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문학(시)
풀이라서 다행이다
한영희 지음|푸른사상 시선 149|128×205×7mm|120쪽|10,000원
ISBN 979-11-308-1822-1 03810 | 2021.9.15
■ 도서 소개
생의 근원과 삶의 의미를 일깨우는 시편들
한영희 시인의 첫 번째 시집 『풀이라서 다행이다』가 <푸른사상 시선 149>로 출간되었다. 시인은 삶의 언저리에 있는 작은 존재들이 내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듣는다. 광주의 오월을 살아온 사람들의 아픔과 상처도 기꺼이 품는다. 시인의 따스한 시선과 깊은 세계 인식은 생의 근원과 삶의 의미를 일깨워준다.
■ 시인 소개
한영희
전남 영암 금정산골에서 태어났다. 2014년 농촌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2018년 『투데이신문』 직장인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광주전남작가회의에서 활동하고 있다.
■ 목차
제1부
풀 / 떨림 / 화석 / 공존 / 까막눈 / 눈꽃 / 때까치 우는 저녁 / 라디에이터 / 로드킬 / 와온 해변 / 봄에서 여름 사이 / 햇볕이 들어온 날 / 문상 / 저수지의 내력 / 적막한 한 평 / 금이빨 삽니다 / 허수아비
제2부
광주의 숨 / 엄마 바위 / 찔레꽃 이야기 1 / 찔레꽃 이야기 2 / 응시 / 입들이 가득 찬 방 / 일용직 / 넷째 손가락
제3부
논 / 녹슨 낫 / 가족사진 / 단팥빵 / 뒤뜰에 대한 기억 / 달빛 켜는 밤 / 수족관 / 연 / 종부(宗婦) / 배꼽시계 / 매실
제4부
함께 먹는다는 건 / 간이역 / 오늘 광주 하늘은 흐림 / 개똥수박 / 뜨거운 약 / 그들이 사는 법 / 너에게 가는 길 / 말복 / 말랑말랑한 감정 / 먼지의 시간 / 몽유병 / 인연 / 어떤 길 / 여기 혀가 있어요 / 멸치 똥을 따는 밤 / 아침, 혹은
작품 해설 : 체온으로 디딘 자리에서 풀이 돋고 -최은묵
■ 시인의 말
퍼즐 조각처럼 흩어져 살아도
하나가 빠지면 텅 빈 계절 같은 여기
나는 그들과 함께 오늘을 채우고 있다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
■ 추천의 글
한영희 시인의 시는 시상과 문장 사이에 뒤틀림이 없다. 이는 언어가 현상을 끄덕이거나 삼투되는 동안의 기다림을 시인이 한 발 물러나 견디고 받아들였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상시의 그가 보여주는 직선적이고 도전적인 삶의 자세와 배치되지만, 반면에 그를 아는 이들이 『풀이라서 다행이다』를 읽으며 느낄 깊이와 새로움을 상상하게 된다. 차에 치인 고양이에게 “야옹 야옹 날아”(「로드킬」)가기를 비는 시인의 마음은 페이지를 넘기면 광주에 살아 겪었던 사람의 아픔으로 몸을 바꾼다. 평범한 어느 하루가 금세 “총을 든 군인들이” 출몰하는 “몽유”(「몽유병」)의 세계가 되는 것이다. 크고 작은 아픔들이 그의 시에서 모이고 뒤섞여 마침내 시집의 전면이 된다. 이런 연민을 한영희의 어투로 말하면 “가끔은 사상범처럼 붉어”(「여기 혀가 있어요」)진다는 고백이 될까.
― 임재정(시인)
한영희 시인의 시들은 생의 근원과 삶의 의미를 일깨우는 만연보(萬緣譜)이다. 새끼들 입에 밥 넣어주던 가난한 아버지, 야간 근무를 하러 가는 아내를 배웅하는 다리 불편한 남편, 아내가 보고 싶어 안달하는 요양원의 할아버지, 손톱이 까맣게 빛나는 구두 수선집의 주인…… 허기를 먹는 고양이들, 자동차에 치여 납작해진 두꺼비, 수의를 입고 있는 연탄재, 바람이 들 때 깨어나는 허수아비. 총을 든 군인들에 의해 얼어버린 오월의 빛을 다독여 지켜낸 광주도 품고 있다. 인연들의 숨소리까지 듣는 나무 같은 시인의 가슴에는 봇도랑에 찰랑찰랑 들어가는 봄물이 흐르고 있다.
― 맹문재(문학평론가·안양대 교수)
■ 작품 세계
‘딛다’는 머묾과 나아감 중 어느 쪽에 가까울까? 세상은 어디선가 머물고 어디론가 나아간다. 그중 한 곳, 그러니까 관념이 지독하게 고인 세계를 가슴으로 맞아야 하는 게 시인의 몫이라면, 이때 ‘딛다’는 시인이 어떤 세계로 부름을 받는 일이라고 해도 좋다. 이렇게 볼 때 ‘딛다’는 어떤 세계의 미분(微分)이며 한 편의 시는 사이사이에 자국으로 찍힌 이미지를 호명하는 과정이다. 이미지는 파편으로 존재할 때와 모여 있을 때 분명 소리가 다르다. 세계를 이루기 전과 세계를 이룬 후의 시적 파장이 다른 것처럼 말이다.
한영희 시인의 시집 『풀이라서 다행이다』는 머묾으로 간직했던 사유를 나아감의 화두로 제시한다. 시인의 눈은 대체로 긍정적이고 따뜻하다. 작고 낮은 곳의 사물과 그들이 뱉는 목소리에 기꺼이 마음을 내어주기까지 시인이 디딘 삶의 영역은 평면이 아니었을 것이다. 타자를 온전히 더듬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 불가능함이 시인의 고유한 색을 만든다. 한 명의 시인이 바라보는 세계는 그래서 충분한 값을 지닌다. 이렇듯 시인이 온몸으로 디뎌 만든 자국을 연결하면 고유한 방향을 만날 수 있다. 방향은 지속적이다. 어디에서 어디로, 시인의 자국을 따라가는 동안 독자가 만날 수 있는 건 단순히 수십 편의 작품이 아니라 시인이 디딘 자국의 폭과 깊이도 포함된다. 『풀이라서 다행이다』에서 보여준 시편들은 삶의 언저리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사물들을 배경으로 한다. 하지만 시인은 그들을 통해 각각의 깊이를 발견한다. 때론 잔잔하게 때론 굴곡진 보폭에서 찾아낸 울림은 결코 쉽게 만난 것이 아니다. 시인이 사물의 목소리를 몸으로 녹이는 동안 그들의 목소리는 새로운 체온을 얻는다. 이런 온도가 바로 울림을 일으키는 힘이다.
- 최은묵(시인) 해설 중에서
■ 시집 속으로
풀
지팡이에 이끌려 뒷골목을 빠져나온 노인이
왼발 오른발 규격에 맞춰 걷는다
울퉁불퉁한 길 위에서
넘어지며 살았으리라
몸이 기우뚱거릴 때마다
바닥을 잡고 일어서는 그림자
불꽃 같은 풍경을 굴리며 간다
바람이 불 때마다
한 꺼풀 또 얇아지는
발목
로드킬
바닷속 물고기처럼
꽃밭의 꿀벌처럼
자유를 꿈꾸는 곳으로
야옹 야옹 날아가거라
무덤에서 삼색 나비꽃이 훨훨 피어오르겠구나
멸치 똥을 따는 밤
뒤척여도 잠이 들지 않는 밤
눈 동그랗게 뜬 채
바싹 마른 멸치를 다듬는다
작은 몸으로 품고 있던
가늘고 검은 똥이
멸치가 간직한 바다의 크기였을 것이다
말라버린 바다를 따로 모은다
염을 하듯 손끝으로 만져보는
단단한 잠
뒤돌아서 눈물을 닦던 당신의 밤도
이렇게 말라갔는지
짠내 나는 조각 하나
몸속에 담으려고 밤을 뒤척이던
멸치 같은 사람들
낡은 비늘 서둘러 닦고
새벽을 나선다
창밖 바닷소리 들릴 때마다 꿈틀거리는
액자 속 아버지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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