 속의 아이

별이 빛나는 밤

내가 모퉁이로 사라졌다가 다시 탁자 앞에 나타났 을 때

마지막 출근투쟁

상품권

11월  

 

  

  제2부 카페, 가난한 비

  

카페, 가난한 비

술과 밤

블로그, 고흐

입원실 침대 위에 드러누운 말

첫눈 내린 날

바람과 사람

고흐의 의자

은행 앞, 은행잎이 뒹구는 여름날

세 가지 얼굴로 이루어진 한밤의 꿈

수선화

가을비

그리움과 사람에 대한 앎

  

 

  제3부 가을, 도시의 밤

 

위치

나무와 두 아이, 두 사람과 나

가을, 도시의 밤

어느 모델의 죽음

음악 카페에서

가을의 오전

벽 속

길이 떠는 겨울

호스피스 나뭇잎

아파트

달력을 넘기며

지난날

어느 협심증 환자의 유월

7월 6일

가카 벙어리

  

 

  제4부 산책길에 때로 둘러본 인생

 

그림 속 사람

산책길에 때로 둘러본 인생

휴가철에 생긴 일

문자메시지

그런 소시민

단 하루의 장마

일기예보

세련되지 못한 가을비

겨울, 인물이 사라지면

불안

내가 확인한 건 불과 문이다

목욕탕에서

비와 세 개의 우산과 나

 

해설 비극적 주체의 절망과 희망-이은봉

  

 

2. 시인 소개

 

 박석준

1958년 광주에서 태어나 전남대학교 국어국문과와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08년 『문학마당』 신인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진진시〉 및 〈늘푸른아카시아〉 동인, 한국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3. 시세계

 

시인 박석준은 한국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수많은 고통을 겪은 형제들을 두고 있는 사람이다. 이러한 가족의 일원인 그는 저 자신 또한 전남지역에서 교사로 근무하며 전교조운동에 참여하는 등 적잖은 고통을 감내한 바 있다. 그래서일까. 그의 시의 정서적 바탕에는 고통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오랫동안 마음고생을 하지 않고서는 형성되기 어려운 슬프고도 서러운 정서가 깊게 깔려 있는 것이 그의 시이다.

이때의 슬프고도 서러운 정서는 거개가 침통한 표정,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우울한 표정을 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시의 이러한 정서는 심지어 멜랑콜리라고 명명되어도 무방할 정도이다. 멜랑콜리라고 불리는 비정상적인 심리는 그 범주를 한 마디로 잘라 말하기 쉽지 않다. 그것이 고독, 소외, 상실, 환멸, 염증, 피곤, 절망, 불안, 초조, 공포, 설움, 우울, 침통, 싫증, 짜증, 권태, 나태, 무료 등 어긋나고 비틀린 정서를 모두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왜곡된 정서는 물론 자본주의적 근대에 들어 부쩍 만연해진 병적 심리 일반과 무관하지 않다. 극단적인 이기주의로 말미암아 소통이 단절된 시대, 공감이 사라진 시대의 정서와 깊이 연결되어 있는 것이 멜랑콜리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멜랑콜리는 일조량이 부쩍 줄어드는 가을에 훨씬 심하게 나타나는 것이 사실이다. 플러스의 양기보다는 마이너스의 음기에 훨씬 더 가까운 것이 멜랑콜리이거니와, 그것이 신생의 봄기운보다는 소멸의 가을 기운과 밀접하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박석준의 시에 가을을 노래한 시가 유독 많은 것도 실제로는 이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제목에 가을이라는 언표가 들어가 있는 시만 하더라도「가을비 ― 물컵 속의 담뱃재」, 「가을, 도시의 밤」, 「가을의 오전」, 「세련되지 못한 가을비」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 그의 이 시집이다.

일조량이 줄어들 뿐만 아니라 겨울이 멀지 않다는 점에서도 가을은 쓸쓸하고 외로운 계절이다. 고독을 노래하는 데 평생을 바친 김현승 시인의 시에 특히 가을을 노래한 시들이 많다는 점도 이와 관련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고독은 소외의 적극적인 모습이거니와, 그것이 과도할 정도로 경쟁을 우위에 두는 자본주의 사회에 이르러 더욱 심화되었으리라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물론 이때의 고독은 우울로, 곧 멜랑콜리로 전이되기 쉽다. 멜랑콜리의 핵심 정서는 우울이거니와, 이때의 우울이 고독이나 소외, 상실이나 좌절 등의 정서와 상호 침투되기 쉽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박석준이 자신의 시에서 “비는 전날에도 왔지만/…… 내가 가는 길 위에 우수가 들어선다”(「마지막 출근투쟁」)라고 노래하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이는 잘 알 수 있다. 다음의 시도 동일한

맥락에서 읽을 수 있는 중요한 예이다.

 

외로움 때문이었다.

댓글 하나에,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그리움을 둔 것은

―「음악 카페에서」 부분

 

한 해면 삼백육십오 일을, 슬프다고 말해 놓고도

말 못할 슬픔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안」 부분

 

버리고 싶은 우울이 가난이 튀어나온 곳에서 일어난다.

우울은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우울은 네가 없는 곳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비와 세 개의 우산과 나」 부분

 

 

물론 이 시집에 드러나 있는 박석준의 자아는 무력해 보일 때도 있고, 무료해보일 때도 있다. 더러는 절망하고 좌절하는 자아로도, 더러는 고독하고 외로운 자아로도 존재하는 것이 그의 시에서의 주체의 모습이다. 뿐만 아니라 그의 시와 함께하고 있는 주체는 때로 실패한 자아, 상실한 자아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처럼 아픈 주체, 고통을 받는 주체로서의 그의 시의 자아는 급기야 “내일, 혈관확장시술을 하기로 되어 있는데”(「어느 협심증 환자의 유월」) 등의 고백을 보여주기까지 한다.

이러한 모습을 보여주는 자아의 정서 일반을 이 글에서는 죽음의 정서, 곧 멜랑콜리라고 명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때의 죽음의 정서, 곧 멜랑콜리가 시인 박석준의 순수하고도 무구한 마음에서 비롯되었으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지공무사의 마음, 사무사의 마음을 갖지 않고서는 자신의 시에서 그가 이처럼 밝으면서도 어두운 정서를 구현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명징하고 정직한 양심이 불러일으키는 슬프고도 서러운 정서에 기초해 있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은 것이 그의 시에서의 멜랑콜리라는 것이다. 그의 시에 구현되어 있는 이들 정서를 가리켜 밝은 어둠, 나아가 흰 그늘이라고 불러도 무방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4. 추천의 글

  

박석준 시인의 시집 『카페, 가난한 비』에는 비가 내리는 도시의 풍경, 소시민으로서의 삶, 고독한 예술가였던 고흐에 투사되어 있는 내면의 우울이 파노라마처럼 전개된다. “카페 ‘가난한 비’는 지금 가난한 비 속을 흐르고 있다, 현재가 없는 지금”(「카페, 가난한 비」), “그렇게 생을 잃어 간다. 밤과 술이 빗속에 있던 날에”(「술과 밤」), “우울은 너가 없는 곳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비와 세 개의 우산과 나」)와 같은 그의 시적 진술은 낭만과 리얼의 혼합을 십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시는 텍스트(text)와 콘텍스트(context)를 동시에 염두에 두고 있어야 이해하기가 쉽다. 매 편의 시마다 시인의 꿈과 욕망이 현실의 제 조건과 억압에 의해 고통을 받고 있는 것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내면의 우울과 고독을 드러내 자신을 치료하고자 하는 박석준 시인의 시 쓰기는 양극화 시대를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힘든 자화상에 관한 이야기라고 해도 좋다. 고도로 발달한 자본이 문화를 지배하고 세뇌하는 환경 속에서 그는 지금 저 자신만의 감수성으로 현실에 저항하는 시적 신념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고통을 연민으로 받아들일 때 독자들은 그의 시편들이 언어 놀이가 아니라 온몸의 힘을 기울인 것임을 좀 더 잘 알게 된다.

- 김백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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