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섭 소설 전집(1~8권>(정정호 책임편집)
우한용 (소설가, 서울대 명예교수)
영문학자이며 문학평론가인 정정호 교수가 편집한 『주요섭 소설 전집』은 몇 가지 점에서 중요한 작업으로 판단된다. 이 전집의 의의 가운데 하나가 소설 나아가 문학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점이다. 어떤 경우든지, 독자들 모두가 ‘전집’을 읽어야 할 의무는 없다. 그러나 소설사를 기술하거나 소설을 연구하는 이들이 포괄적 시각을 확보하는 데는 ‘전집’의 역할이 대단히 크다. 어느 한정된 작품에 국한되지 않고 작가가 전개한 소설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데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문학을 어느 작가의 대표작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 황순원 「소나기」, 채만식 「탁류」 그런 식으로 작가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표작이 그 작가의 전반적인 특성을 이해하는 데는 장애요인이 되기도 한다. 특히 전반기와 후반기가 이념이나 문학의식 등에서 달라진 작가의 경우 대표작은 그 작가의 특정시기에 한정되기 때문에 작품을 통합적으로 보는 데 제한점이 된다. 또한 그 작품의 특성이 전체 작품의 성격으로 치환될 위험에 빠진다. 주요섭의 경우가 그렇다.
주요섭은 『사랑손님과 어머니』(1935, 조광)의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사회적 윤리 때문에 맺어지기 어려운 청상의 애틋한 사랑을 깔끔한 형식에 담아낸 작가, 기교파 소설가로 인상 지워지는 것이다. 독자들은 그 작품 하나로 주요섭을 이해하고 넘어가려 한다. 그러나 그걸로 충분한가. 「사랑손님과 어머니」는 주요섭의 방대한 문학적 성과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다른 작품들과 대비하면서 읽어야 「사랑손님과 어머니」의 진가가 드러난다. 이 전집은 ‘대표작’ 관념을 불식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이번에 발간되는 『주요섭 소설 전집』은 주요섭 문학에 대한 통합적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우선 이 『전집』은 주요섭의 생애를 폭넓은 시각에서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주요섭은 1902년 평양에서 출생했다. 부친은 주진우 목사이다. 목사의 아들이 ‘신경향파’로 지칭되는 사회주의 문학으로 기울어진 것은 사상사적인 검토를 요하는 사항이다. 우리 시문학사에서 근대시의 효시라고 평가받는 「불놀이」를 쓴 주요한은 그의 형이다. 주요한은 주요섭의 문학적 방향 설정에 일정 정도 영향을 미친 걸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생애연관 가운데 작가 주요섭을 이해하는 데 『전집』이 큰 역할을 하리라고 본다.
위키사전에 소개된 주요섭의 직업은 독립운동가, 소설가, 시인, 영문학자, 언론인, 대학교수, 번역문학가 등이다. 물론 그가 격변의 근대를 살았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다양한 직업에 관여했다는 것은 자가에 대한 인간적 이해가 간단치 않다는 점을 암시한다.
『전집』은 작가의 문학적 생애가 어떤 궤적을 그리며 전개되었는가 하는 점을 작품을 통해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주요섭은 단편, 중편, 장편 등 다양한 형식의 작품을 남겼다. 한 작가의 어느 작품이 압도적 영향을 보이면 다른 작품은 잊혀지기 십상이다. 이 전집은 ‘주요섭 소설’을 폭넓은 스펙트럼 속에서 이해하게 해준다. 주요섭이 내놓은 작품이 어떤 변화를 거쳤는가 하는 측면에서는 작품을 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당대 사회적 주제로 부각한 빈곤, 이념적 고뇌 등을 다루는 이른바 ‘신경향파’의 특성은 그의 20대 문학적 특성을 대변한다. 그 후 10년이 지나 30대에 들어서면 소설(문학)이 다양한 면모를 보이며 전개된다. 그 다양성을 증거하는 예로 ‘사랑’을 소재로 한 작품이 두드러진다. 그 이후의 작품들에 대해서는 『전집』을 참고할 일이다.
그의 소설을 인상 지우는 「사랑손님과 어머니」는 1935년 『조광』이라는 잡지에 발표되었다. 이듬해 「아네모네 마담」을 발표하여 단편소설의 정수를 보여준다. 이는 1930년대 한국 소설사의 한 면모를 드러내는 특성이라 할 수 있다. 1930년대는 한국 근대소설의 화려한 전개를 보여주는 시기이다. 수준 높은 장편소설이 대량 출간되고 단편소설은 다양한 분화를 보여준다. 이러한 문학사적 맥락에 주요섭의 소설이 놓인다.
사랑의 미묘한 기미(機微)를 포착했다는 점에서 「사랑손님과 어머니」와 쌍을 이루는 「아네모네 마담」은 1930년대 단편소설의 한 전형에 해당한다. 소설에서 사랑을 다루기 어려운 이유는 간단하다. 사랑은 추상적인 명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정서적 내면적 디테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거대한 조류로 흘러가는 사회현실은 사랑이란 디테일을 포장하는 사건적 외피에 해당할지도 모른다.
한편 사랑은 헛된 꿈으로 실현된다. 인생을 속아산다는 속언을 현실적으로 구체화하는 게 ‘사랑’이다. 그게 허위가 아니라 ‘진실’이라는 점을 「아네모네 마담」은 여실하게 보여준다. 소설의 디테일을 강조하는 자리에서 작품의 스토리를 요약하는 것은 그야말로 스포일러가 될 위험을 내포한다. 그러나 서사물을 가장 간단히 소개하는 방법은 스토리를 요약해 보여주는 것이다. 「아네모네 마담」의 스토리는 대개 이러하다.
한 청년이 있었다. 어떤 계기에 자기가 다니는 대학의 교수 부인에게 연정을 품게 된다. 그 여인은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 분위기를 풍기며,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닮은 걸로 청년에게 각인된다. 청년은 티룸 ‘아네모네’에 가서 시간을 죽이면서 미완성 교향곡을 신청해서 듣고 마담이 앉아 있는 카운터 뒷벽에 걸린 모나리자를 쳐다본다. 그 티룸에 ‘영숙’이라는 마담은 매일 자기 업소에 와서 미오나성 교향곡을 듣고 자기를 쳐다보곤 하는 데서 청년에 대한 괌심이 자라난다. 이 청년이 자기를 사랑하는데 용기가 없어 고백을 하지 못하는 걸로 알고, 몸단장을 정성스레 하고는 청년의 사랑고백을 기다린다. 그런데 교수의 부인이 병으로 죽게 되고, 청년은 다방에 가서 턴테이블을 들러엎고 행패를 부린다. 마담은 자신이 속았다는 걸 깨닫고 청년에게 보이기 위해 장식을 했던 귀고리를 떼고 출근해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이러한 스토리 자체는 상당히 세속적이다. 그러나 행문(行文)의 갈피에서 사랑의 심리가 섬세하게 묘사되고, 그게 행동으로 구체화되는 과정에 독자는 소설에 몰입하게 된다. 그리고 이 작품은 텍스트연관성(인터텍스추얼리티)을 촘촘히 조직해놓았다. 독자는 이 해석의 코드에 집중하는 사이 일종의 기호놀이에 빠져들게 된다. 바람을 뜻하는 그리스어 아네모스(anemos)에 어원을 두고 있는 아네모네는 허무한 사랑, 속절없는 사랑이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다. 슈베르트의 교향곡 8번의 속명이 ‘미완성 교향곡’이다. 4악장으로 구성되는 교향곡의 일반적 형식과 달리 2악장에서 끝나는 곡이다. 평생 결혼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다가 31세에 요절한 천재의 대중성 짙은 교향곡이 소설의 사랑이란 모티프와 연계되어 있다. 신비적인 아름다움의 이상으로 표상되는 모나리자도 텍스트연관성 모티프로 관여된다. 허망한 환상극으로 끝난 사랑이야기가 조밀하게 구성한 텍스연관성으로 인해 의미가 증식된다. 이 소설을 한판 허황된 사랑담에서 구해주는 것은 이 텍스트연관성이다. 이러한 의미코드를 읽어내는 데는 독자의 문학능력이 요구되는 것은 물론이다.
이 『전집』은 주요섭 소설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자료가 될 뿐만 아니라, 한국 근대소설사의 총체적 전망 마련에 크게 기여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독자들의 관심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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