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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간행도서

정효구 산문집, <다르마의 축복>

by 푸른사상 2018. 2. 1.




정효구

다르마의 축복

 

153×224×18 mm30414,500ISBN 979-11-308-1255-7 03810 | 2018.1.30



도서 소개


삶과 마음 안에 존재하는

다르마의 풍경을 찾아서

 

문학평론가 정효구 교수의 산문집 다르마의 축복<푸른사상 산문선 21>로 출간되었다. 바다, 하늘, 들녘, 꽃과 나무와 새 같은 자연물, 아이들이 뛰어노는 학교 마당과 하얗고 깨끗한 식탁보 등의 인공물, 그리고 허공, 만다라, 숫자 영() 등과 같은 정신적 존재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일체 만유로부터 다르마의 풍경을 발견하고 그 축복을 흠뻑 누린다. 그리고 그 발견과 축복의 장에 독자들도 함께 참여하자고 따뜻한 초대의 말을 건넨다.

 

 

도서 목차


책머리에

 

1

바다, 사라지는 기쁨 | 초원, 길을 잃는 기쁨 | , 그저 흘러가는 기쁨 | 하늘, 생각이 멈추는 기쁨 | 들길, 평화로운 숨길의 시간 | , 아무도 모르는 시간 | 들녘, 너그러움에 물드는 시간 | [], 육신이 마음을 가꾸는 시간 | 언덕, 양지만큼 밝아지는 곳 | 정원, 마음을 가꾸는 도량 | 과수원, 아무 일이 없는 곳 | , 평화 너머의 신화 | 사막, 잉여를 말린 삶 | 마당, 아래쪽에 사는 기쁨 | 울타리, 낮을수록 넓어지는 곳 | , 여여(如如)한 부동의 길 | 새들, 단순한 자유의 기쁨 | 바위, 오래된 은자의 기쁨

 

2

새싹, 살 만한 땅을 만드는 기적 | 훈풍, 피안이 주는 위로 | 자작나무, 문득 환해지는 길 | 교정(校庭), 여백이 만든 비경 | 산맥, 일념과 정진의 대장정 | 무논, 영원을 닮은 생명의 땅 | 미루나무, 신화처럼 높은 세계 | 일주문, 오래된 한 마음의 길 | 수수, 삼계(三界) 너머를 상상하는 일 | 왕소금, 삼가는 마음의 거룩함 | 야자수, 호흡이 느려지는 곳 | 큰 수레[大乘], 큰 것을 진정 알게 하는 시간 | 빈 집, 존재의 새로운 차원 | 나비들, 가벼움을 가르치는 선지식 | 합장, 두 손이 찾은 궁극 | 법명(法名) 1, 이름을 넘어선 이름 | 법명(法名) 2, 마음을 넘어선 마음 | 당호(堂號), 도량이 된 거처

 

3

열매들, 정진이 만든 보석 | (), 해결되는 기쁨 | 선원(禪院), 장식을 모르는 삶 | 도반(道伴), 한 곳을 보며 가는 길 | 여백 1, 그냥 두고 보는 마음 | 여백 2, 출가자의 마음 | 휴일, 본심자리에 머무는 시간 | 하지(夏至) 저녁, 방심해도 좋은 시간 | 정자(亭子), 유토피아의 작은 원형 | 성신(星辰), 먼 곳이 주는 축복 | ‘물의 책’, 쓰지 않는 기쁨 | 공양(供養), 밥이 법이 되는 신비 | 만다라, 온전하고 원융한 마음 | 고목(古木), 안심의 시간 | 승복(僧服), 부재의 잿빛 신비 | 사찰 이름, 여법한 만트라의 문장 | 무주공산(無主空山) 1, 불인(不仁)의 마음 | 무주공산(無主空山) 2, 무주(無住)의 놀이터

 

4

산수화, 인간 이전의 원경 | 구름, 무상(無常)을 사는 삶 | 무밭/배추밭, 가을이 아낀 생명 | 사철나무들, 계절을 넘어선 형이상학 | 허공(虛空), 만유를 허용하는 큰마음 | 풀벌레들, 노래하는 은둔자 | 참새들, 진실을 품은 삶 | 잠자리들, 가벼운 날개의 꿈 | 수녀님, 맑고 향기로운 원석 | 다탁(茶卓), 법향(法香)의 테이블 | 귀가(歸家) 1, 본향으로 가는 기쁨 | 귀가(歸家) 2, 영원으로 사는 기쁨 | 열반송(涅槃頌), 크나큰 정화의 송가 | 매미의 울음, 직심과 일념의 마음 | 해풍(海風), 시원으로 돌아가는 기쁨 | 여래십호(如來十號), 다르마의 축복 | 스승과 제자, 본심을 가꾸는 시간 | 성지(聖地), 전등록(傳燈錄)이 살아 있는 자리

 

5

하얀 식탁보, 초월을 꿈꾸는 문명 | 초추(初秋)의 양광(陽光), 잉여를 정리한 햇살 | 청산도(靑山道), 푸르름이 만든 길 | 성탄일/석탄일, 만인을 쉬게 하는 휴일 | 예수님의 조상(彫像), 더 낮아질 수 없는 마음 | 절기(節氣), 아름다운 사계의 묘용 | 평원(平原), 수평의 놀라운 위의 | 양심(良心), 간섭할 수 없는 성지 | 꿈 없는 잠, 한 생각도 없는 공터 | 불영(佛影)/불영사(佛影寺),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없는 기쁨 | 영동(嶺東)의 풍경, 선사시대의 마음 지대 | 다리, 참마음의 길 | 이동식 선생, 동토(凍土)에 봄을 가져다주는 마음 | 억새꽃, 꽃을 넘어선 꽃의 정경 | 대숲, 북방의 수성(水性)을 공부하는 시간 | 파도 소리, 처음으로 돌아가게 하는 율려(律呂) | 서리와 눈[], 좌절과 초월의 기쁨 | 법성게(法性偈), 영원을 가르치는 송가

 

출판사 리뷰


불교에서 다르마는 법()을 뜻한다. 이 세상이 그렇게 되게끔 되어 있는 것, 그것이 이라고 붓다는 말했다. 그렇다면 다르마는 불교적으로만 이해할 수 있는 용어는 아닐 것이다. 우리가 살아 숨 쉬는 이 세계의 모든 것이 다르마의 풍경일 테니 말이다.

다르마의 축복은 바다, 초원, , 하늘, 들녘 등 우리 주위에 펼쳐진 대자연, 자작나무, 미루나무, 대숲, 억새꽃, 풀벌레, 잠자리, 참새 등 이 세계에 깃들어 살아가는 생명, 뿐만 아니라 사람, 건물, 햇살, 바람, 눈에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 추상적인 개념, 구체적인 물상 등 우리 삶을 이루는 모든 것에 대한 사색의 글들을 모은 것이다. 사소한 것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 저자의 섬세한 시선은 어느새 만물에 숨겨진 비밀을 찾아낸다. 그 모든 것이 다르마의 소식을 전하고 있기에 우리는 혼탁한 세상 속에서 힘들게 살아가다가도 잠시 짐을 내려놓고 심호흡을 하며 휴식을 누릴 수 있다.

 

 

저자 소개


정효구

1958년 출생. 충북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국어국문학과)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5한국문학신인상을 수상하며 문학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미국 럿거스대학교의 동아시아 언어문화학과에 방문교수로 체류한 바 있다.

저서로는 상상력의 모험 : 80년대 시인들, 몽상의 시학 : 90년대 시인들, 시 읽는 기쁨 1-3, 한국현대시와 평인(平人)의 사상, 마당 이야기, 맑은 행복을 위한 345장의 불교적 명상, 일심(一心)의 시학, 도심(道心)의 미학, 한용운의 님의 침묵, 전편 다시 읽기, 붓다와 함께 쓰는 시론, 신월인천강지곡(新月印千江之曲), 님의 말씀등 다수가 있다. 2016년 현대불교문학상을 받았다.

현재 충북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책머리에


이 책은, 지난 늦은 봄부터 저의 삶과 마음 안에 존재하는 다르마의 풍경을 찾아내며 스스로 숨 쉴 장소를 만들었던 흔적입니다.

공부의 진도는 쉽게 나아가지 않고, 사바세계에서 인간 종으로 살아가는 일은 언제나 난제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인간 종에게도 다르마의 소식이 당도해 있다는 사실은 축복이자 희망으로 다가왔습니다. 제가 이 다르마의 소식에 기대어 숨 쉰 풍경 속에서 여러분들도 잠시나마 쉬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만유의 화평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책 속으로

 

무한을 느끼게 하는 바다 앞에 서면 나는 어느새 무한이 된다. 나를 잊고, 너를 잊고, 시간을 잊고, 공간을 잊고 바다와 함께 무한이 되는 것이다. 이 때, 그토록 집착했던 우리 존재의 실체와 경계는 봄눈처럼 사라지고 만다. 이처럼 나라는 존재가 시킨 이도 없는데 아침 이슬처럼 사라지고 마는 신비경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더욱이 존재가 사라질 때의 감미로움과 해방감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까? (19)

 

사막에서 우리의 몸은 한없이 가벼워진다. 일체의 물기 있는 것들을 털어버리고, 질척대는 희로애락의 감정들을 털어버리고, 몸무게가 제로를 향하는 것이다. 사막의 그 가벼움은 단순한 물리적 무게감의 덜어냄이 아니다. 그것은 공성(空性)을 내재화한 자의 가벼움이다

 공성(空性)! 그것은 얼마나 온전한 가벼움인가. 어느 한구석으로 치우지지 않은 중도(中道)의 공성은 세상을 균형 있는 가벼움의 세계로 만든다. 사막에서 이런 공성의 흔적을 본 사람들은 세상 일이 어긋날 때마다 사막에 마음을 포개고 운다. 그런 속에서 어긋났던 일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면서 치유되고, 어긋난 것 그 자체가 본래는 진리 그 자체임을 알며 생기를 얻는다. (56)

 

누구나 알다시피 어떤 숫자에 영을 더하거나 빼도 그 숫자는 변함없이 그대로이다. 나는 여기서 생각한다. 어떤 존재를 단 하나의 간섭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둘 수 있는 존재란 얼마나 대단한 경지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인가 하고 말이다. 영은 어떤 존재도 그대로 두고 본다. 아무런 주관적 관여를 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어디에도 다녀온 흔적이 없는 영의 이 고차원적 삶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숫자 영은 만유의 삶을 그대로 인정하는 최고의 방편행(方便行)을 구사하고 있는 것 같다. 다녀갔으면서 다녀가지 않은 중도행(中道行)을 이 땅에서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 같다.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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