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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간행도서

서용좌 장편소설, <흐릿한 하늘의 해>

by 푸른사상 2017. 6. 26.



서용좌 장편소설

흐릿한 하늘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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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소개


흐릿한 하늘에도 해는 떠 있기에

 

독문학자이며 소설가인 서용좌의 장편소설 흐릿한 하늘의 해<푸른사상 소설선 14>로 출간되었다. 지방대학 시간강사로 살아가는 서술자 한금실, 그녀가 만나는 우울한 군상과 암울한 일상, 그 속에서도 숨은 해를 찾으려는 것이 바로 글의 힘일 것이다.

 

 

도서 목차


글을 쓴다

 

슬픈 족속

유예된 시간

청출어람

화학반응

목소리

다리 밑

날마다 비겁함

굴뚝새

삼천리강산에 새봄이

산의 소리

다른 사람의 죽음 - 페트라 켈리를 기억하기 위해서

안개

 

 

저자 소개


서용좌

광주 출생. 3 때 교지에 무제라는 시를 발표하고도, 화가, 피아니스트, 수학자 등의 가능한 길을 무시하고 독문학자가 되었다가 늦깎이 소설가가 되었다. 장편소설 열하나 조각그림, 연작소설 희미한 인(), 소설집 반대말·비슷한말, 장편소설 표현형등이 있고, 이화문학상, 광주문학상, 국제PEN문학활동상 등을 수상했다.

 

 

출판사 리뷰


특출나게 공부를 잘해서 외국 유학까지 갔다 왔지만, 현실은 지방시 - 지방대학 시간강사인 그녀, 한금실은 저자의 전작인 표현형의 서술자이기도 하다. 표현형에서 세계 도처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우리 유전자의 표현형을 추구하던 그녀는 말미에서 어린 여자아이를 쫓아 물에 빠져 익사 지경의 모습으로 사라졌었다. 흐릿한 하늘의 해는 한금실이 의식이 돌아오면서 더 깊었던 물 천지의 기억으로 다시 생의 갈피를 잡아내려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갑자기 떠났던 백두산 여행의 기억은 과거를 다시 불러내어, 오늘을 있게 하고 미래를 꿈 꿀 수 있게 한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그녀는 여전히 돈은 없으나 시간은 넉넉한 비정규직 강사로서 현실을 살고 있다. 단조로운 일상은 삶의 순간들을 천착하는 계기가 된다.

전편을 흐르는 것은 도처에서 불발인 인생들에 대한 미지근한 애정을 담고서 이웃들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마주치는 순간들에 영원성을 불어넣어야 하리라는 강박관념이 그녀로 하여금 글을 쓰게 한다. 식탁에 올랐다가 아슬아슬 살아난 농게 한 마리도 놓칠 수 없는 가슴으로, 동성애를 둘러싼 상념, 다리 밑 노숙자, 늘그막에 다시 만난 첫사랑 연인들에 대한 에피소드를 가로지르다가, 쌍용자동차 굴뚝 농성 같은 정치사회적 이슈도 지나치지 못한다. 멀리는 프랑스에서 돌아온 의궤의 궤적, 독일 녹색당의 빛났던 전설도 안테나에 잡는다.

그러니까 한금실은 등장인물이자 서술자로서, 자신과 이웃의 삶에서 드러나는 사소한 사건들을 언어화하고 있다. 글 쓰는 사람은 쓰지 않을 수 없어서 글을 쓰고, 읽는 독자들이 그 속에 감추어진 삶의 파편들에서 일말의 공감을 얻을 것을, 함께 심쿵하기를 희망하리라. 흐릿한 하늘에도 해는 떠 있을 것이기에.

 

 

서문글을 쓴다


나 한금실은 이 소설의 등장인물이자 이 이야기를 서술하는 가공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여전히 글쓰기와 실 인생 사이에 끼어 있다. 이 기록은 40세라는 인생의 엄중한 반환점을 넘어가는 동안의 마음 조각들이리라. 지방시 인생 - 지방대학 시간강사로 사는 것은 가치 충돌이거나 불일치의 증거를 살아내는 일이다. 머릿속의 지식이 돈으로 환전되었을 때 비로소 가치가 생기는 희한한 세상에서, 그들은, 우리들은, 어릿광대다. 웃픈 어릿광대들이다. 정신의 힘으로 물질의 부족을 초월할 수 있다는 거짓 미소를 날마다 생산해서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키며, 이 거짓 자존심의 효력이 언제까지 통할지 전전긍긍한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군림해있는 현 세계를 도깨비인들 저승사자인들 어찌해 볼 수나 있을까. 날마다 비겁했다는 반성을 되풀이하면서도, 내가 선택해야할 나의, 우리의 미래는 안개다.

안개 속에서는 더욱 또렷이 혼자다. 헤르만 헤세도 그리 읊었다. “숲도 바위도 고독하다. 어떤 나무도 다른 나무를 보고 있지 않다. 누구든 혼자다. 삶은 고독함. 누구도 다른 사람을 알지 못한다. 누구든 혼자다.” 그 비슷한 시. 프랑스어로 번역된 독일시를 읽었던 기억으로 그것을 다시 우리말 한글로 생각해내자니 원문의 훼손이 의심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인생을 그렇게 어설프게 해석하는 것에 불과하리라. 그러나 어떻게든 살아내야 하는 에너지를 발생시켜보아도 옆 사람에게 다다르지 못할 때, 이렇게 머뭇거리고 헤매는 동안에,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새어나온다. 목소리가 이웃 존재들에게 부딪혀 돌아오는 메아리의 시간으로 거리를 가늠한다.

좌표를 확인하려는 몸부림으로 나의 글쓰기의 근저에 놓여 있는 것은 나와 이웃들의 삶에서 드러나는 사소한 사건들이다. 서술자로서의 나의 기능은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사건들을 언어화하는 일이다. 서술자는 사건을 찾아서 그것을 미래의 독자인 허구적인 수신자를 고려해서 언어화한다. 그렇게 해서 생겨난 서사 텍스트는 서술자에 의해서 특정한 방법으로 특정한 의도 속에서 꼭 그렇게, 다르지 않게언어화된다. 그러니까 다른 서술자라면 똑같은 사건을 다소간에 다르게 서술하리라. 만일 그라면 상이한 정보를 보고 듣고 상이한 동기와 관심을 가지고서 이 사건들을 재현하리라. 그러므로 나의 이야기는 다만 근저에 놓인 사건들의 주관적 변형에 불과한 것임을 안다.

이번 이야기는 지난번 표현형에서 나 한금실이 동반자를 구한다는 남자를 만나러 바닷가 마을을 찾아가다가 거의 마지막 장소와 마지막 순간에 물에 빠졌던 이야기에서 이어진다. 이어진다는 말은 그러니까 내가 살아났다는 말이고, 내 의식은 언젠가 깊고 푸른 물속을 들여다보았던 기억과 교차되어 돌아온다. 기이하게도 슬픈 족속을 떠올리며 돌아온 나는 살아서 글을 쓴다.

나는 글을 쓴다, 그러므로 살아있다.’라고 선언한 마지막 동독의 소설가 크리스타 볼프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나는 무턱대고 쓴다. 내가 만나는 이웃들은 아무런 연관 없는 삶을 살아간다. 어차피 세상은 우연한 공존들의 합이고, 나는 우연한 조각들만 볼 수 있을 뿐이다. 장님 코끼리 보기다. 나를 포함한 여기 등장인물들의 삶의 단면이 서술된 상태에서 얼마만큼 독자들의 공감을 얻게 될 것인지, 그것은 삶의 품질에 달려있다기보다는 전적으로 서술자인 나의 서술의 품격 탓이리라. 나는 또 한 번 서술의 마력에 굴했지만, 결과물에 대한 두려움으로 미리 질식할 것만 같다.

순간 나는 흐릿한 하늘 뒤에서 아스라이 비춰오는 햇살을 탐한다. , 흐릿한 하늘에도 해는 떠 있다.

한금실, 가공의 서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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