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문학(시)
버려진 말들 사이를 걷다
봉윤숙 지음|푸른사상 시선 191|128×205×9mm|152쪽|12,000원
ISBN 979-11-308-2154-2 03810 | 2024.6.30
■ 시집 소개
우리네 삶의 현장을 동행하며 부르는 노래
봉윤숙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버려진 말들 사이를 걷다』가 <푸른사상 시선 191>로 출간되었다. 시인은 버려진 말들에 대한 관심을 거두거나 회피하지 않고 동행하며 인간 가치를 추구한다. 시인의 시어들은 창작 과정에서 힘을 발휘해 다양한 상징과 의미를 창조한다. 시 세계의 토대를 이루면서 사회학적 상상력으로 확장하는 깊은 울림을 준다.
■ 시인 소개
봉윤숙
2014년 『농민신문』, 2015년 『강원일보』 신춘문예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근로자문화예술제(은상), 동서커피문학상(은상), 신라문학대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꽃 앞의 계절』, 동시집으로 『호라이의 탄생』이 있다. 현재 한국작가회의, 민족문학연구회 회원이다.
■ 목차
제1부 버려진 말들 사이를 걷다
전원주택 / 쓴다, 쓸다 / 버려진 말들 사이를 걷다 / 녹 / 그렇게 가끔은 / 양말의 방정식 / 편(片) / 뭉크, 뭉클 / 주머니 / 벽과 담의 차이 / 로제트 / 노래의 표정 / 도서관을 걷다 / 소금쟁이 / 물 한 바가지
제2부 서식지
서식지 / 감염 / 구름 병동 / 보조 침대 / 늑대 / 푸른 손 / 꽃 핀 아이 / 욕망하는 도시 / 꼬깃꼬깃 / 비앙비앙 / 망고스틴 / 봄까치꽃 / 무릉도원 / 물병염좌
제3부 빗방울로 지은 집
크루아상 / 빗방울로 지은 집 / 일요일 / 연등 / 넝쿨 / 시냇물에게 연차휴가를 주다 / 앞발 / 모래로 만든 집 / 나무 남자 / 바람 텃새 / 젠가 게임 / 꽃신 / 한옥 마을 / 폭설
제4부 골목, 골목들
지네 / 졸참나무 1호봉 투쟁기 / 잠들지 못하는 소녀 / 골목, 골목들 / 수르 수르 만수르 / 굴뚝 / 화병 / 구멍을 잡아채다 / 역사 / 나에게 돈은 목숨이다 / 죽음의 골목 / 홀로 / 다윤이의 별
작품 해설 : 에네르게이아의 시어들- 맹문재
■ '시인의 말' 중에서
자격을 뛰어넘는 것들이
지문으로 남아 있다
어떤 날은 바람의 통증으로
어떤 날은 시계의 통증으로
들여다보고픈 그곳
■ 작품 세계
봉윤숙 시인은 에네르게이아(energeia)의 시어들을 통해 인간 가치를 추구하는 시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시인은 인유나 반어 등의 비유와 상상력을 통해 작품의 구체성과 아울러 환기력을 획득한다. 창조적인 시어의 변주로써 이 세계의 부분과 전체를 연결해 세계 속에 존재하는 그 자신은 물론 공동체의 가치를 심화시키는 것이다. 작품 속의 시어들은 죽어 있는 기계처럼 정지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부단하게 움직이며 그 역할을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활동을 두 가지로 분류했다. 하나는 교본과 경험을 통해 습득된 기술을 토대로 동일한 종류의 대상들을 만들어내는 활동이다. 어떤 것을 만들어내는 생산적인 행위로 디나미스(dynamis)에 해당된다. 또 다른 활동은 이미 주어져 있는 기술을 토대로 하지 않는 창조적인 것이다. 디나미스보다 선행하는 행위로 에네르게이아에 해당된다. 디나미스는 힘뿐만 아니라 잠재성을 의미하므로 에네르게이아와 대립한다. 잠재성과 실재성은 곧 존재론적 가능성과 실제적인 작용인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에네르게이아를 디나미스보다, 즉 활동을 가능성보다 중요하게 인식했다. 가능성의 실현은 언제나 활동적인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략)
봉윤숙 시인은 유한한 시어들을 무한하게 사용하는 활동을 보이고 있다. 시어에 대한 다양한 상징과 의미화로써 새로운 시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시인의 시어들은 창작 과정에서 힘을 발휘한다. 곧 에네르게이아의 활동을 추구하는 것이다. 시인의 시어들은 제한되거나 고정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움직여 시 세계의 토대를 이루면서 사회학적 상상력으로 확장한다. 이와 같은 면에서 봉윤숙 시인의 시어들은 활동성과 동의어라고 할 수 있다.
― 맹문재(문학평론가·안양대 교수) 해설 중에서
■ 시집 속으로
버려진 말들 사이를 걷다
모두들 말의 착지점에서
딱 한 발짝 물러서 있다
아무리 시위를 당겼다 놓아도
딱, 그쯤에서 떨어지고야 마는
한 발짝 바로 앞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후렴을 시작하려는 찰나
간헐적으로 비상구가 보이지만
부여잡고 놓아주지 않는 역설
그 사이를 지친 저녁들의 퇴근과
앞다투는 고층의 창문들과
자신들의 가장 연약한 취약점으로
밥을 벌러 가거나
밥을 먹으러 간다
햇살과 기진맥진해진 바람을 따라
숨을 헐떡이는 와이퍼가
허송세월을 걷어내고 있다
어쩌면 저렇게도
비겁하거나 난처한 혹은 무신경한
그 경계를 절묘하게 비껴서 있을까
간신히 앞가림을 피한 사람들
돌아보면 아득한 낭떠러지가
각자의 뒤쪽에 있다
서식지
서식지라는 말을 생각할 때마다 빌어먹을, 빌어먹고 살고 있는 직장이 떠오른다
서식지 안에는 황금 부서와 한직이 있다 엽록소의 구성, 인사부 뿌리는 지하 3층에 있다 악역만 도맡아 하는 팀장도 있고 밥 대신 욕 먹으며 일하는 사원도 있지만 세상이 세상인지라 붉은 머리띠를 두르기도 쉽지 않다
가시에 찔린 곳으로 들어찬 찬바람 속엔 상처가 섞여 있고 그 상처를 빼는 것 또한 가시들 덕이지만 그 가시들의 집합을 찔러 와해시키는 보이지 않는 가시들이 또 있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옴니버스식 구성
서식지에도 계층이 있다 정년의 계층에서 떨어지면 다시 낮은 계층이 된다 한 가족이라 얘기하지만 개똥 같은 얘기다 여러분의 뜻을 모아 내 맘대로 한다는 뜻이다
하나의 서식지가 생긴다는 것은, 눈에 보이진 않지만 무형의 구조물들이다
골목, 골목들
광장에서 흩어진 사람들이
뿔뿔이 골목으로 숨어들었던 때처럼
장미 넝쿨 밑에서
따가운 가시처럼 웅크리고 있던
그때처럼, 다시
광장에서 흩어진 사람들이
근처 골목으로 삼삼오오 뭉친다
골목은 혁명을 숨겨주었고
그로부터 다시 늙은 미완의 혁명들을
불러들이고 술잔을 권한다
골목들은 늘 저변의 힘으로
장미를 피워올렸고
그 왁자한 뒤끝으로 아직도 곳곳에 건재하다
꺾어들고 다시 꺾어 내달렸던
그 모퉁이들을 회상하면
최루탄이니 물대포에 맞닿은 간격으로
스크럼을 짜고 막아서던
그 든든한 뒷배 같았던 골목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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