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오늘의 좋은 시
지난해 발표된 다양한 주제의 시들에 곁들인 깊은 해석들
이혜원, 맹문재, 임동확 편 | 푸른사상 | 2020년 03월
'스밀 몸 없이/지상의 모든 노을처럼 붉은 편재입니다/산산이 부서지는 몸으로도 놀라지 않는 경의를 목격합니다/..../하여 눈꽃이 난분분 흩날리고/보는 듯 안 보는 듯 바람은 무심히 다녀가는 발자국입니다/느닷없이 새가 날아와 머리 위에서 노래한다면/보고싶다는 전언입니다/어쩌면 한 줌의 형식도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공간이 나를 버릴 차례입니다.' 지난해 '시산맥' 여름호에 실린 성향숙 시인의 이 시 '나의 죽음을 알립니다'에 대해 임동확 교수(한신대 문예창작과)는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태어나자마자 늙어 있다"는 하이데거의 말대로 유한한 존재로서 우리는 모두 예외 없이 '죽음을 산다'. 만약 바로 그런 죽음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감이 없다면, 우린 비록 제 몸이 산산이 부서져가는 고통 속에서도 생의 '경의'를 느낄 수 잇다. 우리가 죽음을 자연스런 생의 과정으로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억누를 수 없는 슬픔조차 불가피한 생의 진행과정의 하나로 여길 수 있다. 특히 느닷없이 새가 머리 위로 날아와 노래한다면 누군가 저를 그리워한다는 전언이라는 것은, 삶과 죽음이 하나인 '영원한 지금'에는 어떤 경계나 내일도 없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어쩌면 "한줌의 형식도 허락하지 않"는, 서로 분리할 수 없는 통일성을 이루고 있다고 느낄 때 우리는 비로소 삶과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 자신의 죽음을 세상을 향해 당당히 알릴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다.
'우주는 검은 잇몸이고 어금니 모양의 별들이 박혀 있다/거기 어느 하나에 나는 치실로 연결되어 있어 움직일 때면 무른 잇몸의/상처로 노을이 번졌다/.../그러나/당신의 마음은 맨 아래 칸이 비어 있는 서랍장 같아서/왈칵 무너지는 순간이 있다고 했다/.../고인 물에 지문을 주고 우리는 아무런 소용돌이도 갖지 않은 채 길을 나선다. 지난해 '포지션' 봄호에 실린 최세라 시인의 '전염병'에 대해 이혜원 교수(고려대 미디어문예창작학과)는 이렇게 적는다.
어금니 모양의 별들이 박혀 있는 우주의 검은 잇몸에 치실로 연결되어 잇어, 움직이면 상처로 노을이 번진다는 상상이 독특하다. "무른 잇몸의/상처로 노을이 번졌다"고 할 때 도드라지는 것은 '상처'이다. 노을을 보며 상처를 더올리는 사람의 마음은 아픈 상태일 것이다. 이 시에서는 사랑이 끝나가는 두 사람의 어색한 상태를 감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상태가 끝날까 봐 두려운 순간이 온다면 이미 "전염병 같은 관계"에 불과하리라. 다 지나고 돌이겨보는 사랑은 전염병 같기도 하다. 한껏 앓고 난 후에는 비릿한 기억만이 남을 뿐이니.
매년 한국 시단의 지형도를 보여주고 있는 시선집 『오늘의 좋은 시』가 출간됐다. 지난해 문학잡지에 발표된 시작품 중에서 작품의 완성도와 독자와의 소통을 고려해 101편을 선정해 엮은이들의 해설을 더해 엮은 책이다.
책에 실린 시들은 읽어보면 다양한 제재와 주제의식, 미학을 통해 한국의 시단은 몇 가지 양상으로 분류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느덧 우리 시단의 흐름은 몇 가지의 양상으로 분류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 복잡해졌다는 사실을 간파할 수 있다. 때문에 많은 시인들의 작품을 수록하지 못한 한계가 노정된다.
엮은이들은 "예년과 마찬가지로 이 선집의 선정 기준은 작품의 완성도를 우선적으로 내세웠지만 독자와의 소통적인 면도 중시했다. 시인의 주관성이 지나쳐 소통되지 않는 작품들은 함께하지 않은 것이다. 난해한 작품들이 워낙 많아 어느 정도를 난해한 수준으로 볼 것인가는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 이 선집은 그 작품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고 밝혔다.
엮은이들은 "시인들의 시작품을 우열로 가릴 수는 없다. 따라서 이 선집은 우열의 차원보다는 우리 시단의 흐름을 파악해보려는 의도로 작업했다"고 말했다.
교수신문, "오늘의 좋은 시", 장성환 기자, 2020.03.25
링크 :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49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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