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도서소개
●시세계
문영규 시인의 시집을 읽는 동안 “몸은 흔들려도 마음은 흔들리지 않으려 시를 붙들고 살았습니다.”라는 그의 겸허한 말이 마음의 파문으로 남는다. 그에게 시는, 시작(詩作)은,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도정에서 극심하게 흔들리고 요동치는 마음의 갈피를 추스르되, 무엇이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는 삶이 참으로 진실된 삶을 사는 것인가를 성찰하고 그렇게 깨우친 그 무엇을 삶의 현실에서 몸소 수행하는 삶의 도량(道場)과 다를 바 없다. 따라서 그에게 시는 언어 예술의 어떤 경지를 추구함으로써 이르게 되는 미의 산물로 자족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 그에게 시는 언어 예술의 측면보다 삶의 과정을 이루는 것인바, 시작(詩作) 자체가 그의 삶의 피와 살이면서 뼈를 이룬다. 여기, 문영규 시인의 이러한 시 쓰기를 엿볼 수 있는 시의 부분을 음미해보자.
이 서방은 착하다
착한 이 서방은
내가 채소를 다 먹어갈 즈음
어김없이 싱싱한 채소를 다시 가져온다
처제와 이 서방은
특별한 약 해드리지 못하지만
채소라도 마음껏 자시란다
처제와 이 서방은
벌레에게도 마음껏 채소를 내어준다
처제와 이 서방이
채소밭에 농약을 뿌리지 않는 건
순전히 벌레를 위해서다
처제와 이 서방이 키운 채소는
시장 채소처럼 가지런하지 않다
벌레 먹은 그대로다
채소를 벌레와 사이좋게 나눠먹는
처제와 이 서방은 벌레와 사촌이다
나와도 사촌이고
나와 벌레도 사촌이다
― 「우리는 사촌」 부분
삶과 세계를 대하는 시인의 정갈한 마음이 오롯이 나타나 있다. 무슨 사연인지 모르나, 시적 화자인 ‘나’의 건강이 썩 좋은 편이 아닌지, 처제 내외는 “특별한 약 해드리지 못하지만/채소라도 마음껏 자시”라면서 “어김없이 싱싱한 채소를” 가져온다. 그런데 이 채소는 “농약을 뿌리지 않”은 유기농법에 의해 길러진 것으로, “벌레 먹은 그대로다”. 이렇게 처제 내외가 기른 채소를 보며 시적 화자는 처제 내외가 ‘착한’ 마음을 갖고 있는 데 대해 감동한다. 그것은 “채소를 벌레와 사이좋게 나눠먹는” 처제 내외가 지닌, 뭇 생명과 생의 가치를 나눠가지면서 상생과 공존하는, 말 그대로 ‘착한’ 마음을 시인이 절로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적 화자는 “처제와 이 서방은 벌레와 사촌이”듯, 이렇게 ‘착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 기른 채소를 먹는 ‘나’ 역시 자연스레 “나와 벌레도 사촌이다”라는 모종의 깨우침을 얻는다. 여기에는 처제 내외의 진실되고 ‘착한’ 마음이 타자를 향해 결코 요란스럽지 않게 나타나듯, 삶과 세계를 대하는 시인의 마음 역시 진솔하고 담박한 시적 진실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음을 가볍게 넘길 수 없다.
이처럼 문영규의 시집에서 우리시대의 민중의 상처와 자기연민은 문영규 특유의 시적 치유를 통해 삶의 신생의 기운을 북돋우고 있기도 하다.
사람이 화를 내면
체온이 내려가므로 우리 식구들은
자주 웃기로 하였다
시간이 지나면
우리에게도 승산이 있으리라 생각하며
― 「방어전략」 부분
우리 어무이 듣고 들은 이야기 또 하신다 처음 들을 때는 사람이 버틸 수 있는 궁핍이 참 대단한 수준이구나 싶기도 했지만 들을수록 등골 서늘함이 있다 놀랍게도 이 절박한 옛 이야기할 때마다 류마치스 관절염 통증을 잠시 멎게 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나는 얼마 전에 알게 되었다
― 「어무이」 부분
이제, 깊은 숨 한 번 내쉬고
조금 찌그러지자
― 「조금 찌그러지자」 부분
삶이 팽팽한 긴장감의 사위로 에워싸인 채 각박하고 신산스러울수록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그러한 삶을 자연스레 부드럽게 풀어냄으로써 조금이라도 삶의 훈기와 훈풍이 불도록 하는 삶의 내공이다. 이에 대한 시인의 해법은 참으로 간명하고 지혜롭다. 화를 내지 않고 “자주 웃기”(「방어전략」)이며, 지난날 힘든 삶을 억척스레 살아온 어머니의 투박하면서도 절박한 그러면서 맛깔난 이야기를 온몸으로 듣는 일이다(「어무이」). 이렇게 절로 육화한 희노애락(喜怒哀樂)이 깃든 삶의 호흡을 하며 이른 “조금 찌그러지자”(「조금 찌그러지자」)에 담긴 자기겸허야말로 문영규 시인의 시적 진실의 성취다. 이 자기겸허는 자기비하가 결코 아니라 시인 자신이 30년 남짓 노동 현장에서 치열한 삶을 살아간 이 땅의 민중이자 노동자로서 “젊고 드넓은 마음밭”(「달인의 말씀」)을 힘겹게 일궈온 가운데 득의(得意)한 소중한 시적 진실일 것이다.
●추천의 글
문영규 시인의 시들은 투명하다. 시들을 읽다보면 시인의 삶의 세목들까지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이다. 그가 환하게 피어나는 꽃길을 묘사하거나 수줍게 자신의 진심이나 사랑을 드러내거나 심지어 가난이나 불안, 병고 등을 그릴 때조차 일관된다. 그렇게 시가 투명한 것은 아마도 그의 삶이 명징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투명하게 비치는 삶의 명징성에는 우리가 힘겨워하는 삶의 어떤 것들을 일순간에 부끄럽게 만들어 버리는 힘이 내재되어 있는 듯하다. 마치 “위기의 순간에 오히려 향기를 내뿜”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독자에게 혹은 시인 스스로에게 은근하게 위로와 격려를 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 조기조(시인)
문영규의 시들은 병(病)으로부터 꽃까지 혹은 병으로부터 꽃의 변주곡이다. 시인은 이십오 년을 함께해온 아내와 두 아이와 착하디착한 손아래 동서인 이 서방과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고생한 어무이와 작물을 키우는 데 달인인 정원 관리인과 경건한 기도를 드리는 수녀님과 정수기를 파는 초등학교 동창생인 정숙이와 시장의 생선 장수와 누렁소와 수몰촌이 된 고향과 소주와 공단의 길과 형광등과 공책과 시계와 매미와 단풍 들을 병을 맞아들인 몸으로 품으면서, 아련한 매화 향기를 봄밤에 맡고 공단의 벚꽃 홍수에 숨을 멈추고 진해 장복산의 벚꽃 터널에서 꽃멀미를 하고 망초꽃 곁에서 하얗게 젖고 돌계단의 틈에 핀 채송화의 인사를 받고 여한이 없다고 노래를 부른다. 그리하여 시인의 꽃들은 아름답고도 담백한 사람의 향기를 낸다.
- 맹문재(시인·안양대 교수)
문영규 시인의 시집을 읽는 동안 “몸은 흔들려도 마음은 흔들리지 않으려 시를 붙들고 살았습니다.”라는 그의 겸허한 말이 마음의 파문으로 남는다. 그에게 시는, 시작(詩作)은,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도정에서 극심하게 흔들리고 요동치는 마음의 갈피를 추스르되, 무엇이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는 삶이 참으로 진실된 삶을 사는 것인가를 성찰하고 그렇게 깨우친 그 무엇을 삶의 현실에서 몸소 수행하는 삶의 도량(道場)과 다를 바 없다. 따라서 그에게 시는 언어 예술의 어떤 경지를 추구함으로써 이르게 되는 미의 산물로 자족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 그에게 시는 언어 예술의 측면보다 삶의 과정을 이루는 것인바, 시작(詩作) 자체가 그의 삶의 피와 살이면서 뼈를 이룬다. 여기, 문영규 시인의 이러한 시 쓰기를 엿볼 수 있는 시의 부분을 음미해보자.
이 서방은 착하다
착한 이 서방은
내가 채소를 다 먹어갈 즈음
어김없이 싱싱한 채소를 다시 가져온다
처제와 이 서방은
특별한 약 해드리지 못하지만
채소라도 마음껏 자시란다
처제와 이 서방은
벌레에게도 마음껏 채소를 내어준다
처제와 이 서방이
채소밭에 농약을 뿌리지 않는 건
순전히 벌레를 위해서다
처제와 이 서방이 키운 채소는
시장 채소처럼 가지런하지 않다
벌레 먹은 그대로다
채소를 벌레와 사이좋게 나눠먹는
처제와 이 서방은 벌레와 사촌이다
나와도 사촌이고
나와 벌레도 사촌이다
― 「우리는 사촌」 부분
삶과 세계를 대하는 시인의 정갈한 마음이 오롯이 나타나 있다. 무슨 사연인지 모르나, 시적 화자인 ‘나’의 건강이 썩 좋은 편이 아닌지, 처제 내외는 “특별한 약 해드리지 못하지만/채소라도 마음껏 자시”라면서 “어김없이 싱싱한 채소를” 가져온다. 그런데 이 채소는 “농약을 뿌리지 않”은 유기농법에 의해 길러진 것으로, “벌레 먹은 그대로다”. 이렇게 처제 내외가 기른 채소를 보며 시적 화자는 처제 내외가 ‘착한’ 마음을 갖고 있는 데 대해 감동한다. 그것은 “채소를 벌레와 사이좋게 나눠먹는” 처제 내외가 지닌, 뭇 생명과 생의 가치를 나눠가지면서 상생과 공존하는, 말 그대로 ‘착한’ 마음을 시인이 절로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적 화자는 “처제와 이 서방은 벌레와 사촌이”듯, 이렇게 ‘착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 기른 채소를 먹는 ‘나’ 역시 자연스레 “나와 벌레도 사촌이다”라는 모종의 깨우침을 얻는다. 여기에는 처제 내외의 진실되고 ‘착한’ 마음이 타자를 향해 결코 요란스럽지 않게 나타나듯, 삶과 세계를 대하는 시인의 마음 역시 진솔하고 담박한 시적 진실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음을 가볍게 넘길 수 없다.
이처럼 문영규의 시집에서 우리시대의 민중의 상처와 자기연민은 문영규 특유의 시적 치유를 통해 삶의 신생의 기운을 북돋우고 있기도 하다.
사람이 화를 내면
체온이 내려가므로 우리 식구들은
자주 웃기로 하였다
시간이 지나면
우리에게도 승산이 있으리라 생각하며
― 「방어전략」 부분
우리 어무이 듣고 들은 이야기 또 하신다 처음 들을 때는 사람이 버틸 수 있는 궁핍이 참 대단한 수준이구나 싶기도 했지만 들을수록 등골 서늘함이 있다 놀랍게도 이 절박한 옛 이야기할 때마다 류마치스 관절염 통증을 잠시 멎게 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나는 얼마 전에 알게 되었다
― 「어무이」 부분
이제, 깊은 숨 한 번 내쉬고
조금 찌그러지자
― 「조금 찌그러지자」 부분
삶이 팽팽한 긴장감의 사위로 에워싸인 채 각박하고 신산스러울수록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그러한 삶을 자연스레 부드럽게 풀어냄으로써 조금이라도 삶의 훈기와 훈풍이 불도록 하는 삶의 내공이다. 이에 대한 시인의 해법은 참으로 간명하고 지혜롭다. 화를 내지 않고 “자주 웃기”(「방어전략」)이며, 지난날 힘든 삶을 억척스레 살아온 어머니의 투박하면서도 절박한 그러면서 맛깔난 이야기를 온몸으로 듣는 일이다(「어무이」). 이렇게 절로 육화한 희노애락(喜怒哀樂)이 깃든 삶의 호흡을 하며 이른 “조금 찌그러지자”(「조금 찌그러지자」)에 담긴 자기겸허야말로 문영규 시인의 시적 진실의 성취다. 이 자기겸허는 자기비하가 결코 아니라 시인 자신이 30년 남짓 노동 현장에서 치열한 삶을 살아간 이 땅의 민중이자 노동자로서 “젊고 드넓은 마음밭”(「달인의 말씀」)을 힘겹게 일궈온 가운데 득의(得意)한 소중한 시적 진실일 것이다.
●추천의 글
문영규 시인의 시들은 투명하다. 시들을 읽다보면 시인의 삶의 세목들까지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이다. 그가 환하게 피어나는 꽃길을 묘사하거나 수줍게 자신의 진심이나 사랑을 드러내거나 심지어 가난이나 불안, 병고 등을 그릴 때조차 일관된다. 그렇게 시가 투명한 것은 아마도 그의 삶이 명징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투명하게 비치는 삶의 명징성에는 우리가 힘겨워하는 삶의 어떤 것들을 일순간에 부끄럽게 만들어 버리는 힘이 내재되어 있는 듯하다. 마치 “위기의 순간에 오히려 향기를 내뿜”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독자에게 혹은 시인 스스로에게 은근하게 위로와 격려를 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 조기조(시인)
문영규의 시들은 병(病)으로부터 꽃까지 혹은 병으로부터 꽃의 변주곡이다. 시인은 이십오 년을 함께해온 아내와 두 아이와 착하디착한 손아래 동서인 이 서방과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고생한 어무이와 작물을 키우는 데 달인인 정원 관리인과 경건한 기도를 드리는 수녀님과 정수기를 파는 초등학교 동창생인 정숙이와 시장의 생선 장수와 누렁소와 수몰촌이 된 고향과 소주와 공단의 길과 형광등과 공책과 시계와 매미와 단풍 들을 병을 맞아들인 몸으로 품으면서, 아련한 매화 향기를 봄밤에 맡고 공단의 벚꽃 홍수에 숨을 멈추고 진해 장복산의 벚꽃 터널에서 꽃멀미를 하고 망초꽃 곁에서 하얗게 젖고 돌계단의 틈에 핀 채송화의 인사를 받고 여한이 없다고 노래를 부른다. 그리하여 시인의 꽃들은 아름답고도 담백한 사람의 향기를 낸다.
- 맹문재(시인·안양대 교수)
2. 저자약력
문영규
1957년 합천 작은 산골 마을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살길이 막막해 도시 노동자가 되어 30년 남짓 현장에서 일을 했다. 배움에 목이 말라 1994년 방송통신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졸업생들 가운데 시를 쓰며 삶의 새순을 찾으려는 벗들과 1994년 <객토문학회>를 만들어 여태까지 시와 함께 살아왔다. 1995년 마창노련문학상을 받았으며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이 글을 써야 세상이 참되게 바뀐다는 생각을 가지고, 2002년 첫 시집 『눈 내리는 날 저녁』을 펴냈다.
1957년 합천 작은 산골 마을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살길이 막막해 도시 노동자가 되어 30년 남짓 현장에서 일을 했다. 배움에 목이 말라 1994년 방송통신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졸업생들 가운데 시를 쓰며 삶의 새순을 찾으려는 벗들과 1994년 <객토문학회>를 만들어 여태까지 시와 함께 살아왔다. 1995년 마창노련문학상을 받았으며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이 글을 써야 세상이 참되게 바뀐다는 생각을 가지고, 2002년 첫 시집 『눈 내리는 날 저녁』을 펴냈다.
3. 도서목차
■ 시인의 말
제1부
봄밤
꽃이 핀다는 것은
홍수
벚꽃
절정
망초꽃
꽃 멀미
채송화
기도
달인의 말씀
우리는 사촌
키조개
설거지를 하다
왜?
제2부
형광등
정숙이
무디어지기
일단 정지
화분
마침표
벽
가늠할 수 없는
윙크를 한다
USB메모리
어무이
금봉암에서
저녁 무렵
매미
향기
제3부
당신은 아마도
미션 임파서블
보름달아
조금 찌그러지자
술술 풀리는 집
시계
느슨해졌네
단풍
방어 전략
모팔모
출근하고 싶은 날
병따개
수혈받으며
소
제4부
고향
어디로 가랴
너를 향해 던진다
여행
우리 사이에는
시장에서
나는 지금 외출 중
늙은 호박
수몰촌 1
수몰촌 2
수몰촌 3
수몰촌 4
수몰촌 5
수몰촌 6
해설 젊고 드넓은 마음 밭을 일구는-고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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