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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간행도서

박정규 소설집, 당신은 왜 그렇게 멀리 달아났습니까?

by 푸른사상 2013. 5. 22.







푸른사상 소설선 다섯 번째 도서 『당신은 왜 그렇게 멀리 달아났습니까?』가 출간되었습니다. 본 도서는 1991년 『문학정신』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박정규의 소설집입니다. 소통과 관계맺음의 양식에 대한 물음을 내포하고 있는 작품들이 실려 있는 본 도서는 다양한 소설적 장치들로 에워싸인 가운데 가장 근본적인 관심으로서 사랑으로 요약되는 인간관계론을 내보이고 있습니다.



1. 도서 목차


작가의 말

당신은 왜 그렇게 멀리 달아났습니까?
생략(Ellipsis)
스운(SWOON)
갈림(The Parting)
리바이어던의 가장자리(Leviathan Edge)
실루엣 퍼즐(Silhouette Puzzle)
누구나 혹은 아무도 아닌(Personnes)
당간지주(幢竿支柱)
봄 ․ 봄 ․ 봄



2. 저자 소개


1946년 서울에서 태어나 1991년 『문학정신』에 단편소설  「니느웨로 가는 길」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저서로 창작집『로암미들의 겨울』 『에코르체 혹은 보이지 않는 남자』, 장편소설 『흔적』 등이 있다. 현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명예교수이다.



3. 도서 소개


사랑의 형식과 방법론에 대한 질문

박정규의 이번 소설집 『당신은 왜 그렇게 멀리 달아났습니까?』는 이야기를 발견하고 구성하고자 하는 작가의식이 치밀하게 드러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의식이란 일차적으로 쓰고자 하는 욕망을 가리키지만, 한편으로는 왜 쓰는가에 대한 물음, 글쓰기의 정당성을 내면적으로 확보하려는 고투의 과정을 지칭한다.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은 다분히 시대의 변화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상황논리에 기인하지만, ‘왜 써야 하는가’라는 물음 앞에 박정규는 하나의 전범을 발견하는데, 그것은 지식인으로서 글쓰기, 지식인 유형의 모형을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첫째,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모두 중산층 이상의 경제적 환경을 유지하면서 대학교수, 소설가 등 교육받은 계층이라는 사실이고 둘째, 소설의 창작 과정이 학습의 대상인 예술적 소재로부터 출발하고 있으며, 셋째, 화자는 이야기의 구성에서 파국을 맞이하기 보다는 소설적 상황을 관찰하거나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는 주체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소설 구성의 특이점은 액자식 구성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가는 과정이 다분히 추리적 기법을 따르고 있다는 점인데, 그것은 사랑의 형식과 방법론에 대한 소설적 질문에 수렴된다. 다시 말해 박정규는 사랑문제에 대한 지적인 접근법을 소설의 핵심에 놓고 있다.

박정규의 소설은 소통과 관계맺음의 양식에 대한 물음을 내포하고 있다. 다양한 소설적 장치들로 에워싸여 있지만, 실상 가장 근본적인 관심은 사랑으로 요약되는 인간관계론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가족 내의 갈등을 겪으면서 살아가는 남성에게 사랑이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은 개인적인 영역과 아울러 사회적 층위를 포괄하는 문제임이 그의 소설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가령, 한 고고학도의 헛된 꿈을 그리고 있는 「실루엣 퍼즐」에서 사랑이란,

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삶의 단위인 아내나 자식과의 관계맺음에 실패했다는 것은 인생 전체의 삶에 실패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중략…) 삶을 관계맺음이라고 정의한다면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삶은 삶이 아니었다. 타인과의 관계를 맺는 것보다는 자신이 중심이 된 세계에서 홀로 사는 것이 익숙해 있었다.

라는 언급에서 보듯, 가족단위의 관계에서 실패하지 않는 일로 정의되지만, 실상, 사랑이 이렇게 좁은 범위에서 규정되기는 어렵고 상대적인 관점에서 그 실패 여부가 다르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박정규의 소설에서 사랑, 특히 남성화자의 경우 그것은 사회적 실패가 가져오는 자기반성의 계기로 작용하는 심리적 기제로 읽힌다. 남성적 관점에서 사랑을 사회적 성취와 배타적 소유욕만으로 측정하려는 태도는 문제가 있다. 또한 이에 대한 수정이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이루어진 것도 사실이지만, 박정규는 이 문제에 대하여 매우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한 남자의 사랑 이야기로만 요약하기에는 불충분해 보이는 「당신은 왜 그렇게 멀리 달아났습니까?」는 주인공의 누나를 오래도록 사랑했던 남자의 죽음을 통해 사랑의 본질은 무엇인지 묻고 있다.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역사적 상처를 상징하는 누나와 그녀의 죽음, 한 여자를 오래도록 사랑하고자 했던 남자의 죽음은 사랑의 갈래를 보여주는 극명한 예에 속한다. 이런 관점에서 작가가 보여주고 있는 또 다른 사랑의 양상, 즉 아버지의 후처들에 대한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다.
한편 「갈림」에서 주인공은 ‘진정한 부성(父性)은 생물학적인 문제에서 결정되는가, 아니면 사회적인 부양의 의무에서 비롯되는가’ 라는 문제에 대해, 다른 한편으로 한 여성 소설가에게 우연히 다가온 남자의 기묘한 사랑 방식을 보여준 작품 「스운」은 정신적 사랑, 다시 말해 육체성이 거세된 사랑이 가능한지에 대해 묻고 있다.
박정규의 작품에서 삶은 계기적이거나 인과적이지 않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사랑의 방식 또한 통상적인 의미의 층위에서 사랑을 읽는 것을 방해한다. 특히 소설가의 소설쓰기의 방식과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흥미로운데, 작품 속 남자가 자신의 삶을 고백하는 대목은 주목을 요한다.

그러니 내 삶이 곧 소설입니다. 그 삶을 살고 있는 주체인 내가 곧 소설입니다. 소설이 소설을 재료로 하여 소설을 써도 써진 것은 소설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이 되겠지요. 소설은 원래 자기부정의 특성을 갖는 것이 아니던가요. 현존재 저편의 새로운 세계, 새로운 존재방식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던가요. 그러니 선생님의 작업은 소설 창작이고 내가 작업을 한다면 그것은 소설의 해체가 되는 겁니다.

이러한 진술은 소설에 대한 전복적 이해, 소설에 대한 통념을 거부하면서 소설의 의미를 새롭게 이해하려는 태도로 보인다.
한 남자의 죽음에 얽힌 사건과 동성애 문제를 다루고 있는 「생략」은 기억의 단층을 이어줄 수 있는 메커니즘은 존재하는가 하는 다분히 존재론적 물음에 닿아 있다. 즉, “단절된 두 장면 사이에 외형적으로 생략되어진 부분을 재생”하려는 시도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작품에서 작가는 진실이란 무엇인가의 문제와 만나게 된다.
이외에 한국전쟁 때 부상당한 아버지와 그를 구한 소대장의 이야기를 통해 구원과 자기구원의 의미를 묻고 있는 「누구나 혹은 아무도 아닌」, 광주항쟁으로 인해 불구가 되어 죽음을 맞이한 계부와 어머니 사이의 갈등을 그리고 있는 「리바이어던의 가장자리」 등이 수록되어 있다.

박정규의 소설은 매우 꼼꼼한 독서를 요구한다. 소설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수십 년 간 강단에 섰던 ‘소설가/교수’라는 이력은 그의 작품을 읽는 중요한 참조 기준이 될 수 있다. 그것은 소설에 대한 자의식이 어떤 형태로 드러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다시 말해 그가 서문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내가 머물고 있는 자리를 새삼스럽게 가늠해보는 경우”가 바로 그 지점에 해당된다. 그것은 소설을 어떤 관점에서 만들어 가야 하는 창작방법론의 문제이자, ‘어떤 관점에서 삶을 이해해야 하는가’라는 세계관의 문제를 동시에 드러낸다는 사실이다. 창작방법론의 관점에서 볼 경우 그의 소설은 구성에 대한 일종의 전범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세계관의 관점에서 그는 자기 시대의 소설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뇌하고 있다. 이야기의 중층적 배치라든가 소설적 발견(climax)을 지속적으로 이완시키는 기법 등은 그의 소설이 매우 꼼꼼한 의도와 배치로 직조되어 있음을 반증하는 일이고, 예술작품을 다시 쓰기(rewrite) 형식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소설이란 무엇인가라는 동시대의 질문에 답하는 방법론이었다.
이런 자의식은 「당간지주」의 맨 끝 부분에서 “그런데 인칭(人稱)도 없이 떠도는 화자(話者) 너는…”이라는 진술처럼 과잉 반응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외국인 노동자의 사랑이야기를 가벼운 어조로 그린 「봄ㆍ봄ㆍ봄」처럼, 원작의 이미지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기 어려운 모습도 보이지만, ‘우리 시대의 소설은 어떤 형식을 발견해야 하는가’ 라는 물음에 정면으로 마주했다는 점에서 이 소설집은 유의미성을 얻고 있다. 지식인 소설의 범주에서 그의 소설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은 이 같은 고뇌를 그가 치열하게 반영한다는 점과 동궤에 놓인다. 우리 시대의 소설가는 무엇을 왜 써야 하는가 하는 물음에 정직한 답을 보여주고 있는 박정규의 소설은, 소설가의 자의식이 만들어낸 작품으로 명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가 소설의 형식과 구성에 대하여 매우 자각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은, 단순히 외형의 문제가 아니라 소설의 존재론, 나아가 소설가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라는 물음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예사롭지 않다. 이것이 박정규 소설의 존재론이기도 하다.



4. 추천의 글


(…중략…) 이거요. 아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것은 지면 아래쪽 광고란에 실린 무연고 사망자 공고였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제12조의 규정에 의거 무연고 사망자의 사체를 처리하고 동법 시행규칙 제4조 제1항의 규정에 의거 다음과 같이 공고하오니 연고자는 유골을 인수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밑에 공고자의 직책과 사망자의 인적사항, 사체의 발생상황 그리고 화장, 납골장소, 시기 및 기간, 연락처 등이 나와 있었다. (…중략…)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나는 덕식이 아저씨의 골분은 누나의 골분이 뿌려진 불이봉 기슭에 뿌려주기로 마음 먹었다. 덕식이 아저씨는 그 먼 길을 돌고 돌아서 결국 불이봉 누나의 곁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삼십 년이 지나서야.


- 「당신은 왜 그렇게 멀리 달아났습니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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