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문학(시)
가로수의 수학 시간
오새미 지음|푸른사상 시선 115|128×205×9 mm|138쪽|9,000원
ISBN 979-11-308-1484-1 03810 | 2019.12.5
■ 도서 소개
시인이 상상하는 다채로운 자연의 세계
오새미 시인의 첫 시집 『가로수의 수학 시간』이 <푸른사상 시선 115>로 출간되었다. 구름이 떠다니는 듯한 평화로운 자연 속에서 충만한 사랑과 다채로운 상상력을 노래한 시집이다. 가로수를 막대그래프나 저울 등 수학적인 대상에 빗댄 표제작을 비롯해 독특하고도 참신한 시 세계가 돋보이는 것은 물론 가족 사랑을 노래한 다정한 시편들이 독자를 즐겁게 한다.
■ 시인 소개
오새미
전북 전주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오정숙(吳貞淑). 2018년 『시와 문화』 신인상에 「밤의 온도는 측정 불가」 외 4편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교단에서 음악교사 시절을 보내는 동안에도 가슴에 시를 품고 살았으며, 시를 음미하며 노래를 부르도록 가르치는 일을 즐거워했다.
(E-mail : oh9647@hanmail.net)
■ 목차
■ 시인의 말
제1부
명함 / 비의 서체 / 가로수의 수학 시간 / 가슴엔 징검다리 / 검은머리방울새 가족 / 구름성형외과 / 낡은 책을 펼쳐보는 고양이 수염 / 검은 피를 수혈하다 / 울음은 날개가 된다 / 구름의 핑크 택스 / 밤의 온도는 측정 불가 / 어깨의 기울기에 관한 문제풀이 / 새끼손가락에 관한 학설
제2부
따뜻한 가시 / 튤립중학교 / 안테나의 온도 / 데칼코마니 / 구름 리조트 / 태양초 화장품 / 물로 한지 베기 / 바탐섬을 읽다 / 와이? 와이셔츠 / 잎사귀와 잎사귀가 사귀는 시간 / 작은멋쟁이나비 / 진통제 한 알 / 캐스팅 보터 / 타지마할 가는 길 / 추녀 끝에서 헤엄치다
제3부
꽃양배추 / 엄니의 걱정 / 감빛 립스틱 / 그 여자의 마티에르 / 도하마을 / 마당이 자라는 집 / 성묘길 소묘 / 큰오라버니 / 길몽으로 다녀가다 / 친정 / 그네 / 노란 프리마돈나 / 마법에서 풀리다 / 셔틀콕 신화 / 민지에게 / 어금니 / 어깨
제4부
물고기는 지도가 없다 / 느티나무 학교 / 근처라는 말 / 물은 거꾸로 흐른다 / 바람의 염색 / 메아리 / 성대가 붓는 계절 / 외발 의자 / 소파는 엉덩이를 먹지 / 쥐라기 호수 / 지렁이 / 바람개비별 / 매직 타임 / 테이크 아웃 / 바람의 손끝
■ 작품 해설:아날로지의 세계와 바람의 힘 - 이성혁
■ 시인의 말
연두색 크레파스를 꼭 쥔 아이가
숲과 하늘과 바다를 그리고
도시와 사람과 세상을 그렸다
좀 더 진하게 꼭꼭 눌러가며
가족의 얼굴과 마음도 그렸다
교감, 교장 선생님보다
시인으로 불리고 싶었던 아이
그 손에 이제는
초록색 크레파스를 쥐여준다
■ 추천의 글
연두색 크레파스를 손에 꼭 쥐고 그린 오새미 시인의 시 세계는 그지없이 다채롭고 섬세하고 참신하고 그리고 다정하다. 푸르게 쏟아지는 달빛, 그치지 않는 새들의 노래, 지상에 떨어진 별들, 솔가지에 걸린 햇살, 꽃잎들의 함성, 파도가 꽃피는 밤바다, 길 위에 피어 있는 빨간 우산 노란 우산 등 얼마나 다채로운가. 비의 서체, 주홍색 엽서를 하늘 폭포 주위로 띄우는 물안개, 하늘을 나는 검은머리방울새, 낡은 책을 펼쳐보는 고양이, 지평선을 기어가는 노을, 산등성이를 기웃거리는 바위 등 얼마나 섬세한가. 가로수의 수학 시간, 어깨의 기울기에 관한 문제풀이, 새끼손가락에 관한 학설, 안테나의 온도, 느티나무 학교 등 얼마나 상상적인가. 손목을 잡고 깊은 물을 건네주던 아버지, 세 아이를 데리고 전쟁의 소용돌이를 헤쳐 나온 어머니, 난산한 며느리에게 고아줄 잉어를 잡으며 하늘로 보낸 아내를 떠올리는 낚시광 등 얼마나 다정한가. 그리하여 시인의 시간과 장소와 눈길과 체온은 느티나무 같은 향기를 내고 나뭇잎처럼 소곤거리며 어느새 우리의 가슴속에 들어찬다. 시인이 하늘과 바람과 대지를 우리와 함께 부르고 있기에 우리는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
― 맹문재(문학평론가․안양대 교수)
■ 작품 세계
시에서 기교를 잘 활용하면 긴장 속에서 세련된 맛과 멋을 살릴 수 있다. 하지만 권서각 시인은 효율적인 이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묵직하고 담담하오새미 시인에게 자연은 인간과 같은 존재다. 그의 시에서 자연의 행위는 인간의 행위에 유추된다. 특히 자연의 변화는 인간의 창조 행위와 같다. 시집 첫머리에 실린 「비의 서체」는 이를 잘 보여준다. 먹구름은 누군가 먹을 간 벼루요, 내리는 비는 먹물이다. “초록 새순들이” 그 “빗물을 찍어” “들판에 글씨를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소나기가 내릴 때엔 이렇듯 자연의 만물이 협동하여 한 편의 서예 작품을 이루어내는 것이다. 그러니 자연은 예술가이다. 자연이 한 사람의 몸이라면 구름은 심장의 역할을 담당한다. 이 창작 작업에서 “구름의 감정이 관건”이라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 구름의 감정에 작품의 “선과 모양과 짜임새”가 성공할 수 있을지 여부가 달려 있다. 이 빗줄기로 이루어지는 자연의 예술이 가지는 특징은 모든 곳이 화선지가 된다는 것이다. 자연은 “처마 안쪽에도”, “우산을 받고 가는 사람들의 옷자락에도” 수묵화를 그린다. 또한 예술품을 대하면서 우리 사람들이 기쁨을 느낄 때처럼, “소나기로 한바탕 흘려 쓴 초서체는/풀들을 춤추게” 한다.
이렇듯 오새미 시인의 상상 세계에서 자연은 “곱고 운치 있”는 서체로 예술작품을 창조하는 존재이자 그 자체가 또한 예술 작품이다. 그뿐인가? 자연은 허공에 구름의 집을 짓는 건축가이기도 하다. 이 자연이 만들어낸 건축 세계에 대해 시인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중략)
오새미 시인이 조명하는 사람들은 주로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가령 「외발 의자」에서는 “다리 하나로 살아가”면서 “낡은 카세트”로 찬송가를 틀어놓고 “시장 바닥을 기어다”니는 사내를 조명한다. 시인의 시선은 “눈시울이 붉어” 지고 있는 “노을”이 되어 그 사내의 “종아리를 어루만”진다. 「느티나무 학교」에서는 “병든 할머니를 모시고 살아가는/소녀가장 은희”에 포커스를 맞춘다. 그렇다고 시인이 이들로부터 고통과 슬픔만을 읽어내는 것은 아니다. 이 시에서 시인이 “소녀가장 은희”로부터 씩씩하고 밝은 모습을 포착하고 있듯이, 그는 아픈 이들로부터 어떤 희망의 힘이 형성되는 모습 역시 읽어내고자 한다. 아래의 시를 읽어보자.
―이성혁(문학평론가) 작품 해설 중에서
■ 시집 속으로
가로수의 수학 시간
잎새 사이 보이는 하늘이 풀리지 않는다
세로로 자라는 가로수에 맞게
그림자는 가로로 누워 눈금을 그린다
나무와 그림자는 어떤 관계일까
모든 것을 서서 보는 가로수
그림자를 통해 짚어가는 세상
왜소한 인간들의 막대그래프가
들쭉날쭉 부풀어 오른다
잎사귀가 품고 있는 허공
솟구치는 땅에서 받는 기운
바닥에 발을 딛고
머리를 하늘에 두면서 문제를 푼다
새를 품은 우듬지의 떨림은
끝이 어딘지 가늠할 수 없어
도시의 매연 속 은행나무
눈짓만으로 다닥다닥 함수를 풀어간다
햇빛에 투영된 이자는
언제나 곱하기 100이다
자동차 너울거리고 사람들 파도칠 때
가로 세상을 꿈꾸는 떼구름
아랑곳하지 않고
세로로 올라가는 건물들
가로수가 보여주는 저울의 좌표는
그림자를 늘렸다 거뒀다 반복하며
도시의 현재를 계산한다
바람의 손끝
머리채 흔들며 알 수 없는 글자를 쓰게 하고
빗물로 유리창 얼굴을 때리며 나무들을 숨죽이게 하였는데
오늘은 망사 치마 하늘거리며
꽃 이파리까지 하르르 흩날리게 한다
어울리지 못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가로등 불빛과도 손을 잡고
나무가 자라며 꽃을 피울 때도 손길을 준다
잔잔한 물결에 파문을 그려 산 그림자 떨게 하는 나무
구름도 여행하고 싶을 땐
부드러운 손짓을 기대하며 떠날 준비를 한다
그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새털구름처럼 흐르는 날
샐비어 끝에 앉아 조는 잠자리
산바람 강바람 한 줄기 맛을 본다
눈보라 속에 찍힌 발자국을 슬며시 쓸고 가는 소리도 들려주고
파도가 꽃피는 밤바다의 절정도 보여주는
바람의 손끝은 부드러우면서도 날카롭다
외발 의자
분리수거 포대자루 늘어선
아파트 한쪽
누군가 버리고 간 외발의자
기둥이 탄탄하고
등받이와 팔걸이도 멀쩡한데
가죽은 빛이 바래고 금속 몰딩도 해졌다
외발 의자는 다리가 하나뿐
발바닥을 나팔 모양으로 넓혀야
무게를 지탱할 수 있다
다리 하나로 살아가는 사내
커다란 튜브를 잘라 칭칭 감고
시장 바닥을 기어다닌다
낡은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는 찬송가를
애처롭게 흥얼거리며
껌을 파는 외발 인생
종아리를 어루만지는
노을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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