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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간행도서

김명렬 외 숙맥 11집, <모과를 선물로 받는다면>

by 푸른사상 2018. 2. 14.



 

김명렬, 김학주, 김재은, 이상옥

정진홍, 이상일, 이익섭, 정재서

 

모과를 선물로 받는다면

153×224×12.5 mm|208쪽|18,000원|979-11-308-1261-8   03810 | 2018. 2. 20.


도서 소개


남풍회의 산문집 <숙맥> 11집이 모과를 선물로 받는다면이란 제목으로 푸른사상사에서 출간되었다. 서울대학교 출신 노교수들로 이루어진 이 모임에서는 해마다 심오한 사색과 연륜에서 우러나온 글들을 모아 수필집을 발간하고 있다.

제각각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저자들은 학문적 글쓰기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글쓰기를 즐기는 듯하다. 노년에 접어들어 낡은 사진을 들여다보며 그리운 이름을 되뇌듯, 80년이란 긴 세월 켜켜이 쌓인 퇴적물에서 아름답기도 하고 아프기도 한 귀한 추억들을 들춰내어 글을 쓴다고 한다. 저자들의 글 이글이글 작열하며 위세를 떨치는 한낮의 태양이 아니라 아름다운 낙조를 만들어내는 석양처럼 독자에게 스며든다.

아직도 할 얘기가 많다고 한다. 날카로운 지성과 여유로운 정서, 풍성한 인문 정신을 바탕으로 한 그들의 글쓰기는 여전히 계속될 것 같다.

 

 

도서 목차


책머리에

 

김명렬 

깽깽이풀꽃 단상

도심 속의 야생화

설악

불멸의 함성을 정리하면서

 

김학주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은 이를 조상함

모과(木瓜)를 선물로 받는다면

해하가(垓下歌)

 

김재은 

기러기 울어 예는……

그놈의 정() 때문에

 

이상옥 

미국에서 재현된 고등학교 영어 수업 기싱 수상록에 맺힌 이야기 (1)

우연한 계기, 잇따른 사연들 기싱 수상록에 맺힌 이야기 (2)

두브로브니크 탐방기

 

정진홍 

생로병사 종교학적 자리에서의 자전적 에세이

 

이상일 

떠나가는 사람들 1

떠나가는 사람들 2

떠나가는 사람들 3

 

이익섭 

팔십수(八十叟)

93세의 순정

진달래와 철쭉 ― 「헌화가(獻花歌)의 꽃

 

정재서 

평성(平成) 25년 경성중학

웃은 죄

고왕금래(古往今來) 연편(連篇)

 

저자 소개


김명렬(영문학 서울대학교) 

김학주(중국고전문학 서울대학교)

김재은(발달심리학 이화여자대학교) 

이상옥(영미문학 서울대학교)

정진홍(종교학 서울대학교) 

이상일(독문학 성균관대학교)

이익섭(국어학 서울대학교) 

정재서(중국고전문학 이화여자대학교)

 

 

책머리에


어느 도서관 낙성식에서, 그 도서관을 설계한 분이 축사를 하는 자리에서 그랬습니다. 사람들이 하는 일 중 중요한 일은 다 짓는다고 한다고. 집을 짓고, 밥을 짓고, 옷을 짓고, 또 짝을 짓고. 그러고 보면 글도 짓는다고 합니다. 아예 글짓기라는 단어가 따로 있기도 합니다. 글 쓰는 일도 중요한 일이 분명합니다.

우리 모임은 글을 짓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글을 짓되 평생 무거운 글 속에 갇혀 있던 자리에서 퇴임한 만큼 좀더 자유롭게 가벼운 이야기를 쓰면서 만년의 남는 시간을 보내자고 모인 모임입니다. 간행사에도 한때 문학소년들이었던 때의 기개(氣槪)를 다시 살려 보자는 포부가 들어 있지만, 내심 글을 향한 열정을 이어가고 싶은 욕구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독 짓는 늙은이가 아니라 글 짓는 늙은이가 되고 싶었을 것입니다. 뜻이 모여 1년에 한 권씩 책을 냈습니다. <숙맥>이라는 이름으로. 그게 어느덧 열 권을 넘어 이번이 11호가 됩니다.

1년에 고작 한 권씩이면 겨우 파적(破寂) 아니면 여흥(餘興)의 수준인데 그럼에도 우리 스스로는 이것을 대견해하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기력(氣力)들이 쇠()하여 가는 노년들이 10년이 넘게 처음 뜻을 꾸준히 이어 온 일이 쉬운 일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벼운 글이라 하지만, 글 쓰는 일이 아무리 가벼운 글이라 하여도 쉬운 일이 아니잖습니까. 흔히 생각을 옮기면 글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머릿속에서 다 정리되었다고 해서 펜을 들어 보면 그때부터 또 생각이 몇 번이나 바뀝니까. 글 한 줄을 넣었다 뺐다, 이리 옮기고 저리 옮기고, 또 단어 하나, 구둣점 하나 가지고도 얼마나 씨름을 합니까. 그것은 그저 짓는것만도 아니고, 그야말로 씨름이요 씨름이되 고투(苦鬪)가 아닙니까. 그것을 이 노년에 10년이 넘게 이어 온 것은 결코 작은 일만은 아닐 것입니다.

아직 무슨 할 얘기가 그렇게 남아 있느냐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또 노인들이 말이 많은 것이 미덕만은 아니잖느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독일어를 공부하며 처음으로 읽은 소설이 대개 테오도르 슈토름(Theodor Storm)임멘 호수(Immensee)였을 것입니다. 그 소설의 첫 장()과 마지막 장이 다같이 Der Alte로 되어 있지 않습니까. 노인이 어린 날의 첫사랑을 회상하는 구성으로 된 소설인데 그 첫머리와 끝에 노인이 나오는 장면이 늘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지금 우리는 바로 그 소설의 Der Alte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쓰는 이야기는 대개 그런 회상들입니다. 낡은 사진을 들여다보며 그리운 이름을 되뇌는 것들입니다. 80년이란 긴 세월 켜켜이 쌓인 퇴적물에서 들쳐내는, 아름답기도 하고 아프기도 한 귀한 추억들입니다. 왜 할 이야기가 없겠습니까.

아니 회상이 아니어도 그렇습니다. 피아니스트들을 보면 가령 베토벤의 어느 소나타를 20대에도 치고 50대에도 치고 또 70대에도 칩니다. 꼭 같은 악보의 것을 치면서도 그때마다 해석이 달라지고 분위기도 달라집니다. 그런데 묘한 것은 만년의 연주들이 템포도 느려지고 박력도 떨어진 것이면서도 우리의 심금을 더 크게 울리는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지금 우리이기 때문에 쓸 얘기가 있습니다. 우리가 아니면 쓰지 못할 이야기들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젊었을 때는 일흔이라는 나이가 어떤 나이인지, 그때가 되면 어떤 심정이 되는지, 여든은 또 어떤지 헤아려 볼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짐작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생생히, 또 미묘한 부분까지 피부로 느낍니다. 석양은 이제 작열하며 위세를 떨칠 힘은 없으나 대신 아름다운 낙조를 만듭니다. 우리는 우리대로의 몫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역시 나이를 이기는 장사는 없어 지난해 남정에 이어 올해 향천이 또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두 분 모두 바로 이 모임을 앞장서서 만든 분들이며 이 모임의 성격도 바로 그분들이 세운 것이었습니다. 그만큼 그분들의 빈자리가 큽니다. 이 모임을 계속 잘 이어가기를 떠나는 자리에서까지 특별히 당부를 하기도 하였지만 앞으로도 우리는 글에 대한 애정을 놓지 않으려고 합니다. 글로 사귀는 벗이, 좋은 글 한 줄을 놓고 함께 기쁨을 나눌 수 있는 벗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 벗들이 모이는 모임이 누리는 기쁨이 얼마나 큰 은총인지를 우리는 압니다. 어쩔 수 없이 필력(筆力)들이 떨어져 가고 있으나 계속 힘을 모으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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