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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사상 미디어서평

[대구일보] 동서화합이라는 말 / 김완<너덜겅 편지>

by 푸른사상 2014. 12. 8.

장맛비 뚫고 광주에서 경주로 차 몰고 간다/ 오늘은 만델라의 조국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월드컵축구 십육강전이 열리는 날이다/ 적들을 용서하고 서로가 서로의 일부가 된 사랑/ 자유를 향한 머나먼 그의 여정이/ 세계 곳곳에 꽃 피고 열매 맺는 날이다/ 이천십 년 영호남 심장학회 참가하러간다/ 학문적 교류는 벌써 이십 년이 넘었다/ 옛 부터 영호남간의 학문적 교류 많았다/ 조선중기 대학자 이황과 젊은 학자 기대승간에/ 십이 년간 서한을 주고받으며 팔 년 동안/ 사단칠정론을 주제로 벌였던 논쟁 유명하다/ 이십일 세기에는 유비쿼터스 아이티 강국의 정신으로/ 어디서든 마음껏 토론할 수 있겠다/ 보이는 산마다 밤꽃을 하얗게 둘러쓰고/ 장맛비속에 ‘오 필승 코리아’ 응원중이다/ 동서화합이라는 말은 정치적인 쇼일 뿐이다/ 덜커덕거리던 내 심장도 오늘 아침은 평온하다

- 시집『너덜겅 편지』(푸른사상,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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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은 이 시대에 용서와 화합의 아이콘인 넬슨 만델라의 1주기 되는 날이었다. 세계 곳곳에서 만델라를 추모하며 그가 평생 실천한 화해의 정신과 공존의 리더십을 받들고 계승할 것을 다짐했다. 그의 ‘화해’ 메시지는 그저 내뱉은 말이 아니라 27년의 옥살이를 견디며 불의와 불평등에 맞선 저항과 꺾이지 않는 투쟁이 있었기에 힘이 실릴 수 있었다. 광주보훈병원 심장내과 전문의인 시인이 4년 전 남아공월드컵의 열기가 한창일 때 학회 참석차 경주로 가는 중에 만델라를 떠올리면서 동시에 ‘동서화합’을 생각했던 것 같다. 오늘날 우리가 안고 있는 지역, 계층, 이념간의 갈등양상에서 만델라 정신이 던져주는 메시지의 의미는 크다. 예전에 비해 ‘지역감정’이 많이 옅어졌다지만 여전히 선거철만 되면 그 망령이 발호하여 나라를 동서로 가르고 있다. 지역감정이 근대사에서 표면화된 것은 70년대 초 김대중 박정희 대결구도에서 박정희에 의해 불씨가 지펴졌다는 게 정설이다. 조선중기 이중환의 ‘택리지’도 사적 감정과 정치적 배경으로 호남을 왜곡폄하하지 않았던가.
시인은 호남을 대표하는 젊은 학자 기대승과 영남을 대표하는 원로 학자 이황 간의 격조 높고 아름다운 교류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분위기가 오늘날까지 이어져 국가 전반으로 확대 재생산되지 못한 점을 아쉬워하고 있다. 영호남간에는 예로부터 얼마간 문화적 차이가 존재했다. 영남이 서원문화라면 호남은 정자문화이고, 영남이 수묵화 문화라면 호남은 채색화 문화다. 영남학풍이 철학적인 성찰을 중요시한 반면 호남학풍은 문학예술적인 풍류를 우선시했다. 그러나 영남문화와 호남문화는 상호배타적이 아니라 얼마든지 교류에 의해 상호보완적일 수 있다. ‘오 필승 코리아’를 함께 목청껏 외쳤던 우리들이기에 아직 희망은 있다. 더구나 지금은 ‘이십일 세기’ ‘유비쿼터스 아이티 강국’이 아닌가.
한편 만델라가 용서한 백인들,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스페인 포르투갈 등 식민지를 경영했던 유럽 국가들이 아프리카에서 공을 차며 벌였던 각축이 한판 씻김굿이 되면서 4년 전 월드컵의 진정한 승자는 스페인이 아니라 인류 모두에게 화합과 희망의 장을 마련하고 ‘적들을 용서하고 서로가 서로의 일부가 된 사랑’으로 남은 남아공과 아프리카였다. 그때 불편한 몸으로 폐막식에 참석한 만델라의 환한 미소가 바로 승자의 여유였던 것이다.


<대구일보>  2014.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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