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문학(시)
공중에 갇히다
김덕근 지음|푸른사상 시선 112|128×205×6 mm|120쪽|9,000원
ISBN 979-11-308-1470-4 03810 | 2019.10.26.
■ 도서 소개
곤경과 통점으로 빚어낸 시편
연민과 헐렁한 마음과 발이 저리도록 온기를 쪼아 쓰디 쓴 기침을 태운 자화상들이 수록된 김덕근 시인의 시집 『공중에 갇히다』가 <푸른사상 시선 112>에서 출간되었다. 고통의 통점으로부터 빚어낸 시인의 시편들은 담담하고 섬세하면서도 서정적이다. 그리고 관통의 점을 얼마나 매달아야 하는지 사색하고 기억하는 지문은 진하다.
■ 시인 소개
김덕근 金德根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글쓰기와 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1995년 『청주문학』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역의 장소성과 구술 이야기에 빠져 사람들을 만나 글을 정리하면서 그동안 몇 권의 책을 펴냈고 현재 『충북작가』 편집장, 엽서시동인으로 있다.
(E-mail : bapmul@paran.com)
■ 목차
■ 시인의 말
제1부
자화상 / 바른손에게 / 호마이카 밥상 / 복용 / 귀로 / 별자리 교실 / 문의마을에 올라 / 오후의 몸 / 내 언젠가는 기약 / 천덕수(天德水) / 통점(痛點) / 불두꽃 / 뻘로 사라져도 / 진골목 / 목련 지는 날
제2부
알아서 봄 / 복면골목 / 천수천안 고양이 / 더딘 여름 / 버스론 / 골목에 묻는다 / 보푸라기는 주파수를 타고 / 골목경(經) / 어떤 골목 / 구제 옷집을 지나면서 / 서점 연가 / 귀래리, 천고(天鼓) / 귀가 이후 / 불길 / 돈
제3부
무심천 / 전작을 기다리며 / 겨울 문의(文義) / 한 장의 나무 / 화농에 묻혀 / 춘설 / 낙화유수 / 단풍처럼 / 입동 / 꼬리명주나비 / 순례 / 화엄사 홍매화 / 공중에 갇히다 / 안심사 괘불 / 벽산(碧山) 스님 / 속리행 / 지팡이
제4부
망월 / 태엽을 돌려줘 / 귀가 / 말이 떠나는 시간 / 나비와 소식 / 우암산에서 / 일주문 / 어떤 개화 / 이발사의 하루 / 어둠에 기대어 / 은하수공원 / 잠적의 습성 / 누구는 / 몸에 대하여 / 방생(放生)을 타다
■ 작품 해설:시인이여, 부디 곤경에 처하시기를 - 정재훈
■ 시인의 말
먼 길 돌아왔다.
바람에 물어도
다시 그 자리다.
낙엽보다도 빨리
등을 돌렸다
덕분에 손바닥만 한 흠
몇 점 묻었지만
나는
오직 두렵고
모를 일이다
■ 추천의 글
김덕근 시인의 시는 통점(痛點)이 낳는 기억의 지문들이다. 가을바람이 적막한 들길에 뿌려놓은 녹슨 몸의 잔해이고 마음의 아픈 비늘들이다. 그의 기억은 대부분 적막과 허기의 풍경들, 그리움을 낳는 일몰의 말들로 채워진다. 정처 없이 떠돌다 어느 산사에 앉아 황량한 저녁하늘을 바라볼 때 불현듯 귀를 깨무는 계곡물 소리, 내 몸이 본디 텅 빈 집이었음을 느낄 때 밀물처럼 밀려드는 적요의 풍경 소리 울린다. 풍경들의 고(苦)와 통(痛)을 통해 세계와 통(通)하니 시인에게 몸은 관(觀)의 암자고 만행(萬行)의 선방이다. 그렇게 그의 시는 연민과 회한을 살로 간직한 청주 전(傳)이고 외전(外傳)이다. 우암산은 자궁을 은폐한 시원적 공간이고 무심천은 꽃비 재우며 걷는 천근 미륵의 몸이니 바람, 달빛, 갈대, 철새 등 만물은 모두 시인과 가족관계고 천수천안 관음보살이다. 그렇게 그는 질긴 땅, 기침하는 세속의 골목을 돌고 돌며 몸살 앓는 꽃들을 만나고 가슴에 벼랑을 품고 사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을 통해 가면의 나를 반성하고 말라버린 인간의 눈물을 그리워한다. 산과 들을 홀로 떠돌며 시인은 오늘도 하늘이 땅을 깨우며 울릴 북소리, 광명진언(光明眞言)을 기다린다.
― 함기석(시인)
■ 작품 세계
“시를 쓴다는 것은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시인의 고유한 태도를 드러내는 것에 다름 아니다.”라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게다가 “그가 맞닥뜨린 곤경의 총체가 바로 시일 것이며, 시인의 태도”라는 것에 대해서도 저는 충분히 공감합니다. 왜냐하면 그 “고유한 태도”라고 하는 시인으로의 자세와, 그가 “맞닥뜨린 곤경”이라는 상황은 결국 ‘시를 쓰는 일’이 언제든 ‘실패’에 다다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김덕근 시인도 그러했을 겁니다. 시인의 입장에서 ‘시를 쓰는 일’이라는 게 어찌 보면 정해진 답이 없으며, 상정해둔 목표치라는 것도 없고, 따라서 이를 두고 ‘완성’이라고 감히 말할 수조차 없습니다(그렇다고 시인이 ‘패배’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래서 한 권 시집은 완성을 뜻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것은 시인 자신으로부터 나온 끊임없는 질문과 함께, 절망에 가까운 고민들의 연속적인 과정에 불과합니다. (중략)
키냐르의 말대로 정말 인간이 “두 세계, 즉 살아 있는 자들의 세계와 죽은 자들의 세계를 가진 동물”이라면, 시인이야말로 인간을 대표하는 자일 것입니다.
필멸의 운명에 복종한 채로 그렇게 은밀하게 ‘뭍’으로 올라왔지만, 결국에는 이기적이고 난폭한 일상의 질서에 증발되거나, 혹은 해석과 분석이라는 틀에 의해서 굳어버린 ‘시’의 역사는 끊임없이 ‘죽음’과‘ 생’을 오가면서 지금까지 쓰여왔습니다. ‘시’의 죽음이 정말 필연적인 거라면, 동시에 그 죽음에서부터 다시 시작하여 언젠가 또 다른 ‘시’가 뭍을 향해 고귀한 첫발을 내딛게 될 것입니다. 시의 역사 속으로 뛰어든 시인은 ‘두 세계’를 모두 아는 인간의 대표자로서 낯선 세계로부터 흘러나온 말을 지금도 기록하고 있으며, 또 ‘시’의 운명에 공명(共鳴)하려는 자로서 메마르고 황량한 뭍에서의 일상을 견디고 있는 중입니다. 시인의 곤경은 그를 더욱 시인답게 하고, 그 고통과 불면의 시간은 결국 그가 쓰고자 하는 ‘시’의 가장 건실한 ‘살(肉)’이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시인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곤경에 처하기를 원합니다.
―정재훈(문학평론가) 해설 중에서
■ 시집 속으로
공중에 갇히다
중고개 지나
신촌은 오지 않았다
젖은 소리를 내려놓으며
물렁한 나침반은 지척으로 기대앉아
삽시간에 밑창을 걷어내고 있었다
바람의 길을 끌어 올리는 내내
납작 엎드려 섬이 된 냉이꽃
미치도록 공기는 무거웠고
자본의 걸망은 눈부시게 펄럭였다
숨소리 거칠게 표류하는
나무와 구름에게도
운명의 길을 터
지그시 신발을 매어주고
어느새 철거반은 공중으로 피를 끼얹었다
기별 없이 봄나들이를 떠난 낙가산
아지랑이가 마르도록
길은 가만한 소리를 내며 다독이고 있고
바람의 둥지에 못질하는 소문은
다시 오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밀입국자가 되었고
무수한 일주문이 촘촘히 정박하는 사이
신촌 지나 중고개는
첩첩산중 나비보살을 품고 있었다
통점(通點)
지척 아니었던가
지척이었던 것 같은데
뭉친 혈관에서 온 흰 그늘은
지난 상처의 빗금을 담고
불면의 통점을 끌어올려야 할 너는
차단해서 젖은 발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통점을 경건하게 밀면 저 멀리 달아나
비만해지는 통점의 공터는 없고
보폭은 그대로다
통과 점의 숱한 너의 처소들은
탈 없이 통점을 부둥켜안고
절절하게 유배 가는
너를 모시고 관통의 점을
얼마나 매달아야 하는 것인가
육신의 시위가 볕드는
통(痛)을 만나야 통(通)이 되나니
통점은 허송으로 종일 무고하다
자화상
연민을 고르는 것이냐
아니면 으스름 달빛으로
헐렁하게 마음 하나 두는 것이냐
낯선 사내의 허리는 굽어 있고
계절은 배달되고 시간은 촘촘하다
성대한 활자의 탄력들
지평선의 변명이 곤궁하니
발이 저리도록 온기를 쪼아
쓰디쓴 기침을 태우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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