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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사상 미디어서평

[오마이뉴스] 분단시대 동인 30주년 기념 시집 <광화문 광장에서>

by 푸른사상 2014. 11. 28.

분단시대 동인 30주년 기념 시집 <광화문 광장에서>, 오마이뉴스, 2014.11.27.


세월호 유족 둘러싼 불신에 분노하고 반성하는 시

[서평] 분단시대 동인 30주년 기념 시집 <광화문 광장에서>

한 세대를 품은 <분단시대>여, 더 높이 닻을 올려라
한 세기를 막은 분단 시대여, 이제 그만 닻을 내려라 - 맹문재(시인. 안양대 교수)


2014년 4월 16일은 자본과 권력의 이름으로 갈라진 실체가 드러난 날이다. 세월호 사고로 딸 유민양을 잃은 유민 아빠 김영오씨가 광화문 광장에서 46일간 목숨을 건 단식을 하며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실천적 지식인 문화예술인들과 작가들은 광화문 광장에서 릴레이 단식을 하며 고통을 분담했다. 그 단식의 현장에 햄버거와 콜라, 피자를 사들고 와 먹으며 돌아다니던 보수 청년들도 있었고 자식 팔아 장사하느냐며 막말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극과 극, 분단의 깊은 골을 눈앞에서 목격하는 순간이었다.


불완전 독립에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남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분단시대 동인 30주년 기념 시집인 <광화문 광장에서>가 푸른 사상에서 출간되었다. 30년 전 분단의 상황을 역사적으로 인식하고 극복하려고 젊은 시인들이 <분단시대>를 결성했다고 한다. 그들은 민족의 분단에서 기인된 사회의 모순과 병폐, 시대의 아픔을 시로 엮었다.


동인지 1집은 판매금지를 당했고 동인들은 감시, 해고, 구속의 고초를 겪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일터와 광장에서 시대의 아픔을 노래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고, 1980년 민중항쟁에 필요한 디딤돌의 한 부분을 담당했다.


기득권 세력이 된 친일파들이 권력을 이어가면서 철조망으로 갈라진 분단의 역사만이 아니라  자본, 권력, 좌우 이념 대립. 정규직과 비정규직, 부자와 가난한 자 등 수많은 모습이 우리 안의 분단을 견고히 만들었다.


세월호, 노란 리본 광화문 광장에 나타난 서북청년단 재건을 꿈꾸는 사람들과 일간베스트 청년들,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족과 시민들을 차벽으로 갈라 치는 현실을 통해 우리는 통렬한 사회적 성찰과 반성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분단 상황을 민중을 억압하고 단도리하는 기제로 사용하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반세기를 살아왔다. 생존을 이야기해도 자식을 잃은 어미가 왜 내 자식이 죽었는지 알려달라는 하소연에도 '빨갱이'라는 억지스런  비난이 따라 붙었다.


분단 시대 동인 30주년 기념 시집인 <광화문 광장에서>는 김성장. 김용락, 김윤현, 김응교. 김종인, 김창규, 김희식, 도종환. 배창환, 정대호, 정원도 등 열한 명의 시인이 2014년 최대 분단 사건인 세월호를 중심으로 시를 엮었다.


이번 시집은 세월호라는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 민중을 억압하고 갈라 치는 우리 안의 분단 기제들인 자본, 권력, 이념, 무관심 증오와 불신 등 우리 사회에 팽배한 편 가르기 기제들을 이성적 눈으로 돌아볼 것과  철저한 사회적 반성과 자각을 촉구한다. 맹문재 시인은 ' 한 세기를 막은 분단은 그만 닻을 내려야 한다'고 갈라치기를 고착화 한 우리 사회를 향해 외친다.


도종환 시인은 '광화문 광장에서'라는 시를 통해 유족을 둘러 싼 증오와 불신에 분노하며 자기 반성을 요구한다.


광화문 광장에서/도종환

고통은 끝나지 않았는데 여름은 가고 있다
 아픔은 아직도 살 위에 촛불심지처럼 타는데
 꽃은 보이지 않는지 오래되었다
 사십육일만에 단식을 접으며 유민이 아빠 김영오씨가
 미음 한 숟갈을 뜨는데
 미음보다 맑은 눈물 한 방울이 고이더라고
 간장 빛으로 졸아든 얼굴 푸스스한 목청으로 말하는데
 한 숟갈의 처절함
 한 숟갈의 절박함 앞에서
 할 말을 잃고 서 있는데
 한 숟갈의 눈물겨움을 조롱하고 야유하고 음해하는
 이 비정한 세상에 희망은 있는 것일까
 스스로를 벼랑으로 몰아세운 고독한 싸움의 끝에서
 그가 숟갈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을 때
 미음보다 묽은 눈물 한 방울이 내 얼굴을 올려다보며
 이 나라가 아직도 희망이 있는 나라일까 묻는데
 한없이 부끄러워지면서
 무능하기 짝이 없는 생을 내팽개치고 싶어지면서
 넉 달을 못 넘기는 우리의 연민
 빠르게 증발해 버린 우리의 눈물
 우리의 가벼움을 생각한다
 그 많던 반성들은 어디로 갔는가 - 시 일부-

김용락 시인은 '서북청년단 재건위'라는 시를 통해 우리 안에 자본의 얼굴로, 이념의 얼굴로, 불평등의 얼굴로, 무관심의 얼굴로, 우리 안에 자리한 갈라치기와 분단을 기제를 짚어내고 있다.

서북청년단 재건위/김용락

 올 가을
 국민소득 2만 3천 달러
 선진국 문턱의 이 땅에
 서북청년단 재건위가 나타났다고 한다
호열자처럼
 폐결핵처럼
 에이즈처럼
 에볼라처럼
 그 죽음의 그림자가
21세기 대명천지에 나타났다고 한다
4.3 때, 10.1 때, 여순 때, 1950년 그때
 임산부의 배를 가르고
 태아를 총검으로 찍어 들어 휘저었다는
 살육의 레전드가
 가을의 전설처럼
 연탄가스처럼 다시 나타났다고 한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서북청년단이
 이 땅에서 사라진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을 나는 알았다
 자본의 얼굴을 한 서북청년단이
 가난의 얼굴로 가장한 서북청년단이
 불평등이라는 무심한 이름을 이마에 붙인 서북청년단이
 인간의 윤리와
 도덕을 한 방에 갈아엎는 냉혈한의 얼굴로
 형제간에 패륜적 재산 싸움을 통해
 늙은 노모를 산 속에 버리고 도망치는 뒷모습을 통해
 빚에 몰린 임대주택 모녀의 동반 자살의 모습으로
 늘 우리 곁에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미처 깨닫지 못한 것뿐이었다
 변장과 위장에 능란한
 그 서북청년단의 참 모습을 놓치고 산 것뿐이었다 -시 전문-

<분단시대> 동인들이 인식한 세월호 사건을 통해 처절한 자기반성의 시를 통해 분단 시대의 닻을 내리는 동력이 되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광화문 광장에서/김성장.김용락.김윤현.김응교.김종인.김창규.김희식.도종환.배창환.정대호.정원도/푸른사상/8,000원

이명옥 기자(mmsar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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