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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신간도서

정라헬 소설집, 『랭보의 권유』

by 푸른사상 2025. 8. 27.

 

분류 - 문학(소설)

랭보의 권유

 

정라헬 지음푸른사상 소설선 70145×210×17mm288

18,900ISBN 979-11-308-2317-1 03810 | 2025.8.28

 

 

■ 도서 소개

 

세계의 진실을 발견하기 위한

견자의 여행을 추구하는 소설

 

정라헬 작가의 첫 소설집 랭보의 권유가 푸른사상 소설선 70으로 출간되었다. ‘견자 시론을 외치며 세계여행을 떠났다는 시인 랭보처럼, 작가는 소설을 통해 동서고금을 종횡무진하며 자유로운 상상력을 펼친다. 그 자리에서 작가는 굳어진 것들을 뒤집어내는 진실을 궁극적으로 묵과하지 않는다.

 

 

■ 작가 소개

 

정라헬

경남 산청에서 태어났다. 경성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아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서 석사학위(소설 전공)을 받았으며 동의대학교 국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희곡 전공). 2013년 단편 발재봉틀내일을 여는 작가신인상을 수상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 목차

 

작가의 말 : 독특하다 했지

 

다크 투어

암명 인구부 답감

로마 병사의 일일

장한이곡

다르지 않아요

랭보의 권유

하얀 꽃

발재봉틀

홍합 수염

 

작품 해설 : 진실 내용을 가로지르는 어떤 말들 _ 김효숙

 

 

■ 작가의 말 중에서

 

기습폭우의 여파로 강풍이 몰아친다. 쉴 새 없이 작동하는 와이퍼 너머로 익숙한 대로이건만 사정은 딴날과 다르다. 평소에 떠나야 한다고 날 유혹해대더니. 날이 사나우면 유혹이 없어지기 때문에 여기로 더 달려야 한다. 많은 것을 할 거라고 다짐하면서 도착한 카페. 창 너머 앞으로 벼가 심어진 논이, 뒤로 기찻길과 역사를 같이했던 잔재가 있다. 조금 있으면 사람이 하나, 둘 와서 커피와 케이크를 두고 담소를 즐길 것이다. 나는 되도록 구석진 자리를 잡는다. 미리 집중해놓아야 누가 와도 계속할 수 있으니. 누구는 이런 날 힐끔거린다.

아들은 이런 나를 독특하다고 진단했다. 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센 강변 카페에서 이런 일상을 보내는 것을 TV에서 본 적이 있다. 유명한 소설가에 비해 난 소설집 한 권을 내지 않았으니 아들로부터 그런 말을 들어도 마땅하다. 작가로서 본분을 다하라는 임명 받은 지가 언젠데. 이 길과 저 길에서 서성였던 세월이 꽤 됐으니 아들의 시선이 옳다.

 

 

■ 작품 세계

 

정라헬 소설집 랭보의 권유는 정신(영혼)에 의탁한 진실 내용 추적하기 또는 추정하기의 서사다. 세계의 진실을 발견하는 계기가 견자의 여행이라면 이 소설집은 바로 이런 점을 적절히 구현한다. 동서양을 횡단하는 사유에 녹아 있는 작가의 사관은 다분히 견자로서의 경험을 녹여낸 듯 보인다. 작가는 이미 진실로 굳어진 내용을 뒤집어내는 그 자리에서 언뜻 비치는 한 줄기의 섬광 같은 것을 묵과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 국면이 자명하지 않고 모호하여 종국에 질문의 형식으로 남는 소설집이다.

(중략)

정라헬은 과거의 구원자 중 한 사람으로서 글쓰기에 참여한다. 그의 소설은 이전 방식을 해체하면서 표면을 스치듯 속도감이 있는 로드 무비 형식을 취한다. 동서양을 횡단하는 상상력으로 견자의 정신을 녹여낼 수 있었던 건 그만큼 작가의 관심이 현실의 피막에 머물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현실과 역사가 분리되지 않는 건 현실이 변하듯이 역사의 진실 내용도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서만 자신이 제대로 보이므로 작가는 다음같이 우리에게 견자의 여행을 권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너를 떠나라. 그러면 네가 보일 것이다. 너야말로 너의 국경이다.’

김효숙(문학평론가) 해설 중에서

 

 

■ 출판사 리뷰

 

마치 견자 시론을 외치며 세계여행을 떠났다는 시인 랭보처럼, 첫 소설집 랭보의 권유에서 작가는 소설을 통해 동서고금을 종횡무진하며 자유로운 상상력을 펼친다.

소설은 승리자의 관점에서 기록되는 역사에서 배제되거나 억압된 존재들을 불러낸다. 진압군과 반란군, 두 개의 상이한 입장에서 여순사건을 다룬 다크 투어암명인구부 답감, 천도재와 발인, 죽은 자를 위한 제의라는 점에서 공통적인 소재를 형상화한 로마 병사의 일일홍합 수염, 그리고 중앙아시아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장한이곡, 랭보의 권유, 하얀 꽃까지, 이 땅을 넘어 전지구적으로 확산하는 작가의 독특하고 날카로운 시대의식이 돋보인다.

 

 

■ 작품 속으로

 

어딜 가려구? 애걔, 고무신이 왜 한 짝뿐이니?”

아내는 얘가 누구한테 그래, 라면서 아이를 흔들었다. “너랑 나랑 통했어. 내 반짝이 구두끈도 떨어졌거든.”이라는 것이다. 곧 끈이 온전히 달린 구두 한 짝을 벗어 건넸다. “가져가라니까!” 하고 앙칼지게 소리쳤다. 곧 화가 난 얼굴로 구두를 던졌다. 멀리 가지 못한 것을 주운 아내는 할 말을 잃고 얼어붙었다. 아이 눈앞에 손을 시계추처럼 왔다갔다했다. 가관인 것은 안타까지 같은 눈빛으로 출구 쪽을 바라보았다. (다크 투어, 22)

 

기합을 넣어 말했는데 이내 머쓱해지고 말았다. 그녀는 이런 사실을 대기 중에 부유하는 먼지쯤으로 여길지 모른다. 손님이 말려 준 우엉이라면서 그녀가 차를 내게 더 따라주었다. 평범한 사람처럼 그랬다. 내가 한쪽 귀에만 하고 있는 달과 별 귀찌를 그때는 예리하지 않은 시선으로 보았다. 젊네, 하는 소견을 빠뜨리지 않아서 앗, 나는 찻물에 입술이 데고 말았다. 퀙퀙퀙, 그녀가 누군가를 제압했던 것이 빠르게 스쳐갔던 탓이다. 그녀가 모태?” 하면서 나를 빤히 쳐다본다. 눈이라고 해서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먼저 끄덕였다. 사실 내 둥글고 짧은 얼굴 때문에 동남아인인가 하는 오해를 종종 받곤 한다. 거기다 쌍꺼풀까지 굵게 졌으니. 그녀가 차를 따끈하게 마셔두라고 다시 말했지만 나는 적응이 좀 안 된다.(로마 병사의 일일, 81)

 

오랜만에 먹는 삼겹살과 된장찌개로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식당은 키가 큰 잎나무로 차 있어 식물원에 온 것 같았다. 동그란 탁자 중앙에 잎이 큰 나무가 파라솔처럼 꿰져 있었다.

잠깐만요.”

귀해가 시선을 먼저 모았다. 루다는 귀해와 공동으로 술을 사겠으니 드시라고 했다. , 함성이 터져 나왔다. 이번 여행에 비회원으로 참석해서 미안한 마음이 작용했다. 일행과 여행하면서 정이 들었던 탓도 컸다. 여행 내내 일행은 둘에게 자잘한 성의를 베풀어주었다. 일행 중에 배가 두두룩한 남자는 피씨 성을 가졌는데 고량주 여덟 병을 내겠다고 했다. 들리는 말로는 이번 여행을 주관해서 공짜 여행을 하는 일 인이라 한다. 그때 귀해가 미소를 지어 하오곽에게 소주를 따라주었다. 이빨 몇이 치열에서 이탈됐어도 진심으로 기뻐하는 표정이다. 귀해는 각설탕만 한 와인색 치즈를 고기에 얹어 하오곽에게 건넸다. 한국에 언제 나올 거냐고 묻자 하오곽은 무심하다 못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어머니가 한국 이모 댁에 계십니다. 겨울에 여기 아무도 없습니다설레무네, 그때 나갑니다.”

귀해는 하오곽이 하는 말을 듣고 소주를 들이켰다. 귀해는 그와 등짐을 지면서 정이 들었을까. 가죽잠바 나이엔들이 철광석을 실은 트레일러 트럭에 물을 뿌려댔던 휴게소에서였지 싶다. 하오곽은 귀해의 육중한 몸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등짐졌다. 다음은 귀해가 그렇게 했다. 체리를 파는 아낙과 흥정을 했던 순금 여사가 루다에게 좀 주었다. 루다는 체리를 건성으로 씹으며 귀해를 등짐 지는 하오곽의 시선을 따라갔다.(랭보의 권유, 163~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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