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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간행도서

황주경 시집, <장생포에서>

by 푸른사상 2020. 1. 3.



분류--문학(시)

장생포에서

황주경 지음푸른사상 시선 118128×205×9 mm1449,000

ISBN 979-11-308-1516-9 03810 | 2019.12.30



■ 도서 소개

 

사회학적 상상력으로 인간 가치를 노래하다

 

황주경 시인의 시집 장생포에서<푸른사상 시선 118>로 출간되었다. 이 시집에 나타난 가족과 이웃 사랑, 노동 인식, 역사의식, 정치 참여는 사회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개인의 상황과 전체의 상황 관계를 인식할 뿐만 아니라 현재 상황으로 미래의 상황을 전망하고 있다. 시인은 전태일 열사의 분신을 비롯해 제주 4·3항쟁, 세월호 참사, 5·18광주민주화운동, 촛불혁명 등의 역사를 재인식하며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를 제시해주고 있다.



■ 시인 소개

 

황주경(黃柱慶)

경북 영천 산골에서 태어나 청년기까지 방목되었다. 울산대학교 대학원에서 환경공학을 전공했다. 2005문학21문학상, 2012문학과 창작신인상을 받아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사는 동안 늘 노동·시민·문화패 언저리를 기웃거렸으며 현재 울산광역시 연설 보도기획 비서관으로 일하고 있다(E-mail : tm00191@korea.kr)


 

■ 목차

 

시인의 말

 

1

은행나무 / 김해뒷고기집 개업식 / 말벌 / 정의의 칼 / 갈음옷 / 심검당(尋劍堂) / 마중물 / 화두삼매 / 퀵서비스 / 보행자 조작 신호 / 학성공원에서 / 오른손잡이의 변명 / 용의 발톱 / 추락 / 신불산 칼바위 / SOS / 거울 / 폭염

 

2

장생포에서 / 소라게 1 / 소라게 2 / 반구대 암각화 / 나목(裸木) / 젊음의 거리 / 아지트 / 바통터치 / 늦봄 / 보수동 헌책방 골목 / 역전다방 미스 김 / 달맞이꽃 / 추억을 폭격하다 / 매미 / 오래된 엘피판 / 별을 먹다 / 통리역 / 드라이플라워 / 심해어처럼

 

3

유채꽃 멀미 / 딱성냥 / 화려한 휴가 / 꽃편지 1 / 꽃편지 2 / 그대 나를 용서 마라 / 아침밥상 / 압록강 / 숙제, 살아서 돌아오기 / 촛불 연가 /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 쇠뿔산 / 철탑 1 / 바보 주막 / 노무현 / 처용암 / 체 게바라와 점심 먹기 / 은행나무 암수 교체 사업 / 거미

 

4

고수레 / / 동백꽃 / 천수보살 / 처서 / 얼음물 보시 / 썩은 사과를 들어내며 / 어머니의 콩밭 / 탈피 / 단풍들다 / 그녀의 길 / 당신처럼 / 수렵의 본능 / 어머니의 강 / 비발디의 <> / 호우지시절 / 석양이 내리는 골목 / 어머니의 눈 /

 

작품 해설사회학적 상상력의 시 - 맹문재



■ 시인의 말

 

무릇 꽃이란 식물의 생식기.

종족 보존이라는

세상 만물의 지상과제를 위한 마지막 선물, .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것은

피지 못한 꽃들이 무참하게 꺾이는 일.

 

반역과 광기의 시간……

바람이 연주하는 마두금에 맞춰 슬픈 조가를 부르며

가엾은 영혼을 위로하는 시인이란 이름의 사람들.

 

가장 먼저 울기 시작해서

가장 늦게까지 우는 시인이 되고 싶었던 나는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아직 다 울지 못했다.

 

 

■ 추천의 글

 

황주경 시인의 시에는 언제나 자연 상태에서 방목되었던 성장기에 형성된 자연서정이 짙게 깔려 있다. 놀라운 것은, 그 시기에 형성된 무구한 세계의 원형이 긴 세월의 간극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훼손 없이 그대로 간직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화하거나 절대화하여 신화를 만들지도 않고, 상실과 회한의 회고적 비애로 엄살을 떨지도 않는다. 그러면서 현재적 삶에 주눅들지 않고 날것으로 병존시키고 있다. 현실의 부조리에 맞서 싸우고 도시적 삶의 곤고함과 고통을 마주하는 일이 일상인 시인의 내면에서 이처럼 투명한 세계가 간직되어 있다는 것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로 인해 시인에게 있어서 현실은 영원히 타협 불가능한 파멸적 상황이다. 장 자크 루소가 인간은 자연 상태에서 자유로웠으나 인간 사회의 도처에서 억압의 사슬에 얽매여 있다고 했던 것과 같이 시인의 길은 루소의 길과 닮아 있다. 이것은 변화의 힘들이 무엇을 구축하는 일보다 먼저 회복해야 하는 일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이상이 종종 또 다른 야만을 만들어내는 것에 대한 경계다. 자칫 시인의 시들이 소시민적 삶의 정서에 기대어 있다고들 할 것이나, 그것은 본질이 아니다. 쇠를 이길 수 있는 풀의 부드러운 강인함이 황주경 시인의 시 정신이다

백무산(시인)



■ 작품 세계

  

사회학적 상상력은 개인의 상황을 하나의 관점으로 국한시키지 않고 다른 관점으로까지 살펴본다. 따라서 사회학적 상상력은 가장 개인과 관계가 없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발생된 변화로부터 인간 자신의 가장 개인적인 특징까지의 범위 및 서로간의 관계들을 살펴볼 수 있는 능력이라고 볼 수 있다. 자신의 존재가 사회적인 상황 속에서 어떤 관계가 있는지, 역사적인 상황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리고 이 세계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등을 탐색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현재 상황이 사회 구조 및 환경과 상관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식이나 정보 차원으로는 인지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삶의 실제에서는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매우 복잡하고 전문화되어 있고 급변하기 때문에 한 개인이 이해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사회를 간파할 만큼 지식을 갖추고 정보를 획득하고 시간적인 여유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을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사회학적 상상력은 이와 같은 상황을 극복하고자 개인과 사회 및 역사의 관계를 인식하는 것이다.

밀즈(Charles Wright Mills)사회학적 상상력에서 사회학자들이 거대담론에 매달려 사회 현실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따라서 담론에 집중하기보다는 경험의 현실을 중시해야 한다고 보았다.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체를 살펴봐야 하듯이 전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부분을 살펴봐야 한다고 제시한 것이다. 결국 개인의 문제를 사회 전체의 문제와 연관해서 적극적으로 인식한 것이다. 황주경 시인의 작품들에 나타난 가족과 이웃 사랑, 노동 인식, 역사의식, 정치 참여는 이와 같은 사회학적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중략)

우리 사회에는,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우리 시단에는 시가 사회학적 상상력을 추구하는 것을 동의하지 않는 분위기가 만연하다. 시는 사회학적 상상력과 상관없는 것이라거나, 시가 사회학적 상상력을 추구하면 예술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는 편견이 상당한 것이다. 그렇지만 시인의 작품이 실존 상황이나 역사 상황을 담아내지 못했을 때 그 한계가 더욱 크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필요가 있다. 생명력이 강한 작품일수록 사회학적 상상력이 크다는 것은 진리에 가깝다. 사회학적 상상력을 추구하는 시인은 자아와 세계 사이의 관계를 깊게 인식함으로써 보다 주체적이고 역사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다.

맹문재(문학평론가·안양대 교수) 작품 해설 중에서



■ 시집 속으로

  

장생포에서

 

파도처럼 출렁이던 청춘

울산 막노동판에 스며들어

돈 좀 더 벌어보겠다고

휴일, 긴급 정비 중인 유조선에 올라 철야 작업으로 기름

범벅이 되던 날

나의 큰 꿈 품은 고래 한 마리 어디론가 사라지고

검은 파도에 일렁이는 내 얼굴

기름인지

눈물인지

닦아내던 밤바다

 

다시 그 바다에 서보니

어쩌면 그 고래, 사라진 것이 아니라

저리도 푸른 포물선을 그리며

더 넓은 바다를 원고지로 시를 썼을 수도 있었겠다

 

 

촛불 연가

 

어둠 앞 촛불을 들고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박근혜 탄핵이라 외쳤네요

쓸개 빠진 사람처럼 울산에서 서울까지

을에서 갑이 된 듯

가장자리에서 중심이 된 듯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네요

장군은 동상이 되어서도

두 눈 부릅뜨고

빌딩 저 너머 적들을 지키시고

우리의 적은 항상

차벽 너머 저 안에 있었다며

장군께 억울하지도 않느냐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네요

그해 봄을 몽땅 안고

아이들이 바다로 질 때도

물대포에 사람이

죽어 나가떨어질 때도

저 안은 꽃단장 잔치판을 벌였다고

반주에 취해 횡설수설,

자정 넘어 새벽이 되어서도 장군은 눈 하나 깜짝 않으시

는데

졸음에 전의를 상실한 채 나는 그만

장군의 갑옷 자락에서

꿀잠에 들고 말았네요

 

 

 

한평생 욕심 없이 산 우리 어머니

뼈 사진을 볼 때

새가 되기로 한 것이 틀림없다

 

새처럼 하늘을 나는 원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뼛속까지 비우고

몸을 가볍게 한 다음

알맞게 불어오는 바람 앞에 두 팔을 활짝 벌리고

깃털 같은 기분으로

사뿐히 몸을 맡기면 그만이다

 

어느 날부터 어머니는

생의 날갯죽지를 짓누르던 기억들조차

하나씩 하나씩 지우고 있었는데

이마저도 새가 되려는 방편이었으리라

 

나도 새처럼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상상을 자주 하곤 했었는데

아직은 한참 멀었다

내 안에 탐심을 버리려면

한 오십 년은 더 걸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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