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담한 읊조림'노동시'우리네 가슴 속 절규로 증폭
<부평 4공단 여공>-정세훈
글을 쓰고 있는데 눈발이 날리고 있다. 내 혈거의 정원을 덮고 있는 눈 위로 신년의 눈이 쌓이고 있다.
메마른 가지에 빨갛게 달려 있는 고추와 겅중하게 솟아있는 토마토 줄기가 눈밭에서 겨울 풍경을 더한다.
나는 지금 노동에 대해 생각한다. 임금 노동자의 삶에 대해 내 삶을 억지로 끼워 생각한다.
노동자의 삶에서 노동은 천형이다. 노동을 하지 않고서는 삶을 존속시킬 수 없으며, 노동을 하되 그 노동에 억눌리고 속박받으면 살아있지만 무가치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성년이 되어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면서 지금껏 나 혼자만의 노동으로 가족을 먹여 살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늘 빚에 쪼들리고 몸은 망가져갔다. 몸이 아파도 제대로 치료를 못 받았으며 유행이 지난, 남루한 옷을 입고 살아왔다.
휴가를 마치고 직장에 돌아와 보니 내 책상 위에는 징계결과 통보서가 생뚱맞게 던져져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시인 정세훈 형이 보내온 시집 〈부평 4공단 여공〉(푸른사상)이 놓여 있었다.
정세훈 시인은 노동자 출신 시인이다. 중학교를 마치자마자 공장에 들어가 노동이라는 형벌을 받았다.
그 형벌은 기약이 없는 무기징역 같은 것이라는 걸 시인은 잘 알고 있었다. <부평 4공단 여공>의 첫 장에는 노동이라는 천형을 짊어진 자신의 삶을, 노동자의 삶을 그린 시가 수록돼 있다.
'1972년 중졸 소년이 노동자가 되었다/아버지는 탄광에서 탄을 캐내는 광부였다/…/아버지는 늘 자기처럼 되지 마라 했다/아버지 같은 노동자가 되기 싫었다/그러나 소년 노동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공장은 석면 가루를 날렸다/화공약품 악취를 풍겨댔다/…/함께 일하던 소년 노동자들/가슴이 답답하다며 고향으로 갔다/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오곤 했다/그 누구도 왜 죽었는지 몰랐다/가슴이 서서히 답답해 왔다/…/쇠약해진 몸은 노동을 감당하지 못했다/공장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노동법은 언제나 존재했지만/노동판과는 언제나 멀리 떨어져 있었다/최저임금제가 생겨났지만/노동판을 죽이고 자본만을 살찌우고 있었다/비정규직을 만들어/노동판을 더욱 가난하게 만들었다/노동의 피와 땀을 착취하여 부를 누린 자본/정리해고라는 칼을 들이대었다/일방적으로 공장 문을 닫아버렸다/'('2012년 노동판')
나는 십 수 년 전 정세훈 형을 만났다. 나는 그와 친분이 두텁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가 야근을 끝내고 아침에 공장 문을 나서면서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느꼈던 비애를 그린 '맑은 하늘을 보면'이란 시를 읽고는 그의 삶에 대해 눈물을 흘렸었다.
수천만, 수억 명의 노동자가 흘렸을 피땀과 눈물의 넓은 바다에 속절없이 한 방울의 눈물을 보탰던 것이다.
십 수 년이 흘렀지만 시인이 대면하고 있는 노동자가 대면하고 있는 세상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시집 〈부평 4공단 여공〉은 변하지 않은 세상을, 노동자에 대한 무한 착취가 정의가 되어버린 세상에 대한 절망을 담고 있다.
시인은 '외상 노동'이란 시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노동은 오늘 당장 팔지만/품삯은/언제 받아낼 수 있을지 모르는/새벽길을 나선다'라며 우리의 노동현실이 야만의 시대에 머무르고 있음을 토로한다.
그는 나약한 목소리로 야만의 시대를 시로 읊조리지만 그것은 내 가슴 속에선 고함이나 절규로 증폭된다.
시인의 말처럼 나는 '언제 받아낼 수 있을지 모르는' 품삯을 받기 위해 지금 글을 쓴다.
개인의 사욕을 채우기 위해 노동자를 억누르는 자들이 벼룩처럼 들끓고 있는 이 시대에 나는 글을 쓴다.
가난하고 억울한 사람들을 위해 글을 쓴다. 그러다가 때로는 핍박을 받는다.
그것은 '글을 쓰는 자'의 운명이니 두렵지 않다. 그러나 사리사욕을 채우는 자들의 술수와 농간에 속아 자신을 위해 싸우고 있는 동료들을 조롱하고 증오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걸 보면 억장이 무너진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의 얼굴에 침을 뱉는 일이다. 시집 <부평 4공단 여공>에 등장하는 노동자의 삶은 타인의 삶이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의 삶이란 것을 곱씹어 본다.
<인천일보> 2013년 1월 17일/조혁신기자 mrpen68@i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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