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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간행도서

김옥숙 시집, <새의 식사>

by 푸른사상 2020. 10. 29.

새의 식사

김옥숙 지음푸른사상 시선 134128×205×8 mm14410,000

ISBN 979-11-308-1712-5 03810 | 2020.10.28

 

 

■ 도서 소개

 

무거운 삶을 껴안고 날아오르는 일상의 희망들

 

김옥숙 시인 겸 소설가의 첫 시집 새의 식사<푸른사상 시선 134>로 출간되었다. 삶과 노동의 현장에서 고통과 슬픔을 견디는 존재, 그들이 살아가는 일상의 순간들을 세밀하게 포착해낸 시집이다. 상상력이 돋보이는 강렬한 비유는 시인이 바라보는 삶의 모습을 희망적이면서도 다채롭게 일구어나간다.

 

 

■ 시인 소개

 

김옥숙

2003매일신문신춘문예에 시 낙타가 당선되고, 같은 해 전태일문학상에 소설 너의 이름은 희망이다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희망라면 세 봉지, 장편소설 식당사장 장만호』 『흉터의 꽃』 『서울대 나라의 헬리콥터맘 마순영 씨가 있다.

(E-mail : paaaraan@naver.com)

 

 

■ 목차

 

시인의 말

 

1

정육점 앞에서 / 낙타 / 그는 어디서든 들러붙는다 / 짜장면을 먹는 한순간 / 소파 속으로 들어간 아버지 / 환지통 / 부드러운 강철 혓바닥 / 횟집 수족관 속에서 / 아린 마늘 같은, / 모래 인간의 도시 / 희망을 파묻으며 / 고통을 만나는 한 가지 방법에 관하여

 

2

무명배우 / 장작불 / 강을 건너는 노인 / / 하얀 찔레꽃 / 뿌리는 벼랑 끝에서도 멈추지 않는다 / 날개 만들기 / 천마도 / 바위 / 연밭에서 / 등이 터진 저 인형 / 꿈의 알리바이 / 화분 속의 여자 / 물속의 집 / 공무도하가

 

3

거짓말 통조림 주식회사 / 오케이 포장이사 / 그 도시에는 악어들이 살고 있다 / 스마트폰에서 푸른 물이 밤새 / 도시의 비둘기 / 추락에 대하여 / 처용, 주민등록증을 잃어버리다 / 개미 언덕 / 사막의 여인에게 / 위험한 시인의 섬 / 당신의 특별하고 위대한 사랑 뒤에서 / 영문도 모른 채, 영문도 모른 채 / 꿈꾸는 물고기 / 유쾌한 마녀를 위하여 / 당신이 나를 무엇이라 불러도 / 냉장고 속의 통닭 한 마리

 

4

어느 날 문득 수족관 속 물고기들이 / 새의 식사 / 달로 지은 밥 / 연못 / 붉게 물든다는 것 / 마른 대추 / 종이꽃 / 그 달빛이 걸어오네 / / 장엄한 신전 / 빨래 / 버려진 이불 / 호떡 굽는 천수관음보살 / 그림 속에서 나온 솔거 / 아라크네의 집 / 즐거운 이사

 

작품 해설삶과 노동의 복원 남승원

 

 

■ 시인의 말

 

2003년도에 시로 첫발을 딛고 참 많이도 길을 돌아왔구나 싶다. 어리석고 길눈이 어두운 탓에 길을 잃고 헤맨 적이 많았다. 오랜 세월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시들이 나를 다시 불렀다. 이젠 꺼내달라고, 민들레 꽃씨처럼 허공을 날아 제 길을 가고 싶다고. 보도블록 틈새나 금 간 콘크리트나 돌 위에 떨어지든, 척박한 흙에 떨어져 싹을 틔우든, 이젠 멀리 날아가고 싶다고.

서랍 속 긴 어둠을 끈질기게 버텨준 내 시들, 내 어리석음을 견뎌준 당신, 길 위에 자주 넘어졌던 나를 일으켜준 눈부시게 아름다운 그대들.

길을 일러준 고마운 스승님들이 계셨다. 길을 많이 돌아오느라 첫 시집을 이제야 세상에 내보낸다. 변치 않은 벗처럼 나를 떠나지 않고 오래 기다려준 시, 시가 곁에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위안인가.

다시 걸어갈 것이다.

 

 

■ 작품 세계

  

시쓰기란, 그리고 진리를 수립해나가는 일이란 결국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여기에서 벌어질 수밖에 없는 행위이다. 필연적으로 도래하는 유일한 사건으로서 죽음을 공평하게 나누어 가진 우리의 평범한 일상은 이처럼 시쓰기-읽기를 통해 진리를 찾아가는 투쟁이 벌어지는 무대가 된다. 우리가 때로 시 작품을 통해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을 확인하는 순간에 다른 존재를 강렬하게 인식하고 공유하면서 개인적 차원을 넘게 되는 경험 역시 이와 같은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김옥숙의 시집 새의 식사를 읽는 일은 이처럼 진리의 모습을 탐구해나가는 것과 동일한 경험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은 이 시집에서 일상을 바라보는 세밀한 시선을 시종일관 유지하면서 흔히 삶의 무게라고 부르는 순간들에 대해 시적 형상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렇기에 김옥숙 시인이 바라보는 삶의 모습들은 일상의 고통을 견디게 해주는 희망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죽음을 향해가는 필연적 운명의 시간과 한 몸이 되어 있다. 새의 식사전반에 걸쳐서 발산되는 끈끈한 점착력 역시 바로 여기에서 비롯한다. (중략)

이 작품을 비롯하여 시집 새의 식사를 통해 마땅히 강조되어야 할 부분이 바로 여기이다. 김옥숙 시인은 살아가는 동안 반복될 수밖에 없는 노동과 또 노동의 반복으로 이루어지는 우리의 일상을 섣불리 뛰어넘으려 하지 않는다. 또한, 고통스러운 노동의 현실을 동정하거나 성급하게 삭제하지도 않는다.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있는 것처럼, 그는 노동의 현장을 섬세하게 관찰하면서 실질적인 노동의 행위와 그것이 만들어내는 가치들을 복원해냄으로써 결국 노동의 주체인 인간의 얼굴을 마주하게 만들고 있다.

남승원(문학평론가) 작품 해설 중에서

 

 

■ 추천의 글

 

김옥숙의 시를 읽는 즐거움은 익숙하고 친근한 대상들을 새롭게 이해하게 해주는 데에 있다. 먹이를 먹는 새에게서 반짝이는 햇살과 투명한 바람을 쪼아 먹는”(새의 식사) 식사법을 보거나, 달팽이에게서 부드러운 강철 혓바닥”(부드러운 강철 혓바닥)을 보거나, 실직한 아버지에게서 가족의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한 몸을 보는(소파 속으로 들어간 아버지) 시선은 사물을 통해 다른 시공간을 체험하게 한다. 이 시집의 시적 대상들은 대개 제 안에 고통과 슬픔과 상실감을 견디는 평범한 것들인데, 거기에 시적 상상력이 닿으면 그 상처는 본래의 생명력을 회복하면서 활기를 되찾는다. 예컨대 방적 공장에서 손가락이 잘린 후 붉은 꽃을 싫어하게 된 화자는 바닷가의 꽃밭에서 귓속에 파도 소리를 가득 채우던 꽃들을 보고 화상 흉터 같은 붉은 꽃 한 송이/ 잘린 손가락에 붙여”(환지통)본다. 이처럼 그의 시가 주는 즐거움은 가벼운 재미를 넘어 이미지가 존재를 변화시키는 데까지 이른다.

김기택(시인)

 

 

■ 시집 속으로

 

소파 속으로 들어간 아버지

 

아버지는 어느 순간부터

없는 사람이 되었다

아버지의 몸은 점점 투명해진다

소파 위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식탁에 앉아서 밥을 찬물에 말아 먹는,

늦은 밤 라면을 끓여 소주를 마시는 아버지를

쳐다보지 않는다 식구들은

오랜만에 식탁에 둘러앉아도

아버지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도

김치를 씹고 콩나물국을 떠먹는다

식탁 가운데 앉은 아버지는

나 여기 살아 있노라고 헛기침을 하다가

젓가락을 세게 놓거나 물을 엎질러보았으나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다 대신

식구들은 벽을 쳐다보거나 가스레인지를 돌아본다

오래전 실직한 아버지는 밥도 되지 못하고

식구들의 옷 한 벌도 되어주지 못했다

자기가 벽돌을 하나하나 올린 집에서

이제는 없는 사람이 된 아버지

길가에 버려진 소파에 눈길이 머문다

누군가의 눈물 자국과 한숨과 땀 냄새를

뙤약볕 아래 말리고 있는 낡은 소파 속으로

아버지 들어가 눕는다

뙤약볕 아래서 몸을 말리는 소파

따뜻하게 부풀어 오른다

부드럽고 따뜻한 소파의 몸속에서

투명한 아버지 몸을 뒤척인다

 

 

뿌리는 벼랑 끝에서도 멈추지 않는다

 

깨진 옥상 난간 틈새로

금 간 바위 틈새로

벽과 벽의 틈 사이로

시간이 쌓이고 슬픔이 쌓이면

희망과 절망이 켜켜이 쌓이면

풀씨 하나 날아와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린다

 

꿈의 뿌리를

불안한 희망의 틈새로 들이밀며

피를 흘리는 저 무모한 사랑

언젠가 뽑힐 것을 알면서도

허공의 생에

백척간두 같은 사랑에 목숨을 건다

 

너와 나 사이에 천길 벼랑이 있고

그 틈새로 흘러내리는

맑은 물 한 모금 빨아들이며

뿌리를 내리는 환한 목숨

 

뿌리는 벼랑 끝에서도 멈추지 않는다

 

 

새의 식사

 

식구들의 일용할 양식을

장바구니에 가득 채워 끌고 오다

길바닥에서 식사를 하는 그를 만났다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맨발을 딛고

모이를 찾고 있는 그를 보았다

중력을 뿌리치고 높이높이 솟구쳐 오르던 그가

날개를 양팔처럼 몸에 붙이고

공손하게 절을 하듯 모이를 찾고 있었다

자랑하던 긴 꽁지도 뒤로 감추고

머리를 조아리고 식사를 하는 그가

내 눈길을 오래 붙잡았다

햇살 한 줌과 풀 향기 한 줌을 부리로 쪼으며

기도하듯 절을 하듯 머리를 깊이 조아렸다

반짝이는 햇살과 투명한 바람을 쪼아 먹는

조금만 먹는 그의 식사법 앞에서

불룩한 장바구니 속이 들여다보였다

배 속에 가득 찬 일용할 양식들

살찐 희망과 살찐 행복과 살찐 욕망들이

입을 벌리고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나는 물 한 모금 밥알 한 톨 김치 한 조각에도

머리를 조아리며 밥을 먹었던 적이 있었던가

낮게 낮게 머리를 숙이며

하루치의 생을 기도하며 먹었던 적이 있었던가

아무런 흔적도 없는 투명한 식사

가볍게 날아오르는 투명한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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