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문학(시)
나는 누구의 바깥에 서 있는 걸까
박은주 지음|푸른사상 시선 148|128×205×7mm|128쪽|10,000원
ISBN 979-11-308-1812-2 03810 | 2021.9.5
■ 도서 소개
삶의 깊은 못물에서 길어낸 투명한 언어
박은주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나는 누구의 바깥에 서 있는 걸까』가 <푸른사상 시선 148>으로 출간되었다. 삶의 깊은 못물에서 길어낸 시인의 진솔하고도 투명한 언어는 참으로 따뜻하고도 절절하다. 시인으로서 잘 쓸 수 있는 시들을 여실히 보여주는 이 시집은 독자들에게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 시인 소개
박은주
대구에서 봄의 아이로 태어났다. 2007년 시로 문단에 나왔으나 소설에 빠져 방황하다가 2012년 『사람의 문학』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작을 위해 경북 봉화 해저리에 나그네로 들어 두 해를 살며 시집 『귀하고 아득하고 깊은』을 펴냈다.
(E-mail : qwea0626@hanmail.net)
■ 목차
제1부
빈집 / 빙점 1 / 빙점 2 / 지안이의 담요 / 어느 오후에 / 또 다른 생각 / 휘파람을 불며 / 짬밥의 구력은 힘이 세다 / 가을에 부는 봄바람은요 / 민망한 이야기 / 바람의 구도 / 별이 빛나는 밤에 / 시인 / 다시, 설정하다
제2부
사람 그 쓸쓸한 이름 / 시간을 붙들며 / 사유의 편력 / 있지만 있지 않은 것들 / 방충망 장수의 말 / 하루살이의 초상 / 출세에 대한 편견 / 바람 부는 날 / 시인 백서 / 이웃집 사람들 / 사람의 문제 / 행운에 대한 추론 / 아버지의 달 / 몸의 구도
제3부
그림자 속으로 / 어처구니없게도 1 / 어처구니없게도 2 / 버스 안에서 /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2>를 보고 / 긍정적인 비밀 / 절대 셈법 / 절대 시간 / 지혜로운 갱년기 생활 / 외계인처럼 / 옥상이 없는 집에 사는 여자들에게 / 거울 / 먼 그리움이 오는 이유 / 내가 뭘 어쨌는데
제4부
인생 / 배추밭의 일 / 나무의 마을 / 환승 / 생물학 개론 / 지우면 안 되는 말 / 지우면 안 되는 일들 / 이 순간은 살아 있는 것들의 순간이다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 순천 박가네 소인배 / 가문의 내력 / 간소화 전략 / 그림 그리기 / 사람을 찾습니다
작품 해설 : 텅 빈 곳과 낮은 곳으로 - 문종필
■ 시인의 말
서로 닿지 못해 떠다니는 그리움은 어디로 가나
갈 곳을 잃어버린 언약은 어디를 떠도나
공허한 언어들의 멍울은 어디를 헤매나
그 쓸쓸함 그 외로움은 어디로 가나
죽어도 끝나지 않을 이 길 위에서
나는, 나는 무엇으로 사나
■ 추천의 글
삶의 깊은 못물 속에서 그 수면으로 떠올리는 오묘하게 어룽진 물무늬가 박은주의 시다. 사람과 사람 간을 절절하게 잇고 맺고 푸는 마음의 말들. 긍정으로 열린 연민의 세계로 통하는 말들. 그녀의 생은 “어머니 없는 빈집”같이 허전하지만, 그래도 “살다가 헐어진 사람의 속”을 헤며 “같이 가자고, 같이 가자고 길을 내민”다. 그 삶은 눈물의 올로 짠 거미줄 같은 걸까? 그래, 그녀에겐 ‘눈’이 중요하다. “시인은 세상을 보고 세상을 말하는 눈”이라고 여긴다. 그리하여 “산다는 것은 우는 일이고 운다는 것은 살아 있는 힘”이라며, “눈물이 아니면 무엇으로 삶을 씻”겠느냐고 되묻는다. 그래 그래, “진주가 어디 원래부터 진주였던가/원래는 아득한 눈물 한 방울이었”던 것을. “낮고 어둡고 깊어”져서 “사람 그 쓸쓸한 이름”을 호명하는 동정(同情)과 연민의 시각이며, 자비로 붙드는 손길의 시학이라 할 만하다.
― 이하석(시인)
■ 작품 세계
시선이 참 따뜻한 시집이다. 멋 부리지 않은 정직한 언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시를 지었다. 당대의 유행을 쫓아가지 않았고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을 열심히 갈고닦았다. 그래서 박은주 시인의 시집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런 언어를 만나면 괜스레 힘이 난다. 화려하진 않지만 수줍은 고백이랄까. 때론 화려한 것이 부담될 때가 있는데, 박은주 시인의 언어는 수줍은 목소리로 진솔하게 세상과 만나고 있었다. 투명하고 또 투명하다. 이런 차분함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이 시집에 수록된 시들이 마음에 들었고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과 함께 읽기로 마음먹었다. 그렇다면 이런 용감한 말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자명하다. 상징 언어 체계 속에 삶을 온전히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투명한 것은 투명한 대로 매력이 있는데 그의 정직한 삶과 투명한 언어가 맞물린 것 같다. 나는 이러한 성질이 현대성의 중요한 성질이라고 생각한다. (중략)
그녀는 거울처럼 투명하게 그린다. 그것이 그녀의 창법이며 목소리이다. 시인은 이 방법을 잘 구사할 줄 안다. 무엇보다도 눈치 보지 않고, 이 방식으로 노력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자신의 창법이 아닌 것을 억지로 끌고 와 흉내를 내는 것보다 정직한 것이 오히려 몇백 배 낫다.
물론, 습관의 영역으로 확장해 불가능한 것을 내 것으로 변형하는 방법도 있다. 이 방법은 지독한 훈련을 담보로 한다. 그러나 그것은 소수의 몇몇만이 이뤄낼 수 있는 사건이다. 박은주 시인은 그곳까지 자신의 몸을 실험하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닦고 쓸고 매만졌다. 그녀는 거짓 없는 언어가 좋은 언어라고 생각했고, 삶 역시 동일하다고 믿었다. 반향이라는 측면에서 미학적인 잣대를 들이댈 수도 있지만 잣대를 운운하기에는 박은주 시인의 언어는 참, 참, 참, 솔직하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마음에 든다. 내가 쓴 ‘역설’이라는 단어가 위험하다. 시가 투명한 것이 무엇이 문제인가. 나는 무슨 이유로 투명한 언어를 옹호하는 데 힘들어하는가. ‘좋다’는 의미를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람이 좋으면 시도 좋다. 삶이 곧으면 시도 곧다. 이 시집은 삶(生)을 품고 간다.
- 문종필(문학평론가) 해설 중에서
■ 시집 속으로
시인
눈에 꿀 한 방울씩 떨어뜨렸다
꿀이 눈병을 낫게 한다기에
서리 맞은 어린 뽕잎을 끓인 물로 눈을 씻었다
어느 옛사람이 그렇게 눈병을 고쳤다기에
눈으로 연결된 혈자리마다 뜸을 놓았다
뜸을 놓을 때마다 기도를 했다
보게 해주세요…… 제발 보게 해주세요
눈이 먼 음악가도 있고 눈이 먼 화가도 있지만
눈이 먼 시인은 없다고 누가 말했다
눈이 멀면 시를 쓸 수 없는 거라고
그때야 알았다
시인은 세상을 보고 세상을 말하는 눈이라는
방충망 장수의 말
꼭 걸러야 할 무언가가 있다는 듯
낡은 쪽문을 떼고 방충망을 다는 그는
해충이 몸을 무는 것 같지만 실은 마음을 무는 거라며
방충망 하나면 근심 걱정 다 걸러줄 거라는데
그래 살다가 물리는 건 몸이 아닌 마음이었지
그런 마음을 뒤적이며
전화번호부 목록을 정리하는 것도
조리로 불린 수수를 일며 돌을 거르듯
누군가를 거르는 일이었지
방충망 장수는
다시는 물리지 않겠다는 듯
어느새 옆집 쪽문을 떼고 방충망을 단다
그날 저녁
방충망에 달라붙어 불빛을 쫓는 해충과
방충망에 달라붙은 해충을 쫓는
그렇게 방충망을 사이에 두고 쫓고, 쫓기는
그림자를 보며
나는 누구의 바깥에 서 있는 걸까
나는 누구를 바깥에 세워놓은 걸까
생각했다
몸의 구도
얼굴에서 입이 눈 아래 있는 것은
먼저 보고 나중에 말하라는 거지
입은 하나인데 귀가 둘인 것은
두 번은 듣고 나서 말하라는 거지
그 아래로 손과 발이 있는 것은
먼저 보고 들은 후 나중에 움직이라는 거지
몸이 흐르는 길이 아래로 나 있는 것은
본 것도 들은 것도 다 아래로 흘려보내라는 거지
몸의 구도가 물의 구도를 닮아 흐르고
물의 구도가 몸의 구도를 닮아 흐르는 걸 보면
세상에 뭐 그리 거창한 가르침이 있겠어
우리 몸이 다 가르쳐주고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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