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여성 문학의 문을 연 작가, 박화성
『나는 작가다』 | 박화성 지음 | 서정자·김은하·남은혜 엮음 | 푸른사상사 | 376쪽
한국 여성문학사에서 가장 오랜 시간 활동하며 한 시대를 이끌어온 박화성의 작품 선집 『나는 작가다』가 출간되었다. 엮은이(서정자·김은하·남은혜)들은 이 책을 통해 여류작가가 아닌 ‘작가’로서 근대문학사에 뚜렷한 이정표를 세우고 독자적인 길을 개척한 박화성의 문학 세계를 펼쳐 보인다.
1925년 『조선문단』에 이광수의 추천으로 단편소설 「추석 전야」로 등단하여 작품 활동을 시작한 소영 박화성은 한국 여성 최초로 『동아일보』에 장편소설 『백화』를 연재한 작가이자, 장편 17편, 중단편 66편에 이르는 수작을 끊임없이 창작하며 한국 여성문학사에서 가장 오래 활동한 작가로서 그 이름을 남기고 있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과소평가되거나 폄하되었던 시대, 남성 중심적으로 흘러가는 문단 분위기에 굴복하지 않고 날카로운 시대인식을 소설화하며 당당한 작가로서 우뚝 선 것이다. 앤솔러지의 제목처럼 ‘여류’라는 한계를 지워버리고, 오롯이 ‘작가’로서 일관해온 박화성의 문학적 삶을 이 선집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박화성은 일제강점기라는 굴곡진 시대에 수많은 문제작을 창작하여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식민지 수탈의 거점이었던 목포는 그가 출생하고 성장한 곳으로, 박화성 문학 세계를 구축한 특별한 배경이 되었다. 그는 목포를 배경으로 조선인 하층민, 노동자 계급의 비참하고 빈곤한 실상과 식민지 여성이 겪는 고통을 구체적으로 그려내며, 식민지 담론에서부터 이데올로기의 대립, 분단과 해방공간까지의 시대적 갈등을 치밀한 구성과 유려한 필치로 소설화한 것이다. 시대의 아픔을 작품의 살과 뼈로 삼은 작가는 소설로써 식민지 민중의 설움과 애환을 고발하며 그들을 감싸 안아준다.
엮은이들은 1920년대 방적공장 여성 노동자의 눈에 비친 식민지 민중의 고통과 부조리한 사회현실을 형상화한 「추석 전야」, 하수도 공사 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착취로 인해 벌어진 파업을 다룬 「하수도 공사」, 식민지 여성이 물건처럼 사고 팔리는 현실을 소재로 한 「온천장의 봄」, 8·15 해방 이후에도 여전히 오지 않은 여성해방의 현실을 이야기한 「광풍 속에서」 등 작가를 대표하는 중단편 소설 11편과 1편의 수필을 선정하고 작품마다 각각의 해설을 달아 작품 세계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21세기의 여성주의를 고민하는 오늘날의 여성들에게도 중요한 시사점이 될 수 있는 작품들이다. 또한 최초 발표된 판본을 저본으로 하여 수록한 수필 「여류작가가 되기까지의 고심담」에는 여성으로서의 글쓰기에 대한 고민이 솔직하게 드러나 있다.
한국 근대여성 문학의 문을 연 박화성의 문학세계를 살핌으로써 그녀가 가졌던 선각자적 자의식의 한 단면을 발견할 수 있다. 아울러 박화성 단편문학의 전모를 담은 이 책은 박화성 문학 연구뿐만 아니라 동시대 작가 연구와 한국 근대문학사 연구의 진일보를 위한 발걸음이기도 하며, 한국 문학사에서 독자적인 길을 개척한 ‘작가’ 박화성의 족적을 살피는 길이기도 하다.
교수신문, "한국 근대여성 문학의 문을 연 작가, 박화성", 김재호 기자, 20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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