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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사상 시선

정진경, 여우비 간다

by 푸른사상 2013. 12. 9.

 

 

 

 

 

 

 

1. 도서소개

 

정진경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인 『여우비 간다』가 <푸른사상 시선 35>으로 출간되었다. 이 시집은 욕망하는 기계로서의 인간의 존재성 문제와 소비자본주의가 생성해내는 가상현실, 이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인공의 탈을 쓰는 현대인의 실존성을 개성적인 문체로 다루고 있다. 진화의 역사만을 추구해온 인류가 과연 진화한 것인지, 퇴화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시로 담론화하고 있다.



인간 이성의 좌초는 계몽의 패배를 의미한다. 탈마법화의 자리를 대체한 기술과 돈은 신화의 휘장을 두르고 세계를 점령하고 있다. 이제 눈부신 유형지에서 헛것의 욕망에 눈먼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정진경의 시적 사유는 바로 이 지점에서 발화한다. 문명이 산출한 기묘한 역전화 현상, 인간 위에 군림하는 통제와 배제의 시스템, 주체에서 객체로 밀려난 이성의 참담한 얼굴을 그는 처절하게 주시한다. 통각(痛覺)의 언어로 읽어낸 정진경의 시세계를 마주하는 일은 그래서 곤혹스럽다. 그는 전통적 감성도 자연의 서정도 낭만적 향수도 그리지 않는다. 소위 인간적이라고 여겨졌던 -혹은 그렇게 믿었던- 과거의 가치와 이념이 폐기처분된 ‘인공의 현실’을 그는 낱낱이 증언한다.

우화(羽化)하고 싶은 날은 마우스를 클릭, 하세요

(중략)

현실은 잠시 암전되고,
빛 입자로 만든 알 속에서 부화한 나비들이
살(肉)로 감각하는 당신 얼굴을 지우고
전자 회로로 만든 가면을 씌웁니다
그곳에선
당신의 의식을 NO 상태로 오래 두면
생체 뇌를 전뇌로 대신하는
사이보그 체험이 가능하답니다

- 「장자의 나비, 인터넷에서 날다」 부분

“우화(羽化)”를 위해 “클릭”은 필수적이다. 접속은 “현실”의 암전”이며, “전자 회로”는 “살(肉)”의 “감각”을 지운다. “가면”을 쓰지 않고서는 입장할 수 없는 ‘탈피’의 공간이 바로 “사이보그” 세계이다. “나비”의 ‘부화’는 현실을 ‘off’함으로써 획득된다. 즉 누추한 애벌레의 육체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빛 입자(인터넷 창)”로의 접속은 불가피하다.
현실과 가상의 분리와 차단은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는 익숙한 설정이다. 문제는 가상을 체험(나비)하기 위한 조건으로 “의식을 NO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는 발상이다. 의식의 배제와 삭제는 주체 인식의 몰각을 상징한다. 사유의 붕괴와 차단이 우화(羽化)에 이르는 유일한 방식임을 정진경은 진술한다.

 

-문학평론가 강경희
 
 
2. 저자약력
 
정진경
2000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알타미라 벽화』『잔혹한 연애사』가 있다. 현재 부경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3. 도서목차
 
제1부

동일자의 꿈
굴욕의 신념
정신교화=휴머니즘?
장자의 나비, 인터넷에서 날다
즐거운 하루의 고해성사
뉴스는 불안이 피운 꽃들이다
후생애(後生涯) 스토리텔링하기
살모식인증
패턴에 대한 욕망
유토피아 만들기
베아트리체바이러스
모델료
바이러스 상자
전화벨은 사랑의 수유 시간이다
파시즘 시대극
할로윈 타임


제2부

간지럼의 도상학
가장 신성한 예술
장마
3점 골인 슛
견고한 습관
세상 바퀴-인간은 모두 죽는다/시몬 드 보부아르
쌍피 전략의 행복
맹수 훈련소
심리적인 공범
거짓의 통로는 짧고 진실의 통로는 길다
감각적 나이
웃음의 순간이동
여우비 간다
자연주의자 가문
280cc의 싱크홀


제3부

시간의 중량
세상의 것들은 다 음식이 된다
그 여자 몸에 피는 기계꽃
가면놀이
가장 강력한 비수(匕首)
화장이 얼룩져도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
충돌한 흔적
힐링 서핑
그녀의 사용설명서
펌프질
능숙한 상담심리사
국화꽃이 장전되고 있다
갑옷과 누드
티브이는 경마장
편집증적 엑스레이, 나를 투과하다


제4부

서정리로 가는 길
봉인 1-데칼코마니
봉인 2-향냥
봉인 3-구름 단양
실종 신고서를 쓴다
서정리에 부는 바람
망각으로 설계한 도시
0시의 새 때들
덜커덕 죽기 전에
마지막 패(覇)
리모델링-오륜대
시간의 적토마를 타고
철사줄에 걸린 리얼리티
두 개의 텍스트:15, 643호


해설 이성의 몰락, 생명의 의지-강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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