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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사상 미디어서평

[안양대신문] 책으로 만나는 세상 '감정과 이성의 저울'-2013 올해의 문제소설

by 푸른사상 2013. 6. 19.



안양대학교에서 '2013 올해의 문제소설'로 독서 토론회를 열었다고 합니다. 그 중 한 학생의 글이 [안얀대 신문]에 실려서 일부분을 발췌해서 올립니다.




감성과 이성의 저울



 


 


   "감정 극복은 역사상 가장 비약적인 발전으로 여겨진다. (……) 이성의 시대가 열림에 따라 우발적 살인과 폭행, 술에 취한 상태에서 행한 성폭행 및 성희롱, 객기로 앞장선 시위와 기물파손 등의 사건이 사라졌고 사랑, 오열, 대화, 만취, 희망 등의 말은 죽은 언어가 되었다."

- 책 본문에서

 

 

 

   

 

 

 

 

 

  감정이 없는 사회는 행복할까? 순간의 감정에 치우친 우발적 범죄가 사라지고 술에 취해 헤어진 남자친구에게 전화하는 일이 없게 된다면, 우리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행복'이라는 감정조차도 사라진 채로 살게 될까?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철학자들은 이성의 필요를 주창했다. 그들의 논리에 따르면 감정이란 통제해야 하는 가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나 감정보다 이성이 옳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예컨대 수업에 늦어 뛰어가는 상황에서 무거운 짐을 진 할머니를 마주쳤다고 하자.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한시라도 빨리 수업에 가는 것이 옳다. 반면에 곤경에 빠진 할머니를 보며 느끼는 연민의 감정을 중요시한다면 이미 늦어비린 수업에 가기보다는 할머니를 돕고 난 후 마음 편히 가는 것이 옳다. 이성과 감정, 어느 것을 선택하든 각자의 몫이겠지만, 과연 이를 저울에 달아 본다면 어떤 것이 중하게 나올까?


「23/멜랑꼴리」는 바로 그 발상에 뿌리를 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화자인 '나'는 이성이 지배하는 미래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연구자이다. 세상은 핵 공황 이후로 획기적으로 변모했고, 사람들은 감정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화자는 세상에서 사라진 '감정' 연구를 위해 핵 공황 이전의 원시 섬을 찾아 길을 나선다. 원시 섬에서 화자는 23이라는 여자를 만나고, 그녀를 통해 '사랑'이라는 감정을 연구하고자 한다. 통제된 감정을 이끌어낼 수 있는 알약을 먹고 그녀와 사랑에 빠지지만, 결국 그녀는 병에 걸려 죽게 된다. 화자는 그녀의 병을 순식간에 치료할 수 있는 알약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연구를 위해, 또 원시 섬의 보존을 위해 그녀를 죽게 내버려둔다. 그러나 그녀의 죽음 이후, 섬을 떠나면서 화자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상비약을 모두 버리고 부끄러움에 휩싸인다.

 

  위의 줄거리에서 알 수 있듯이, 작품 전반에 걸쳐 감정과 이성의 저울이 번갈아가며 기울어진다. 이성의 편에 서 있던 화자가 알약의 힘으로 사랑에 빠지면서 저울은 감정으로 기운다. 하지만 그녀를 살리지 않고 죽게 내버려둔 것은, 사랑의 감정보다는 연구를 마무리 지어야 한다는 이성이 앞섰기 때문일 것이다. 섬을 나오면서 그녀의 이야기를 책으로 펴낼 계획을 세우기까지 할 만큼 이성적이었던 화자는, '부끄러움'을 느끼며 다시 감정의 축으로 기운다. 그가 느낀 '부끄러움'은 곧 사랑하는 여자가 죽어가는 모습을 방관한 자신에 대한, 그 끔찍한 이성에 대한 반성이자 자괴였을 것이다.

 

  이럿듯 이 작품은 이성을 신봉하는 미래 사회의 한 개인이 감정의 본질을 깨닫는 내용으로 귀결된다. 작가는 결론적으로 감정의 손을 든 셈이다. 그러나 작품에서 눈여겨볼 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이성의 시대가 시작되며 일어난 변화 중 가장 긍정적인 것은 대화가 사라진 것"이라는 대목에서 우리는 '대화의 기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화는 감정의 영역일까? 이성적인 대화란 불가능한 것일까? 그리고 이 소설의 제목에는 왜 '멜랑꼴리'가 들어갈까? 단지 화자가 감정이 무엇인가 알게 되었기 때문일까? 멜랑꼴리, 즉 우울증은 감정을 대표하는 용어라 말할 수 있을까?

  「23/멜랑꼴리」는 흥미로운 제목과 더불어 이성의 시대가 열린다는 미래 사회의 설정, '원시 섬'에서 벌어지는 스토리가 잘 짜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꼭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작품이니, 독자 여러분의 마음속에도 감정과 이성의 저울을 달아보시기를 바란다. 다만, 작품을 끝까지 읽고 난다면 "자니?"라는 감정 과잉의 메시지를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것 같기도 하니 주의하시기를. 


-임가연(국문,3) 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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