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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신간도서

조혜영 시집, <그 길이 불편하다>

by 푸른사상 2024. 5. 20.

 

분류--문학()

 

그 길이 불편하다

 

조혜영 지음|푸른사상 시선 189|128×205×8mm|136쪽|12,000원

ISBN 979-11-308-2145-0 03810 | 2024.5.20

 

 

■ 시집 소개

 

우리 시대 노동해방을 향한 희망의 노래

 

조혜영 시인의 세 번째 시집 『그 길이 불편하다』가 <푸른사상 시선 189>로 출간되었다. 시인은 자신의 급식 일을 토대로 노동 현장을 구체적으로 그리면서 현시대 노동의 의미와 가치를 모색하고 있다. 노동해방을 향한 시인의 노래는 낙관적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희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 시인 소개

 

조혜영

1965년 충남 태안에서 태어났고, 제9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다. 인천노동자문학회에서 활동했으며, 현재 인천작가회의 회원이다. 시집으로 『검지에 핀 꽃』 『봄에 덧나다』가 있다.

 

 

■ 목차

 

제1부

급식 일지―어묵국 / 급식 일지―산재 판정 / 급식 일지―좋다 / 급식 일지―급식 노동자 / 급식 일지―총각김치 / 급식 일지―10분 잠 / 급식 일지―진상 / 급식 일지―배달 청년 / 급식 일지―직업병 / 급식 일지―신종 직업병 / 급식 일지―야채 절단기 / 급식 일지―이름 / 급식 일지―배치 기준 / 급식 일지―폐암 / 급식 일지―주간 식단표 / 급식 일지―첫눈 / 급식 일지―살얼음판 / 급식 일지―병문안 / 급식 일지―화상

 

제2부

베개 / 아버지의 노래 / 다시 제삿날 / 한술 / 아버지의 육이오 / 가장 무서운 말 / 너에게서 배운다―출근길 / 개발 예정 지구―무당 / 개발 예정 지구―빈집 / 개발 예정 지구―개똥 / 방생 / 두부

 

제3부

광장 / 신발을 찾습니다 / 미투 / 하늘 감옥 / 전염병 시대 / 무어라 불러야 할까 / 빵 / 열사의 동상 앞에서는 / 그 길이 불편하다 / 엄마 난 살고 싶어요 / 애 / 세월호 10년 / 작은 저항―아사히글라스 농성장에서

 

제4부

길 / 사원증 1 / 사원증 2 / 자벌레―지엠 비정규직 노동자 고공 농성장에서 / 송진 / 칡꽃 / 천막 농성장 / 밥 / 닭발 / 보신탕집 / 누가 나에게 노동해방이 무엇이냐고 묻더군 / 누가 나에게 다시 노동해방이 무엇이냐고 묻더군 / 감정에 치우치자

 

추천의 글 : 누군가는 목소리를 내야 하기에 _ 김사이

작품 해설 : 부끄러움이 이끄는 노동해방의 가능성 _ 진기환

 

 

■ '시인의 말' 중에서

 

내가 거리에서 광장에서 함께할 때는 사람도 깃발도 희망이었다.

지금은 그리움과 부끄러움이 동시에 닥친다.

내가 서 있는 곳과 가야 할 길이 여전히 혼란스럽고 때론 버겁다.

따지고 보면 자주 혼란스럽고 버거웠다.

웃으면서 흘리는 눈물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은 세월이 흘렀다

슬픔 속에서 잔잔한 미소를 짓는 사람들을 보듬고 한 시절 가고 싶다.

내 안 깊은 곳에서 간절함과 여유를 끄집어내는 것이 작은 희망이다.

그날을 기약하며 살 수 있다면 그보다 벅찬 생이 어디 있으랴!

 

 

■ 추천의 글

  

조혜영의 시집은 세상을 축소시켜놓은 삶의 현장이다. 현장은 구호나 선동이 아니다. 기억이다. 그의 시는 동시대를 살아가지만 아무나 가지 않는 결이 다른 현장이다. 현장에는 ‘청소 노동자’ ‘배달 노동자’ ‘멈추지 않은 공장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새벽을 가르는 사이렌’ ‘재개발을 앞두고 철거된 집’ ‘아버지의 노래’가 살아 숨 쉰다. 시는 그들을 불러내어 위로한다. 기교도 수사도 없다. 감정의 과잉 없이 투박한 묘사가 더 아프게 온다.

대통령을 탄핵시킨 민주주의 국가에서 노동자의 삶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무기고인 급식실’에서 급식 노동 30년째. 아줌마, 이모님, 어머니로 불리는 분분한 호칭. 급식 노동자의 정당한 이름 ‘조리 실무사’를 얻고자 30년을 싸우는 동안 산재보험도 안 되는 수술이 수차례. “노동의 가치를 생각한다는 건/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일”(「급식 노동자」). ‘산재 판정을 받기 위해 근로복지공단과 대결한 시간이 30년 노동의 시간보다 길고 아팠다.’ 밥하는 노동자를 하대하는 사회의 인식. 견뎌야 하는 건 모두 개인의 몫이었다. 알은체했지만 몰랐던 급식 노동환경과 급식 노동자의 실태가 그려졌다. 「급식 일지」 연작은 치열한 일상에 익살이 고루 스며들어 울림이 아주 크다.

― 김사이(시인)

 

 

■ 작품 세계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고백하자면, 내게 노동해방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인문학적 개념 중 하나일 뿐이었지, 내 삶의 절실한 문제였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주변에 있는 대부분의 것들이 노동과 무관한 것이 없고,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글쓰기 또한 노동일진대, 왜 나는 노동해방을 내 삶의 문제로 생각했던 적이 없었을까.

비겁한 변명을 해보자면, 어쩌면 이는 내 개인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1990년대를 거치며 우리 사회의 산업구조는 짧은 시간 동안 급격히 변화되었고, 그 과정에서 사람들의 소득 수준은 몰라볼 정도로 향상되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됐을 무렵, 자본주의는 사람들의 삶을 먹고사는 일 너머로 계속 유혹했다. 자신 안의 욕망에 더욱 솔직해지라는 달콤한 유혹. 사람들은 점점 그 유혹에 빠져들었다. 노동해방을 꿈꾸기보단 신분 상승을 꿈꿨으며, 노동의 가치보다는, 더 높은 효율과 더 많은 임금을 숭상했다. 물론 우리 사회의 모든 사람이 이러한 유혹에 넘어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다수는 여기에 넘어갔다. 사회의 절대다수가 욕망의 세계에 진입한 이상, 변혁의 중심축은 더 이상 노동해방이 아니었으며, “붉은 깃발은 다 어디”(「전염병 시대」)론가 사라졌다. 깃발들이 점점 사라져가는 동안 우리는 IMF 사태를 겪었으며, 노동에 대한 인식과 노동의 가치는 달라졌다. 나는 세상이 점점 달라질 즈음에 태어나 과거의 유물을 바라보듯 노동과 노동해방에 대해 배웠다. 그러니 노동해방은 내게 언제나 과거의 것, 삶의 뒷전에 있는 것일 수밖에 없었다.

변명을 다소 길게 늘어놓은 이유는, 내 변명과 조혜영의 시가 맞닿는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조혜영은 노동해방에 대해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을, 노동해방과 노동의 가치가 과거와는 달라졌음을 알고 있다. 그래서 조혜영은 묻는다. 그것이 달라졌다면, 지금 시대의 노동과 노동해방은 어떠해야 하는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그것을 찾기 위해 조혜영은 자신이 해왔던 노동운동에 대해 회상한다. 그러나 그는 결코 그것을 노스텔지어화하지 않는다. 다만 그 과거를 자신의 현재에, 더 나아가 우리 사회에 어떻게 위치시킬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며 이렇게 묻는다.

― 진기환(문학평론가) 해설 중에서

 

 

■ 시집 속으로

 

급식 일지-급식 노동자

 

요령이 없으면 가당치 않은 일이지

힘으로만 할 수 없는 중노동이지

눈치가 없으면 버틸 수 없지

눈치를 터득하기엔 여유가 없지

노동의 가치를 생각한다는 건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일이지

 

어떤 이는 하루 이틀 일하다 그만두고

어떤 이는 일주일 버티다 고참과 싸우고 그만두고

어떤 이는 모질게 3개월 버티다 사라지기도 하는

학교 급식실

 

번개같이 빠르고 파도처럼 드세다

머슴같이 일하며 중무장한 병사다

몸은 굴착기가 되고 기중기가 되었다가

자동 컨베이어 벨트가 되기도 한다

그들이 초등학교 아이들이 먹을

밥을 짓는다

 

하루의 고된 노동을 끝내고 퇴근할 땐

여인의 표정을 지으며 화사한 화장을 한다

곱상한 사람으로 변신해

조신조신 깔깔깔 퇴근한다

 

 

전염병 시대

 

각성되지 않은 노동자는

자본의 노예일 뿐이다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는

자본가의 영원한 노예일 뿐이다

외쳤던 논리와 구호는

여전히 유효한가

 

조직된 노동자는 계급적인가

조직된 노동자의 조직은 계급적인가

조직된 노동자의 조직 속의 노동자는

충분히 계급적인가

 

붉은 깃발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그 길이 불편하다

 

나를 불안하게 하는 길이 있다는 걸

깨닫기도 전에

길은 저만치 멀어져간다

 

끝내 한 걸음도 딛지 못한 발바닥에

달라붙는 진흙 덩이가

내 한숨과 비겁의 흔적이라는 걸

깨닫기도 전에

길은 다시 저만치 멀어져간다

 

한 걸음만 함께 걸어요

그 보폭에 당신도 장단 맞춰주세요

깃발을 따라오세요

 

길 위에서 이어지는 발소리가

환청으로 들려올 즈음

하루의 긴 노동이 끝나고

나른해지는 저녁이 불편하다

집으로 향하는 퇴근길이 불편하다

 

그 길을 걸으며 손을 흔드는

훤히 아는 사람들의 손짓이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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