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문학(시)
꽃에 쏘였다
이혜순 지음|푸른사상 시선 201|128×205×8mm|144쪽|12,000원
ISBN 979-11-308-2225-9 03810 | 2025.2.28
■ 시집 소개
삶을 생생하면서도 따뜻하게 복원하는 시의 사원
이혜순 시인의 시집 『꽃에 쏘였다』가 푸른사상 시선 201로 출간되었다. 세상의 모든 존재를 향해 온기 어린 시선을 던지는 시인은 일상 속 스쳐 지나가는 것들을 생생하면서도 따뜻하게 복원한다. 사람들이 어우러져 가는 삶의 터전이자 공동체 안에 세워진 마을의 사원 같은 시집이다.
■ 시인 소개
이혜순
충남 서산에서 태어났다. 2010년 『시안』 신인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곤줄박이 수사일지』가 있다.
■ 목차
제1부
씀바귀꽃 / 사월 / 붕어빵 가시 / 지루한 게임 / 쓸쓸한 채널 / 속도의 뒷면 / 바람이 세운 집 / 숨 참기 놀이 / 줄장미 담장 / 휘파람새 / 김옥주 기타 교실 / 두꺼비 / 계단 / 장마 / 먼 길 / 우편 행낭 / 울음의 언어 / 나사못 알약
제2부
너무 큰 행운 / 젖는다는 것 / 쉬는 날 / 진화하는 밤 / 잡초가 자라는 이유 / 따끔한 꽃 / 단순한 화법 / 구름의 지층 / 속눈썹 겹꽃 / 폐사지 / 목격자 / 꼬막 / 지도 / 밤을 수배하다 / 유령 / 건조주의보 / 싱싱한 죽음 / 다랑어
제3부
도둑게 / 기타, 그리고 / 덫 / 뒤집히는 봄 / 완벽한 비행 / 지혜의 숲 / 바람의 건축법 / 봄날의 삽화 / 소파 / 전복 / 이별 풍경 / 꼬리표 / 고달사지 / 바위의 이력 / 빈집
작품 해설 : 사람의 마을에 짓는 시의 사원(寺院) - 김윤정
■ '시인의 말' 중에서
천성이 바람둥이였는지 모른다
그래서인지 늘 누군가를 찾고 그리워한다
방금 전 구름 위에 얹혀 있던 마음이
어느새 분꽃 위로 내려앉는다
시의 마음을 얻기에는
아직도 아득하다
■ 추천의 글
이혜순 시인은 지루하고 썰렁한 바람의 공사장을 단단하게 채우는 해당화나 통보리사초나 갯메꽃을 눈부신 언어처럼 바라본다. 아까시나무 꽃비가 햇살처럼 날리는 날에는 인적 드문 동네를 돌며 주름 깊은 얼굴들의 안부를 살핀다. 쥐똥나무꽃이 내는 향기를 맡으면서 웃음과 아픔을 함께 나누었던 인연들을 떠올린다. 쉽게 뽑히지 않은 긴 울음의 시간을 버텨온 꽃 앞에서 누구나 견뎌야 할 시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울어서 꽃 피우는 일이라면 기꺼이 봄이 되겠다”(「속눈썹 겹꽃」)라고 여기고 바람의 세기와 방향을 읽으면서 꽃의 자리를 찾아간다. 한 천년쯤 견디어낼 수 있는 바위 같은 꽃의 집 한 채 지으려고 긴 울음의 문턱을 넘는다.
― 맹문재(시인·안양대 교수)
■ 작품 세계
이혜순 시인의 시가 놓여 있는 지점은 생활 한가운데이다. 시인은 일상 속에서 흔히 접하므로 쉽게 지나치게 되는 사소할 수 있는 사건들에 시선을 멈추고는, 그것에 섬세한 관찰력과 독특한 시각을 투영시킨다. 시인의 시에는 도로를 달리는 자전거가 있고(「속도의 뒷면」), 붕어빵을 나누어 먹는 노인과 아이가 있으며(「붕어빵 가시」) 모란(「사월」)과 장미(「줄장미 담장」), 새(「휘파람새」)와 두꺼비(「두꺼비」), 다랑어(「다랑어」), 게(「도둑게」), 전복(「전복」) 등 생활 속 편린들이 담겨 있다. 이들 소재들은 시인의 시가 구체적 생의 체험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처럼 일상을 살아가면서 시인은 그 안에 스며 있는 철학을 놓치지 않는다. 그는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순간, 스치는 사물, 사소한 대화 속에서 깊이 있는 사유를 끌어낸다. 세상에 흩어져 있는 모든 존재들에게 말을 걸면서 시인은 그것들을 한 편 한 편의 시로 아름답게 승화시킨다.
시들에 투사되어 있는 시인의 생의 철학은 단적으로 말해 인간다움의 회복을 향해 있다. 시인이 일상의 체험들에서 주목하는 것은 존재들이 맺어가는 관계성이다. 그는 생활 속에서의 사태들 속에서 연민과 사랑, 공감과 위안, 인내와 포용을 읽어낸다. 그가 바라보는 존재들에게서 그는 그들 간의 끈끈한 얽힘을 포착한다. 이러한 시적 양상은 시인이 견지하는 철학이 긍정적 가치를 바탕으로 형성되어 있음을 말해준다. 세상의 모든 존재들을 향해 온기 어린 시선을 던지는 시인은 그들이 안고 있는 아픔과 고통을 미적 형태로 승화시키고자 한다. 시인의 시에는 이러한 시적 과정이 매우 안정적으로 구조화되어 있는바, 이것이야말로 시인이 추구하는 삶의 아름다움이자 시적 미학이다.
― 김윤정(문학평론가) 해설 중에서
■ 시집 속으로
따끔한 꽃
꽃에 쏘였다, 아니
꽃술에 쏘였다
꽃들이 부푸는 방식이란 이런 것이구나
빨갛게 부푸는 이마
얼떨결에 당한 꽃의 무차별 공격,
앙심인지 보복인지 매섭기만 하다
무심히 걷던 오솔길
손으로 툭 건드린 나뭇가지가
붕붕 날아올랐다
벌들은 꽃에서 쫓겨난 꽃술들일까
집을 지을 때 꽃송이 모양으로 짓고 있다
꽃의 씨앗들도 마지막에 가서는
날개가 생기거나 또르르 굴러가는
바람을 얻게 될 것이지만
무심코 건드린 꽃들은 끝까지 따라온다는 속설
결코 빈말이 아니라는 듯
숨이 턱밑에 닿도록
도망을 쳐도 포기할 줄 모른다
꽃이 숨겨놓은 가시처럼
벌들의 침 끝엔 불이 들어 있다
세상에서 가장 따끔한 꽃
숨겨놓은 가시에 찔리지 않으려면
늘 손끝을 조심해야 한다
속눈썹 겹꽃
가녀린 어깨를 흔들고 지나가는 슬픔은 뿌리가 깊다. 시간이 흘러도 쉽게 뽑히지 않는다. 한바탕 울음을 쏟아내고 난 뒤에도 여전히 그렁그렁한 눈물 끝에 가까운 정원이 있다
촉촉이 젖은 속눈썹이 꽃처럼 피었다.
울어서 꽃 피우는 일이라면 기꺼이 봄이 되겠다. 눈앞의 슬픔은 서둘러 손등으로 마무리되곤 하지만 속눈썹은 겹꽃의 꽃말로 흐느낀다.
꽃은 스스로 넘치고 스스로 눈썹을 떨구는 식물, 마음이 데면데면할 때면 꽃 없는 계절을 지나야 한다. 눈물의 꽃말은 상황에 따라 바뀌지만 아무리 사소한 꽃도 반드시 이유를 갖고 핀다.
일 년에 한 번 짧게 울고 그치는 꽃들,
그칠 것 같지 않던 흐느낌도 서서히 잦아든다. 곧 속눈썹에 맺혔던 꽃들도 생기를 잃고 사라질 것이다.
눈물은 꽃보다 더 짧은 휘발성이다.
바위의 이력
등산로 한켠 커다란 바위 하나
거북을 닮았다
오랜 시간 바위는 제 형상을 바꾸고 버리면서
여기까지 버텨왔을 것이다
모습이 바뀔 때마다 사람의 주변,
그 닮은꼴로 이름을 얻고
또 벗는다
어떻게 이곳까지 굴러왔는지
어쩌다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되었는지
바위의 이력을 묻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물렁물렁한 생부터 딱딱한 생까지
몇 줄의 짧은 말로 담아낼 수 있는
생은 어디에도 없다
행간과 행간 사이사이 남아 있는
침묵은 너무 견고해서
틈이 없는 물질로 불린다
길 끝에 다다른 바위의 일생이란
결국 반짝이는 모래일 뿐이다
오르막과 내리막,
잠시 쉼표를 찍었던 손자국들이
등허리에 반질거린다
가녀린 목 부분을 지나가는 깊은 균열
바위는 지금 또 다른 생 바꿈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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