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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사상 시선

올랜도 간다

by 푸른사상 2013. 6. 25.



한혜영, 올랜도 간다








1994년 『현대시학』의 추천과 1996년『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한혜영의 세 번째 시집입니다. 시편들은 이민자이자 시인으로서 겪어온 애환과 인간의 존재론적 탐색이 주를 이룹니다. 지상의 존재로서 겪는 고단함을 이겨내려는 의지의 성숙함. 이중의 언어를 사용하는 시인임에도 치열한 언어적 자의식을 보이고 있습니다.




1. 시집목차



■ 시인의 말

제1부

무거운 발
알람시계
우산에 대한 새로운 이해
슬픔의 족속들
말의 재활용
단추를 달다가
흔적 지우기
밥통들
이혼
본색을 들키다
말[言語]을 타고 평생을 간다
발자국 무덤에 대한 설(說)
나그네새들

변기

제2부

조개에게 배우기
옷과 멜라니
그 여자의 상자
얼음 식탁
수피(獸皮)와 세탁소
감탄의 숙주(宿主)들
험한 시간을 본다
표정을 잃다
완벽한 믿음
질서
해법
슈트를 입은 뱀

닭에 관한 지나친 관찰
열대성 폭풍

제3부

낮게 흐르는 혈압
개미 이해하기
오래된 고집
신분
기와를 놓는 사내
아버지의 만년필
약속을 생각하다
의자가 필요한 때
밥 먹는 일
오리(五里)도 날지 못하는 오리
외투
죽음들
이런 사발
젖무덤을 내려놓다
트렁크가 트렁크에게

제4부

핸드폰 뚜껑을 여닫듯이
올랜도 간다
첫눈
세발가락도요새
바닷가 풍경
사각에 갇히다
봄날 한때의 이런 교신
그해 겨울은 갑자기 찾아왔다
헛발
마중물
삐뚤어진 고개
겨울바다를 읽다
풍경 소리, 그대
거울 감옥
이상도 해라

해설 시쓰기의 자의식을 통한 심미적 사유와 감각-유성호




2. 저자소개



충남 서산에서 출생해 1994년 『현대시학』 시 추천, 1996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태평양을 다리는 세탁소』 『뱀 잡는 여자』, 동시집으로 『닭장 옆 탱자나무』가 있다.




3. 시세계



두 개의 축으로 이루어진 한혜영의 시는 인간의 존재론적 탐색에 깊이 관여한다. 미국 이민자로서의 애환을 노래한 것과 깊은 서정에서 우러나오는 그녀만의 시적 사유와 감각이 그것이다. “내 시는/두려움 속에서의 비명, 아니면/불안함을 잊어보려는 노래”(시인의 말)라는 시인의 고백처럼, 전환기적 징후이기도 한 한혜영의 시 세계는 한층 성숙한 심미적 진경(進境)을 보여준다.


목숨 있는 것들은/발의 무게를 감당할 수가 없다/상승 기류를 계속해서 탈 수가 없다//가벼운 깃털을 가지고도/우주를 빠져나가지 못하는 새들/전깃줄로 되돌아와 쓸쓸하게/까딱거릴 수밖에 없는 것은/발의 무게 때문이다//발만 없었더라면 태평양 상공/어디쯤에서 멋지게 실종될 수도 있었을/나도 발 때문에 지상으로 내려와야 했다//나무도 한때는 새였다는 소문이 있다/지상으로 끌려내려 올 때의/절망을 견디지 못하고/스스로의 발에다 못질을 하고서야/한 자리 붙박일 수 있었다는

「무거운 발」전문


시인은 ‘발’이라는 은유를 통해서 지상에서 살아가는 것들의 삶을 고단하게 그리고 있다. “목숨 있는 것들은/발의 무게를 감당할 수가 없다”는 말로. 그러나 그는 합리적인 해결을 위해 ‘나무’를 끌어온다. “나무도 한때는 새였다는 소문이 있다/지상으로 끌려내려 올 때의/ 절망을 견디지 못하고/스스로의 발에다 못질을 하고서야/한 자리 붙박일 수 있었”다는, 자연과 인간을 동일시함으로 운명적으로 받아들인다.

‘발’을 통하여 근원적인 삶을 들여다보는 방식은 다른 시에서도 볼 수 있다. “수심(水深)보다 더 깊은/한숨의 계단을 밟아서 내려가 보면/저렇듯이 걷어간 발자국들만 부려놓은/거대한 무덤이/ 수수만 개라는 설(說)이 있다//코무덤이나/귀무덤보다 할 말이 많은 발자국들이/저를 버려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주인의 발목을 기다리며/하품 꺽꺽 하고 있다”(「발자국 무덤에 관한 설(設)」)고 진술한다. 인간이란 지상에 발자국을 남기는 존재이며, 그것을 통해 삶의 질을 깨닫는 것이다.

올해로 23년째 이민 생활을 하는 한혜영에게 언어는 여전한 걸림돌이다. 소통의 도구가 ‘언어(말)’라고 볼 때 불편을 넘어서 절망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총보다 무서운 혀를 장착하고/세계 곳곳을 점령했던 영어는 강적을 만난 것이다/알카에다보다 지독한/내 모국어의 성벽을 뚫을 수가 없다/스무 해가 넘는 동안 영어는/철옹성 같은 동굴 입구나 약간 괴롭혔을 뿐”(「오래된 고집」)이라니. 영어는 그에게 극복이 아니라 싸워서 이겨야 할 대상이다.

그가 ‘언어(말)’에 못 견뎌 하는 것은 시인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쓰고 남은 말을 쌓아두는 야적장이 있다면/나는 삼백육십오일 창고에 갇힐 거”, “말을 수선하는 일로 식음을 전폐할 거야/날마다/용접봉에 불꽃 튀기며 말을 수선할 거야” (「말의 재활용」), “인생을 부리는 것은 9할 9푼이 말이다 자다가도, 죽음 직전에도 말 잔등에 올라야 한다”(「말(言語)을 타고 평생을 간다」) 등에서 엿볼 수 있는 것처럼, 언어에 대한 부담감이 항상 작용을 한다.

이밖에도 그가 극복해야 할 것은 많다. 현지 문화의 적응이라든지 고국에 대한 향수. 상충하면서 조금씩 동화되어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피치 못할 감정의 소모를 그는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대구탕, 순두부 한 그릇 만나러 고향집 간다/시간 반도 넘게 운전을 해서 올랜도 간다//고맙다고, 고맙다고 대구탕 순두부가 고맙다고/같이 밥 먹어줘서 고맙다고//벌건 얼굴로 꾸벅꾸벅 맞절하러 올랜도 간다/이것이 생(生)이지 펄펄 끓는/뚝배기에 숟가락 담가 보려고 올랜도 간다//비라도 내리는 날은/좀 더 멀리까지 나가보고 싶지만/그것이 눈발이라면/영영 달아나 돌아오지 않을 수 있을 테지만//플로리다서 눈발이라니? 당치도 않은 말 때문에/귀갓길 아직 지우지 못하는//우리는 생리를 치르듯 한 달에 한번/꼬박꼬박 올랜도 갔다가 집으로 온다

「올랜도 간다」 전문


한국음식이란 단순한 먹을거리, 그 이상의 것으로 “고맙다고, 고맙다고” 꾸벅꾸벅 인사를 해야 할 대상이다. 생존과 직결된 것이 음식이라는 점에서의 가치라면 당연한 것이지만, 여기에서의 음식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음식을 만나러 가는 것은 고향을 만나러 가는 것이며 추억을 만나러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추억과 그리움은 곳곳에서 나타난다. “민소매 차림의 나를/서울역/인사동으로 불러들이는/첫눈은,/당신은 진짜 반칙”(「첫눈」)이라고 항변도 하고. 그러나 이것은 추억을 통해서 위로를 얻는 방식이다. “카카오톡, 페이스북, 트위터/밤늦게까지/그리움을 두레박질을 하는 동안/꺾어지고 삐뚤어진/ 나,/고개”가 그러한 것처럼. 목을 빼고 고국을 넘겨다보고 있노라면 상실감에 사로잡힐 때가 많다. “이룬 건 없어도, 다 끝났다 한평생/고단했을 날개에 바람구멍을 깊숙하게 내어준다/어디로도 저어갈 수 없는, 이제는 찢어진 돛이다/뚝! 소리 한번 크게 내면서, 부러진 노”(「오리(五里)도 날지 못하는 오리」)를 통해서 날지 못하는 오리와 아우를 동일시하는 점이라든지 “백 년이 간대도 절대로 구를 수 없는/내 지구는 태평양을 건너온 뒤로/한 번도 둥근 적이 없었”(「사각에 갇히다」)다고 할 만큼 절박한 마음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상당히 긍정적이다. 속도가 느리긴 하나 미국 사회에 동화되기 위하여 열심인 것을 보면. “영어 배우러/학교에 가서 책을 펼쳤을 때/꼬부라진 글자 위에서 발발거리는/개미를 보고는/여기가 어디라고 따라왔어!/하하! 큰소리로 웃을 뻔”(「개미 이해하기」)할 만큼 여유가 생긴 것이다. “사방이 염전”(「본색을 들키다」)인 것을 알게 된 그에게 시는 이제 종교적 의미까지 더하고 있다.


오랫동안//해지는 걸 보지 못했다//참회의 날이 턱 없이 부족했다//오늘은 의자//계속해서 뒤로 물리면서//해지는 것이나 보고 싶다 

「의자가 필요한 때」 전문



4. 추천의 글



그는 고개를 드는 일을 고개를 길어 올린다고 말한다. 이런 표현은 이상하게 사람의 속을 철렁 울리며 처연하게 한다. 무심코 고개를 드는 일처럼 하찮은 것도 한 목숨 길어 올리는 일처럼 경건한 것이었구나! 하는 깨달음을 불러오며 새삼 생이 눈물겹게 껴안아지게 한다. 그의 시를 보면 모든 존재는 자신의 생을 연기하는 배우에 불과하다는 말이 떠오른다. 생이라는 무대에서 마치 지붕 수선공처럼 비탈에 아슬히 붙어 불볕의 하루를 연기해야 하는 존재들……. 그들의 얼굴을 클로즈업시켜 보니 아는 얼굴이었다고 그는 고백한다. 그것은 모든 인간의 공통된 모습인 동시에 시인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그의 시에는 나와 너와 그가 모두 동격이다. 그 남자와 거미와 개미와 무당벌레가 동격이다. 아니 삼라만상이 동격이다. 그가 시를 쓰는 일은 ‘너’라는, ‘그’라는, ‘그것’이라는 거울 속에 현현된 시간들의 노골적이며 동시다발적인 현상들을 훔쳐보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시공(時空) 저 너머에 있는 이곳을 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 이경림(시인)


삶과 죽음 사이에서 굽이치며 흘러가는 일상에 대해 노래할 때 한혜영의 시들은 생생하다. 그 일상이란 단추 달기, 죽은 아버지 떠올리기, 고향 음식 찾아 떠나기, 한여름 지붕에서 기와 올리는 노동자 바라보기, 이승의 마지막 장면 상상하기 따위로 범상하다. 하찮고 비루하고 더러는 무겁고 숭고한 이 일상 위로 마음은 왈칵 쏟아지고, 마음에 숨겼던 본색이 노출되기도 한다. 이 눈밝은 시인이 일상의 조촐함에서 건져 올리는, 산다는 것은 사납게 진저리치기고 꿈을 쫓아가다가 발 헛딛기라는, 범속한 트임에서 찾은 실체적 진실들이 진주알같이 반짝인다. 과장과 자기 현시가 일체 없는 정직한 자기 응시, 그 응시 속에서 찾은 삶의 진실들, 그것이 한혜영 시들의 매혹으로 빛난다.

- 장석주(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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