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문학(시)
경주마였다
이상백 지음|푸른시인선 29|130×215×8mm|128쪽|14,000원
ISBN 979-11-308-2181-8 03810 | 2024.10.23.
■ 시집 소개
아름다운 조화를 향한 거대한 물결
이상백 시인의 시집 『경주마였다』가 출간되었다. 시인은 인생의 고비마다 삶의 지혜를 주며 서정적 자아의 근간이 되어준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과 사랑을 담백한 어조로 노래한다. 경주마처럼 올곧이 내달려온 시인은 모두가 공존하는 사회, 아름다운 조화가 구현되는 사회를 꿈꾸고 있다.
■ 시인 소개
이상백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가톨릭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83년 『시문학』에서 김남조 시인 추천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물의 여행』 『나의 어린 왕자』 『바람풀이』 『슬픔, 그것은 너를 만나기 전의 일이었다』 『미술시간』 『밥풀』 등이 있다.
■ 목차
제1부
월인천강지곡 / 바람 바람 바람 / 꽹과리 / 꽃밭 / 신의 한 수 / 접힘 / 먹물 / 공감 / 문패 / 생의 한가운데 / 별이 빛나는 밤 / 그림자 동행 / 가족의 망 / 날자 날자 날자 / 기울기
제2부
경주마였다 / 흙수저 / 선물 / 한여름 밤의 꿈 / 부메랑 / 담쟁이 / 깃발 / 구들 /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 나의 산티아고 / 콜라비 / 부칠 수 없는 편지 / 갱년기 / 허세 / 천칭 저울
제3부
강물의 두께 / 궁리 / 운문사에서 / 나마스테 간디 / 기억의 밑줄 / 명의 / 동행 / 봄이 오는 소리 / 경계를 지우다 / 목격자 / 독도 / 고추 먹고 맴·맴·맴 / 첫사랑 / 코로나 19 / 신을 만나러 가는 중이다
제4부
채석강에서 / 세한도 / 항해일지 / 숫돌 / 병상일지 / 잔설 / 관계 / 가스라이팅 1 / 가스라이팅 2 / 진주조개 / 눈사람 / 나의 무기 / 잘 가라, 눈물아 / 집중 / 통장 잔고
작품 해설 : 경주마적 삶이 모색한 구경적 이상으로서의 ‘꽃밭’ _ 송기한
■ '시인의 말' 중에서
힘 빼는 데 오래 걸렸습니다.
■ 추천의 글
이상백은 탈서정시의 한계를 아는 탁월한 중진 시인이다. 모더니티의 기세에 사윌지도 모를 서정의 온기를 지켜낼 현저한 주자이기를 자처한다. 그는 그의 개인사에서 마주쳤던 아픈 결별과 결핍의 모멘텀까지도 보편적 만남과 치유의 계기로 변용시킨다. 이상백 시인다운 ‘관계 미학’의 아름다운 개가다. 그는 그리움의 시인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밀물지는 시간의 질주와 그 파동들을 좋이 눅이고야 마는 것은 월인천강의 달로 표징되는 어머니, 그 은은한 내리사랑의 결곡한 질서다. 그의 시는 천의무봉의 견실한 짜임새보다 가령, 꽹과리와 먹물의 가붓한 상징으로 하여 친근감을 더한다. 그의 시적 자아가 ‘마지막 주자’의 막중한 무게를 감당하며 끝내 환호성에 파동치는 깃발이요 불꽃이기를 기대한다.
— 김봉군(문학평론가·가톨릭대학교 명예교수)
『경주마였다』라는 표제시가 암시하듯이 이 시집에는 경주마처럼 외곬으로 파고들어 무작정 앞으로 내달려야만 하는 인간의 실존적 운명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담겨 있다. 우울한 현실에 대한 도전의식 대신 순응과 체념의 감정이 자리 잡는 것은 일상적 생존에 대한 압박감 때문이다. 이 압박감이 개인적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보편적 진실의 모습을 띨 수 있는 것은 현실과 세계의 모순과 부조리를 휴머니즘의 시선으로 감싸 안기 때문이다. 이 시집에 수록된 시들은 대상에 대한 관찰이 구체적이고 진지하다. 일견 무덤덤해 보이기도 하고 객관적이고 냉정해 보이기도 하는 시인의 시선은 대상에 대한 사랑과 포용의 자세로 인하여 문학적 깊이와 정서적 감동을 지닌다. 일상적이고 평범한 소재에서 정서적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힘을 파악하는 일은 이 시집을 읽는 또 다른 즐거움이기도 하다.
— 조창환(시인·아주대학교 명예교수)
■ 작품 세계
이상백 시인이 시집 『밥풀』(2015) 이후 9년 만에 『경주마였다』를 펴낸다. 시집과 시집 사이에 놓인 간극이 꽤 오래된 편인데, 이런 시간의 터울은 아마도 갈고닦아야 할 서정의 솜씨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는 증표일 것이다. 게다가 여기에는 시인의 꼼꼼한 성격이 반영된 측면도 있었을 것으로 이해된다. 이전의 시집 속에 있는 시편들도 그러하지만 이번 시집에서 수록된 시편들 역시 시인의 그러한 성격이 촘촘히 박혀 있는 듯 보인다. 정제된 언어와 깔끔한 정서의 표백이야말로 시인의 그러한 생리적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는 까닭이다.
밥풀에서와 마찬가지로 시인의 서정의 샘은 어머니이다. 시인에게 있어서 서정시를 만들어내는 근원에는 늘 어머니가 자리하고 있다. 이 시집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작품이 어머니를 소재로 한 것이라는 점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중략)
존재들이 하나의 꽃으로 된다는 것은 하나의 공동체가 된다는 뜻이다. 시인은 지금껏 자신을 감추면서 타자와 하나 되는 길을 모색해왔다. 그러한 모색 속에서 관계의 의미를 밝혀내기도 했다. 그런 다음 이 지점에서 공동체의 이상이 무엇인지 뚜렷하게 이해해왔다. 「꽃밭」은 그러한 시인의 의지가 만들어낸 구경적 이상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 공동체라는 하나의 지점에 이르기 위해서는 각각의 개별성이나 고유성은 상실되어야 한다.
시인은 그러한 개성을 꽃으로 대치시키면서 인간이 갖고 있는 개별성이랄까 고유성을 사상시켜버렸다. 꽃이라는 하나의 단일체를 만들어내면서 개별적 특이성을 은폐시킨 것이다. 그 결과 시인이 만들어낸 이상적 모델이랄까 유토피아가 ‘꽃밭’의 세계이다. ‘꽃밭’은 여러 이질적인 요인들을 하나로 만들어내는 통합의 장소라는 점에서, 각각의 개별성이나 고유성이 사라지는 지점에서 만들어진 통일성이라는 점에서 시인이 추구해온 ‘관계’의 정점에 놓이는 공간이다. ‘경주마’처럼 달려온 시인의 끊임없는 서정적 노력이 이 ‘꽃밭’의 발견에 이르렀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번 시집의 구경적 의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송기한(대전대 국어국문창작학과 교수) 해설 중에서
■ 시집 속으로
월인천강지곡
죽으면 모두 별이 된다는데
엄마는 달이 되었다
낮달로 떠서
휘청거리던 내가 머리 들게 하고
어둑어둑해지는 날에는
보름달로 온다
그날은 천 개의 강에 그 빛을 나누지 않고
오로지 내 강에만 떠서
앞길을 보여준다
그래도 헤쳐나가지 못할까 봐
내 머리맡까지 따라와
홑이불이 된다
경주마였다
박하사탕을 골랐다
목구멍처럼
앞길이 그렇게 환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단번에 깨물어 끝낼 일도 아니었다
혓바닥을 돌려가며
오랫동안 녹여 먹으려고
딱! 소리 나게
직장 한 번 바꾸지 못했다
녹을 대로 녹아
칼처럼 얇아진 이력을
입천장에 붙여놓고
아슬아슬하게 침만 삼켰다
다들 그랬다고 한다
천칭 저울
간간이
기쁨으로 날아오르다가
기척도 없이 들이닥쳐 발목을 잡는
슬픔이
새까만 세상에
나를 던져버릴 때
저울에
이 까만 슬픔 하나만 올려놓아야 하는데
어제까지 슬픔에
다시 만날 슬픔까지
올려놓아
버팀목이 휘청거린다
기쁨과 슬픔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는
그 지경을 보려면
내 심장이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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