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문학(시)
우수와 오수 사이
이윤 지음|푸른사상 시선 202|128×205×8mm|136쪽|12,000원
ISBN 979-11-308-2228-0 03810 | 2025.3.18
■ 시집 소개
아름다운 존재들의 화성으로 가득한 시편들
이윤 시인의 시집 『우수와 오수 사이』가 푸른사상 시선 202로 출간되었다. 시인은 신화와 먼 옛날의 역사를 살려내는 것은 물론 은폐된 근대사의 상황들을 이 시집에 생생하게 풀어놓는다. 가까운 일상의 존재들은 시인의 눈길이 닿는 순간, 생동감 있는 빛을 내며 감각적인 언어로 살아난다.
■ 시인 소개
이윤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2011년 시 「내성」으로 『창조문학신문』 신춘문예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무심코 나팔꽃』 『혜윰 가는 길』이 있다. 한국작가회의, 경남작가회의, 밀양문학회, 김해문인협회 회원이다.
■ 목차
제1부
왕후의 서신(書信) / 오토바이와 어둠 사이 / 분홍 집 한 채 / 수로왕릉역에 간다 / 장미꽃 노동 / 홀아비 꽃 / 다시, 구지봉에 서면 / 은빛 강물 / 겹벚꽃 이별 / 모메꽃이 뱅뱅 / 개미 목욕 / 포후투카와 / 블랙 B.L.A.C.K / 귀쑥 꽃
제2부
광대나물꽃 / 한 사랑을 그리는 / 수만 리를 넘어온 로만글라스 / 허왕후길 182 / 알런, 알런 / 위양지 / 삐비꽃이거나 말거나 / 굴참나무 속 여름 / 반디지치와 지선도(地仙挑) / 화포천 이야기 / 기부 / 열두 살 나무꾼, 민호 / 이삭 줍는 그림 / 포엽을 기다리며
제3부
저녁이 그리우면 / 카우리 나무 / 개망초의 노래 / 목화꽃 미소 / 단풍 / 도서관 또, 마스크 / 그 울음의 이유 / 고추잠자리 / 핫립세이지 / 우수와 오수 사이 / 밤의 새 / 어떤 풍경 / 안개 / 하모니카 부는 시장님
제4부
달빛 문자 / 웃음이 나요 / 외로운 산 / 피하 비치에서 / 그리움은 말할 줄 몰라 / 대출확인증 / 보도바위와 칡꽃 / 그 아래 보랏빛 맥문동꽃 피었지 / 그해 봄, 부겐빌레아 / 팔코 레알레 / 금전수 / 신발 / 알바트로스 / 딸기 머그컵과 휴일 아침
작품 해설 : 존재의 경이로움을 찾아서-오민석
■ '시인의 말' 중에서
먼 나라에서 처음 마주친
구르미(긴 흰 구름)와
포후투카와 나무 붉은 꽃처럼
모든 다가옴이
그렇게
경이로웠으면,
떨렸으면,
또
그리웠으면
■ 추천의 글
이윤 시인은 큰 나무와 작은 나무 사이에 자리 잡은 영산홍 집 한 채를 햇살처럼 발견한다. 사월과 오월 사이에 핀 장미꽃 같은 그리움으로 이별과 기다림 사이에 서서 한 사랑을 그린다. 이쪽 풍경과 저쪽 풍경 사이에 두 개의 풍경이 담기는 것을 알기에 끊어질 듯한 현실과 멀어져가는 이상 사이를 어린 왕자처럼 걷는다. 하늘과 바다 사이에 한 이불을 덮은 시간과, 길과 길 사이와 물과 물 사이와 우수와 오수 사이에 안팎 없이 존재하는 시간을 따른다. “땅을 걷는 길은 하늘을 거쳐야 하고/하늘로 가는 길은 땅을 거쳐야 한다”(「수로왕릉역에 간다」)라는 인식으로 사이의 시학을 추구하는 것이다. ― 맹문재(시인·안양대 교수)
■ 작품 세계
이윤 시인은 먼 곳에서 시를 찾지 않는다. 시는 그녀의 가장 가까운 일상에서 그녀에게로 온다. 처음 시인에게 올 때, 일상의 사물들은 죽은 무덤처럼, 마른 미라처럼, 정동(affect)이 삭제된 상태로 온다. 그러나 시인의 눈길이 닿는 순간, 얼어붙은 사물 안에 은폐되어 있던 존재들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겨우내 얼음 속에 유폐되었던 물고기가 봄이 와 얼음이 녹음과 동시에 서서히 움직이듯이, 시인의 언어 안에서 정지 상태의 객체들은 본래적 움직임을 회복하기 시작한다. 시인은 얼어붙은 신화를 살려내고, 은폐된 역사를 소환하며, 버려진 사물을 초대하고, 자청하여 객체에 압도당하면서, 본래적 존재의 궁극적인 빛을 살려낸다. 이 시집은 비본래적 관습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시인이 구해낸 아름다운 존재들의 화성(和聲)으로 가득하다.
― 오민석(문학평론가·단국대 명예교수) 해설 중에서
■ 시집 속으로
수로왕릉역에 간다
자줏빛 햇살이 뭉쳐진 곳으로
김씨(金氏)가 내린다
신체의 비밀은 알 속에 가득 차 있고
있다고 치면 들을 수 있다
경전철역, 번호 17번
경상남도 김해시 김해대로 2181
안전문을 벗어나면
동쪽 아래로 해반천이
하천 따라 경전철이 지나간다
햇빛에 부서지는 찬란한 순간이 바로 여기였나
역사(驛舍) 동쪽에 바로 내 무덤이 있었네!
김씨가 자주 걷는 해반천에서
자줏빛 댕기 하나를 끌어 올렸다는데
내가 바라보는 것들에 둘러싸여
속살이 굳은살이 될 때까지 김씨는 걷고 있다
뒤뚱, 갸우뚱 한참 동안 뒤뚱 갸우뚱
왼쪽으로 기울다가 좌로 꺾이고 우로 쓰러지고
세상의 모든 왕과 왕비는
최고로 피고 졌다는데
땅을 걷는 길은 하늘을 거쳐야 하고
하늘로 가는 길은 땅을 거쳐야 한다
2000년을 지나 밀서를 전하는
김씨, 오늘도 수로왕릉역에 간다
포엽을 기다리며
동네 목욕탕집 앞에는 진홍빛 포엽으로 감싼 흰 별이 피었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습성이 또 손가락 셔터를 누른다. 이러면서 희열을 느끼는 그림자 하나, 자꾸 커지며 붉은 장막을 두르는 정체 모를 그림자 둘
저 포엽은 유혹, 마주칠 때마다 가슴 언저리가 아프다 아프다고 한다. 콩콩 고동까지 치고 있다. 흘러간 시간과 날들이 쌓여 화산구를 만들었다. 쌓일수록 멍울은 커졌다. 몇 척의 키가 오르고 몇 폭의 살집이 불어나고
어제는 인터넷 쿠팡에서 팔천 원짜리 화분 모종을 들였다. 플라스틱 소형 화분에 삐쩍 마른 줄기 하나와 몇 개의 짧은 가지 몇 장의 잎만 달랑, 화려한 사진과 달리 포엽 한 장 붙어 있지 않은 부겐빌레아, 그토록 갖고 싶었던 붉은 포엽과 흰 별꽃은 또 기다림이 되고 적막으로 남고
남태평양 아이들이 사는 나라에서 마주친 아주 입체적인 부겐빌레아 포엽이 그림자 둘을 다시 붙잡고 말았다. 집 벽에서 정원에서 유치원 마당에서, 알고 보면 흰 꽃보다 더 꽃 같은 부겐빌레아 포엽이 남긴 그림자 셋
우수와 오수 사이
길과 길 물과 물에는
땅으로 내려가는 물길이 있어
지상은 조용히 흘러 사는 거지
오수와 우수 사이에 서서
우수의 구멍을 보는 아이
오수는 구멍이 없어 아빠,
빤한 이치이지만 차이를 두고 보면
참 신기한 일인 것 같아
집으로 오는 길에
여러 개의 맨홀 뚜껑이 있는데,
어떤 것은 구멍이 있고
어떤 것은 구멍이 없었어 아빠,
입씨름하는 우수와 오수
돌이켜보면 어린 왕자가 생각나
처음으로 발견한 맨홀 위의 구멍들
까고 속을 보이면 별것 아닌 주변 풍경들을
지나가는 아이가 툭툭 건드리는데
아는 입은 쉽게 말 못 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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