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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간행도서

도명학, <잔혹한 선물>

by 푸른사상 2018. 9. 6.



분류--문학(소설)

 

잔혹한 선물

 

도명학 지음푸른사상 소설선 19146×210×15 mm232

15,500ISBN 979-11-308-1363-9 03810 | 2018.9.5

  

■ 도서 소개

 

탈북작가가 그려낸

낯설면서도 익숙한 우리들의 또 다른 얼굴

 

탈북작가 도명학의 첫 소설집 잔혹한 선물<푸른사상 소설선 19>로 출간되었다. 북한 사회에서 형성된 삶의 방식과 생활 의식을 구체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이해의 계기를 마련한, 2의 분단문학의 위상을 정립하는 소설이다.

  

■ 목차

 

작가의 말

 

재수 없는 날

생일

잔혹한 선물

꼬리 없는 소

책 도둑

정 아바이네 집

시황제의 나라

 

작품 해설타자의 발견, 공감과 소통을 넘어 _ 한원균

  

■ 저자 소개

 

도명학

1965년 태어났다. 김일성종합대학 조선어문학부를 수료하고, 조선작가동맹 소속 시인으로 활동했다. 반체제 작품 혐의로 국가안전보위부에 투옥, 2006년 출옥 후 탈북하여 대한민국에 입국했다. 북한개혁방송 프로듀서, ()NK지식인연대 사무국장, 국제펜클럽 망명북한작가센터 사무국장, 부이사장을 역임했다. 월간 한국소설로 등단하였으며, 현재 자유통일문화연대 상임대표, 통일문학포럼 이사, 한국소설가협회 회원이다. 공동소설집 국경을 넘는 그림자』 『금덩이 이야기』 『꼬리 없는 소』 『한중대표소설집집필에 참여했다.

 

■ 출판사 리뷰

 

일상적 리얼리즘의 탈북문학

통계에 의하면, 남한에 살고 있는 북한이탈주민들의 수가 2017년 말 기준으로 총 31천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새터민 또는 탈북자라고도 불리는 그들은 이제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자연스럽게 자리하고 있다. 문단에서도 탈북문학이라고 불리는 작품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작품들의 대부분은 전문적인 작가가 아닌 저자들의 회고록이나, 한국 작가들의 취재에 의한 결과물이다. 북한에서는 조선작가연맹 소속 시인으로 활동하고, 탈북하여 남한에 정착해서는 소설가로 등단한 작가 도명학은 북한 사람들의 일상을 생생하게 담아낸 작품들로 주목을 받고 있다.

 

상호 이해를 통한 공감과 소통을 향해

최고 지도자의 선물이 현장의 노동자들을 더욱 극한적인 상황으로 몰고 가는 현실을 담은 표제작 잔혹한 선물,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려 비정해지는 사람들을 그려낸 정 아바이네 집, 말로만 듣던 정치범 수용소의 비인간적 실상을 드러낸 생일, 역설적 상황 전개를 통해 북한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보여주는 재수 없는 날, 북한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지식인들의 절망을 그린 책 도둑, 도명학의 작품에서 만날 수 있는 인물들은 낯선 타자이면서도 어쩐지 익숙하게 느껴진다. 정치나 이념의 문제를 떠나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실을 수용하고 그들을 이해하는 계기를 마련해준다는 것이 도명학 소설의 의미이기도 하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앞으로 가급적이면 리얼리즘 소설 위주로 가고자 합니다. 북한 현실에 생소한 독자에게는 리얼리즘 작품이 공감을 주는 데 가장 효과적인 수단일 수 있다는 판단에서입니다. 내용 면에 있어서는 증언과 고발에 머무는 한계를 극복하고 이념 강조, 정치적 목적, 지엽적인 소개 등에 편중되는 것을 피하며 개성이 독특하고 남과 북, 세계인이 함께 느낄 수 있는 보편적 인간상을 그리는 데 노력하겠습니다.

저는 북한 현실 작품을 쓸 때 화자를 탈북자가 아닌 북한 현지인의 위치에 세우는 것을 선호합니다. 예컨대 북한에 표현의 자유가 있고 체제 선전을 강요하는 문예 정책이 없었다면 내가 어떤 작품을 썼을까를 상상하며 펜을 쥡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는 북한 현실을 담은 작품에 대해 통상 일컫는 탈북문학과 좀 구별해 북한 현실문학이라는 표현을 쓰곤 합니다. 불가항력적인 여건으로 북한 현실문학이 남한에서 창작되지만 그것이 북한 독자들이 진짜로 읽고 싶은 작품이 되어 위로가 되고 깨우침이 되고 소망을 주기 바랍니다. 더불어 남한 독자, 외국 독자에게도 납득이 되고 공감되는 통일문학’, ‘뉴코리아문학을 지향합니다.


■ 해설 중에서

 

북한에서 이탈한 사람을 탈북자’, ‘탈북민’, ‘탈북난민’, ‘탈북주민’, ‘북한이탈주민등으로 부르고 있지만 탈북자(the defectorsfrom the North)’라고 명명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들 가운데에는 북한의 삶을 문학적 관점에서 재구성하려는 작가들도 포함된다. 도명학은 북한에서 작가연맹 소속으로 작품 활동을 해오다가 탈북하여 2006년 남한에 정착하게 되는데, 지금까지 탈북문학을 형성해온 패러다임은 그의 이 같은 경력과 경험에 비추어봤을 때 새롭게 정립될 필요가 있다. 남한에서 창작되고 형성된 탈북문학이라는 개념과 정의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북한 사회를 직접 경험한 작가들에 의해 재구성된 리얼리티와 현실성은 생활의 발견, 타자성의 발견으로 명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남한 작가들에 의한 채증과 증언의 문학이 그들의 삶에 대한 호기심과 분단 극복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다면 북한에서 살았던 작가에 의해 그려진 삶은 충격적인 모습으로 다가오지만, 궁극적으로는 상호 이해의 폭을 넓히고 심화하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타자는 고립무원의 저쪽에 홀로 던져진 타인이 아니라, ‘자신을 성찰하고 되돌아보게 하는 타자성으로의 를 가리킨다는 점에서 그들의 삶은 더 이상 와 무관한 대상이 아니라, ‘의 일부로 작용하는 타자성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분단의 극복은 생활 속에 존재하는 무수한 타자들의 이해를 통해 공감하고 소통의 기회를 늘려갈 때 가능할 것이다. 도명학의 소설을 통해 우리는 이제 조금씩 그 기회와 폭을 넓혀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한원균(문학평론가·한국교통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


■ 책 속으로 

 

금옥은 창수와 함께 구루마를 끌자 확실히 수익이 올라갔다. 자기는 주로 손님만 붙잡았다. 끄는 것은 창수 몫이었다. 금옥은 창수가 힘들든 말든 상관없이 무작정 많은 짐을 붙잡아 왔다. 그저 고삐만 당기면 되는 부림소로 여겼다. 둘이서 수익을 7 3으로 나눈다는 것을 알게 된 다른 구루마꾼들은 기가 막혀 금옥을 비난했다. 금옥이 구루마는 ‘7 3 구루마라고 별명이 붙었다. 그래도 구루마 덕분에 배라도 불리고 집에 강냉이국수 한두 사리라도 사들고 들어가게 돼 창수는 피착취 계급의 삶에 길들여지기 시작했다. 금옥이 역시 자기의 노동력 착취를 당연한 이치로 여기기 시작했다. 자기 덕에 창수가 먹고산다고 생각했다. 대학 시절 자본주의 정치경제학에서 이론으로만 배웠던 잉여가치법칙을 실험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래. 세상은 달라지고 있는 거야. 뭐 나더러 7 3 과부라고? 웃기지들 마라. 금옥은 사회주의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만큼 멀리 지나간 것만 같았다. (재수 없는 날, 19~20)

 

이렇게 국가적으로 중요한 공사는 말이야. 지원 물자가 자주 오기 마련이거든. 옛날부터 그래왔으니까. 그런데 내가 좀 겪어봐서 아는데 지원 물자도 지원 물자 나름이야. 말하자면 오늘 같은 경우엔 꾀병을 부리든 어쩌든 핑계를 대고 빠지는 게 낫단 말이야. 많든 적든 일단 사랑의 선물이라고 이름 붙은 걸 먹으면 그 값을 몇 갑절 해야 되거든. 글쎄 먹어 없어지지 않는 옷이나 물건 같은 거라면 받는 게 낫지. 나중에 장마당에 내다 팔아도 돈이 되니까. 근데 아까 화구 당번이 말하는 걸 들으니 오늘은 과일 먹었다면서? , 그랬군. 덜덜 떨며 한입씩 뜯어 먹는 걸 사진 찍어 간수했다 이담에 보면 참 재밌겠는데. 흐흐. 생각만 해도 웃긴다. 그래 그거 몇 입 뜯어 먹고 야간 작업 하니 기분이 어때?” (잔혹한 선물, 89)

 

하지만 언제까지고 그렇게 굴러갈 것 같던 세상이 어느 때부턴가 흔들흔들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식량 배급이 하루 이틀 밀리더니 몇 해 지나선 아예 뚝 끊겨버리고 말았다. 온 나라가 아우성으로 뒤덮였다. 사람들이 굶어 죽기 시작했다. 나라에선 일시적 위기라고 했지만 끝이 보이지 않았다. 나라에선 급기야 고난의 행군이라고 명명했다. 사람들은 장마당으로 나가고 산에 올라 뙈기밭을 만들었다. 그래도 작가는 속수무책이었다. 굶는 끼니가 먹는 끼니보다 더 많았고 아침을 굶고 나선 출근길에 다리가 후들거렸다. 부인은 참다못해 나라에서 선물받은 텔레비전이며 냉장고를 팔아서 장사 밑천을 마련했다. 하지만 장사란 잘하는 사람이 따로 있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어찌된 판인지 거꾸로 밑지는 장사만 해댔다. 거기다 남에게 잘도 속아 넘어갔다. 서로가 잡아먹는 사생결단의 백병전에서 사기도 여러 번 당했다. 그러다 보니 돈 될 만한 물건은 죄다 팔아먹어 집 안은 서발 막대기로 휘둘러도 거치는 데 없이 되어버렸다. 하루하루 살아 있는 게 기적이었다. 이 지경이 되면서 부인의 눈에서 콩깍지가 벗겨졌다. 작가? 그게 뭔데. 소설? 다 거짓말이잖아. 고픈 배가 데모를 해대는데 무슨 글을 쓰느라 주구장창 책상에서 저럴까. 차라리 막일하는 노동자가 훨씬 나았다. (책 도둑, 138~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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