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공유·네트워크로 문화 허브 돼야”
‘지역문화재단, 문화민주주의가 답이다’ 펴낸 문화기획자 이동형씨
신문사 문화사업 통해 지역재단 접해
정책과 운영 방향에 대해 3년간 연구
박사학위 받고 논문 토대로 책 펴내
“예산·운영, 지역 편차 꼭 해소해야”
동네의 문화예술·생활체육 시설은 주민 삶의 질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하나의 바로미터다. 이런 시설들의 운영을 전담하는 곳이 지역문화재단이다. 지역문화재단은 지방정부가 출연한 독립법인체다. 2014년 ‘지역문화진흥법’이 만들어지면서 전국에서 빠르게 늘고 있다. 서울 자치구는 2010년 이전만 해도 마포·중구·구로·강남 등 4곳에만 재단이 있었는데 이후 17곳에서 추가로 세워졌다. 조만간 서울의 모든 자치구에 지역문화재단이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
이런 변화는 자치구의 담당 부서나 시설관리공단이 위탁해 운영할 때보다 주민들이 좀더 나은 문화복지를 누릴 기회가 늘어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한편으로는 재단이 설립 취지에 맞게 제대로 운영하는지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들도 있다. 문화기획자인 이동형(59)씨도 그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지역문화재단 운영에 대한 제언을 담아 지난달 <지역문화재단, 문화민주주의가 답이다>(도서출판 푸른사상)을 펴냈다.
이씨는 경향신문사에서 2000년대 중반 문화사업국장을 맡으면서 문화사업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10여 년 동안 공연과 전시를 기획, 제작하고 실용음악 콩쿠르 등 경연대회 등을 여는 일을 했다. 크고 작은 공연과 전시를 위해 서울 시내 공연장과 전시장을 이용하면서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2009년 어린이 그림동화전을 기획할 때였다. 당시 그림동화전은 외국 유명 작가 작품전이 주류를 이뤘다. 그는 우리나라 작가들 작품도 세계 수준급이 많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단순히 그림동화만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동화의 한 장면을 설치미술로 보여주고 싶었는데 대형 미술관 몇 군데 빼고는 넉넉한 공간을 구할 수 없었다. 결국 충무아트홀에서 개최했는데 갤러리가 좁아 1층 로비를 임시 전시장으로 사용했다.
자치구마다 지역문화재단의 예산 규모, 운영 방식 편차가 매우 크다는 것도 눈에 들어왔다. “전체 예산 규모가 비슷한 자치구들의 문화재단 예산을 살펴봤더니 10배 넘게 차이 나는 곳들이 있었어요.” 공연장과 전시장 운영에 자체 기획 프로그램보다 외부 대관이 더 많은 것도 문제로 보였다. “민간 문화예술시설과 거의 다를 바가 없었어요. 공공기관으로서 어떻게 차별화할 것인가가 과제로 보였어요.”
그는 주민들이 생활공간에서 문화예술 활동을 할 수 있게 하는 문화예술 허브로서 지역문화재단은 소중한 공공의 자산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애정과 관심으로 지역문화재단이 어떻게 운영돼야 하는지 3년간 연구했다. 2018년 ‘지역문화재단의 문화민주주의 정책과 특성화 전략 연구’ 논문으로 고려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논문을 토대로 최근 자료로 업데이트하고 문화재단 관계자들과 지방자치단체의 문화정책 담당자, 단체장이 편하게 읽을 수 있게 단행본으로 펴냈다.
연구의 시작점은 문화예술 공적 지원의 근거인 정책 들여다보기였다. 이씨는 문화민주주의 정책이 나오게 된 과정을 살펴봤다. 문화예술에 대한 공적 지원은 제2차 세계대전 뒤 여러 나라에서 재건 프로젝트로 추진됐다. 모든 국민에게 문화예술 향유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공동으로 이용할 문화예술시설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공연장과 같은 시설을 찾는 관객만 혜택을 누렸다. 그 대안으로 1970~80년대 ‘문화민주주의’ 정책이 등장했다. 시설을 늘리고 전문단체를 지원하는 정책에서 벗어나 일반인들의 아마추어 문화예술 활동을 권장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에서 강조하는 일상생활 속의 문화예술 활동 확대가 바로 문화민주주의 정책에 기반을 둔 것이다,
이씨는 “문화민주주의 정책은 ‘참여, 공유, 네트워크’란 세 가지 열쇳말을 가진다”고 한다. 그가 전국 지역문화재단 20곳의 주민 참여 프로그램을 분석했더니, 세 요소를 담은 프로그램이 많은 지역문화재단의 운영이 활발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씨는 “주민들이 참여하고 공유하고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으면 지역문화재단의 활성화는 자연스레 이뤄질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문화민주주의가 시스템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뉴거버넌스 체제가 중요하다고 본다. 뉴거버넌스는 지역문화재단을 중심으로 지역의 대학, 기업, 문화예술단체, 문화예술 활동 동호회 등이 수평적인 의사결정 구조로 참여하는 것이다. 경기도 성남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사랑방문화클럽’을 사례로 꼽았다. 지역 아마추어 동호회 활동인 사랑방문화클럽은 재단 활성화에 크게 도움을 주고 있다. 서울의 성북문화재단도 바람직한 사례로 든다. 성북문화재단은 지역의 대학과 기업, 마을단체, 문화예술 동아리 등이 참여한 축제와 포럼을 운영한다.
이씨는 역대 정부가 꾸준히 국민의 문화예술 향유권 증진을 지향해왔지만, 문제는 지역마다 편차가 크다는 점을 책에서 여러 차례 지적했다. 그는 지역 편차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아야 한다고 힘줘 말한다. “지역문화재단의 예산 규모와 운영 방식은 자치단체장의 철학과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가늠자 구실을 하기에 편차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겨레, “참여·공유·네트워크로 문화 허브 돼야”, 이현숙 선임기자, 2020.03.26
링크 : http://www.seouland.com/arti/society/society_general/645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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