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도 없는데, ‘글’은 써 무엇하냐고?
<시와시>, 한겨례 신문, 2014.4.10
계간지 ‘시와 시’. |
계간지 ‘시와 시’ 노숙인문학 특집
“노숙인들, 글 쓰며 자존감 회복”
등 붙이고 두 발 뻗을 방 하나 없는 노숙인들에게 문학과 글쓰기가 무슨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 문학이니 글쓰기니 하는 ‘고상한’ 놀음보다는 한 끼 밥과 따뜻한 잠자리가 시급한 것 아닐까.
노숙인을 위한 글쓰기 교실 강사로 참여하면서 문인들이 품은 생각도 그런 것이었다. 그렇지만 글쓰기 교실을 이어 가는 동안 예상치 못했던 성과를 눈으로 보았고 ‘노숙인과 문학’에 대한 생각에 변화가 왔노라고 이들은 토로한다.
최근 나온 시 전문 계간 <시와 시> 봄호(사진)는 ‘노숙인 문학’을 기획 특집으로 삼아 소설가 이시백과 동화작가 노경실, 문학평론가 고봉준의 글을 실었다. 이와 함께 노숙인 대상 문예 공모인 민들레문학상 수상자 이지화씨의 체험기와 수상작들을 소개해 노숙인 문학의 현재를 볼 수 있게 했다.
이시백은 2007년 경희대가 주관하는 경기 동북부 도시 빈민 인문학 강좌에서 문학 강의를 했다. “빵만으로 채워질 수 없는 인간의 삶을 돌아보게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글쓰기 강의는 숱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주인공인 노숙인들이 “글과 문학을 배우면서 더욱 자신의 무지함과 부족함을 토로”하는 것을 보면서 그는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모자라는 인문학적 소양이 아니라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자존감의 회복”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문학 지망생들의 합평회처럼 지적과 교정을 일삼기보다는 격려하면서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이야기를 하도록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가르침도 얻었다.
노경실은 지난해 6월 서울 충정로 노숙인 쉼터에서 30명 가량의 노숙인들에게 글쓰기를 강의했다. 예쁜 노트를 한권씩 선물하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수강생들이 “문장을 이루는 자체가 힘든 상태”라는 것을 확인하면서 커다란 ‘벽’을 느낀다. ‘말로 표현하기’를 거쳐 그리운 사람과 장소에 관한 낱말 하나씩을 써 넣는 것으로, 이어서 그 낱말을 하나의 문장으로 풀어 내는 것으로 단계를 발전시켜 나갔다. 마침내 서투르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할 수 있게 되었다. 노경실이 얻은 결론도 이시백과 다르지 않다.
“약자일수록 자신에 대한 표현을 하기 힘들어한다. 워낙 오랜 시간 힘 있는 자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에 익숙해져서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에 대한 이야기, 나의 생각을 말한다 해도 진정으로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일찌감치 눈치채서이기도 하다.”
당사자인 이지화의 육성은 한층 생생하다. “처음엔 두렵고 나의 삶이 밝혀지는 것 자체가 겁이 났고 부끄러웠”다는 그. ‘그리운 사람’에 대한 글쓰기 수업에서 제가 쓴 글을 읽다가 “‘부모님’이란 단어에서 말문이 막히고 울분이 터져 목이 메어서 더 이상 읽지 못”했다는 그의 경험은 아프고 절절하다. 그런 과정을 거쳐 나온 민들레문학상 수상작들에서는 희망과 불안의 두 얼굴이 교차한다.
“새벽의 길 위에서 수레를 끌며 천천히 걸으면/ 수많은 불빛이 환하게 반기며 밝히고/ 가고자 하는 목적지까지 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고/ 나는 원하는 파지, 철, 알루미늄 깡통을 길에서 얻게 됩니다”(김인수 <새벽의 길 위에서> 부분)
“이제는 별명이 없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도 없다/ 지금 나의 집은 남산타워가 보이는 예배당/ 거대한 예배당 속의 성냥갑만한 쪽방//(…)// 이곳에서 내가 늙어 죽는 것인가/ 두렵다”(김영철 <목숨> 부분)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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