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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간행도서

임윤 시집, <지워진 길>

by 푸른사상 2023. 7. 10.

 

분류--문학()

 

지워진 길

 

임윤 지음|푸른사상 시선 179|128×205×8mm|144쪽|12,000원

ISBN 979-11-308-2071-2 03810 | 2023.7.6

 

 

■ 시집 소개

 

역사의 진보와 인간의 화평을 위한 노래

 

임윤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지워진 길』이 <푸른사상 시선 179>로 출간되었다. 압록강과 두만강 너머 한민족의 국경지대를 배경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활동과 그에 따른 삶의 애환이 시집에서 서사적으로 펼쳐진다. 낯선 풍경 속을 채우는 시인의 시선과 발길은 궁극적으로 분단 극복의 지향이라는 역사성도 획득하고 있다.

 

 

■ 시인 소개

 

임윤

2007년 『시평』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뒤 <변방> 동인을 통해 시 공부를 했다. 시집으로 『레닌 공원이 어둠을 껴입으면』 『서리꽃은 왜 유리창에 피는가』 『지워진 길』을 간행했다. 아직 몸속에 유목의 피가 흐르는지 북쪽에 있는 산과 강, 그 기슭에 자리한 너와집을 보러 북한과 맞닿은 중국, 러시아의 접경을 돌아다니고 있다.

 

 

■ 목차

 

제1부

먹먹한 이별 / 오래된 침묵 / 지워진 길 / 단동역의 새벽 / 쭉 내자우 / 바닷길 족적 / 뤼순의 가을 / 압록강에는 섬이 많다 / 자작나무 편지 / 피라미의 가계 / 길은 활처럼 휘어진다 / 푸른 오리 / 당달봉사 / 강물 소리

 

제2부

압록강 물새 / 쌓여 있는 길 / 자작나무의 눈 / 얼음 왕국 / 혜산의 어둠 / 역류하는 강 / 압록강 지류 / 몽유 / 눈빛 대화 / 뜬눈 / 강변을 습격하다 / 어둠을 벗어난 그림자 / 구름 두부 / 백두산 일출

 

제3부

눈이 아프다 / 돼지 멱따는 날 / 제망매가 / 누이야 / 짝태의 눈 / 한눈으로 3국을 보다 / 장령세관 / 가슴에 흐르는 강 / 소야(消夜) / 변방의 넋두리 / 범법자들 / 늙은 개 / 훈춘에서 / 저녁 통증

 

제4부

황무지에 핀 민들레 / 철조망 증후군 / 필담(筆談) / 단단한 바람 / 동해 일몰 / 다시 압록강에서 / 북쪽 길 / 출렁거리는 신념 / 물의 기억 / 불편한 계절 / 손바닥 수맥 / 생의 줄기 / 막대자석의 습성 / 태풍의 눈

 

작품 해설 : 국경의 시학 - 맹문재

 

 

■ '시인의 말' 중에서

 

눈보라가 발목을 휘감는 엄동설한에 앞선 발자국이 사라지는 걸 바라본다. 나보다 먼저 걸어간 사람은 어디로 흘러갔는지, 나는 또 어디로 가는지, 방향을 가늠치 못해 지워진 길 위에서 방황하는 사람들.

압록강 하구 단동부터 두만강 하구 방천까지 한반도 경계의 강은 그대로인데 강을 건너는 사람은 없다. 국경을 넘나들던 수많은 길은 잡초에 묻히고 철조망에 막혀 지워졌다. 불과 한 세기 전에 자유롭게 건너던 우리의 길은 무관심의 시간 속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 추천의 글

 

역사의 진보와 인간의 화평을 위한 노래를 자신의 시업으로 삼아 굳건하게 견지해왔던 임윤의 시편들은, 이제 그의 세 번째 시집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노선을 잃지 않고 현재진행형의 위도 위를 달리고 있다.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대변되는 한민족의 국경지대에서 쉼 없이 앉고 서는 애한과 비탄의 대서사가 이번 시집의 주된 서정이자 그의 부채 의식이며 미래의 의지이다. “끊어진 철교” “수풍댐” “만포 구리광산” “중강진” “악산” “남백두에서 발원한 강물” “보천” “삼지연” “송강하” “이도백하” 그리고 “천지”. 임윤의 쓰라린 시의 촉수가 마치 자음처럼 모음처럼 숨 가쁘게 일별했던 “지워진 길” 위에서의 호명들은 우리들이 어느 사이 까맣게 잊고 지냈던 신기루 너머의 명명들이기도 하다. 장년의 막바지에 이른 시인의 엄연하고 우원한 기상의 시편들이 내 나라에 임하는 통일의 밑거름이 되리라는 사실을 정녕 믿기로 하자.

― 정윤천(시인)

 

한반도 남북의 길은 모두 은산철벽, 막막하고 “먹먹한 이별”이 너무 길다. 참다못해 동해 푸른 울산의 임윤 시인이 중국까지 갔다. 북중 국경을 떠돌며 대성통곡을 했다. 발해와 고구려와 만주, 북방과 대륙의 정서를 되새기며 “우리는 너무 멀리 지나쳤다”는 것을 절감한다. “목 놓아 불러도 기척 없는 산자락”, “화석처럼 말라버린 오래된 얼굴”들뿐이다. “당신이 건너올 외나무다리”는 어디에 있으며, “얼음 왕국”의 외출 중인 달빛은 언제 다시 돌아올까. 제아무리 먹먹해도 “천년의 보폭으로 물은 흘러갈 것이니” 마침내 임윤은 국경의 시인이 되었다. 죽기 전에 두만강 건너 회령이나 무산에서 북쪽 동무들과 들쭉술을 마시며 “우리가 남이가, 쭉 내자우” 호탕하게 건배하고 싶다.

― 이원규(시인)

 

 

■ 작품 세계

  

임윤은 한국 시문학사에서 중국의 단동을 중심으로 남북교류 상황을 집중적으로 그린 시인으로 평가될 것이다. 시인은 단동이라는 또 하나의 국경에서 남한 사람들, 북한 사람들, 중국 사람들이 서로 교류하는 모습을 살펴보면서 남북 분단으로 인한 안타까움은 물론 그 극복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시인에게 단동은 지도상에 나오는 하나의 국경이라는 의미를 넘어 역사적인 장소가 된다. (중략)

단동에서는 남북 교류의 부침과 상관없이 경협이 이루어져 왔다. 남한 사람들이 주문한 옷을 단동에서 북한 사람들이 만들고, 그것이 중국 제품으로 한국에 합법적으로 들어온 것이 좋은 예이다. 이와 같은 상황은 1990년대 이후 북한의 경제 악화와 반복되는 수해 및 가뭄으로 배급 체계가 붕괴하고 생필품 및 의약품이 부족해 대량의 아사자가 발생하면서 본격화되었다. 북한 사람들은 가구나 잡화를 파는 것으로 식량난을 해결할 수 없자 국경을 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하여 일명 도강증이라고 불리는 국경통행증으로 양쪽을 자유롭게 오고 가고 있다.

단동에서는 한국, 북한, 중국 사람들이 서로 교류하며 삶을 이루고 있다. 그들의 삶의 터전과 수단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중국 길림성의 연변 지역이 무역 중심지였는데, 2000년대에 들어서는 단동으로 이동하였다. 무엇보다 북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식량, 생활품, 의약품 등을 남한에서, 평양에서 만든 가공품을 남한으로 보내는 데 최단거리라는 지리적인 여건 때문이었다. 그에 따라 남북한 동포들은 귀국 후 문제가 될 소지를 최소화하면서 단동에서 경제협력을 추구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데도 한국 사람들은 단동에서 이루어지는 남북 교류를 잘 모르고 있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임윤 시인이 단동을 중심으로 심화시킨 국경 인식은 매우 중요하다. 시인은 그곳에서의 체험을 통해 남북 분단에 따른 남북교류의 한계는 물론 그 극복의 가능성을 제시해주고 있다. 결국 임윤 시인은 남북 동포들의 경제적 교류를 토대로 분단 극복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 맹문재(문학평론가·안양대 교수) 해설 중에서

 

 

■ 시집 속으로

 

지워진 길

 

아이가 엄마 손 놓치지 않으려

손가락 끝에 묻어난 계절이 안간힘 쓸 때

강물로 뛰어든 정강이가 시릴 즈음

단단한 각질 벗겨내는 물결처럼

잡목이 삼켜버린 길 위에 포개진 발자국은 침묵한다

강의 어깨를 물고

끝 간 데 없이 출렁거리는 국경

모래밭에 찍힌 화살표 물새 발자국이

위화도에서 말머리를 돌렸던 편자의 깊이 같다

봉두난발 백성들 머리카락인가

반질거리던 길을 에워싼 잡초를 헤집는 바람

 

신의주가 손에 잡힐 듯 끊어진 철교

수풍댐 가르는 보트의 굉음

집안에서 만포 구리광산으로 연결된 교각

중강진의 악산과 사행천에 자리한 너와집들

혜산의 얼굴을 차단한 세관의 철문

남백두에서 발원한 강물을 건너던 길

보천, 삼지연, 송강하, 이도백하 그리고 천지

대홍단 감자 보따리장수와

화룡을 오가던 무산의 얼굴

(후략)

 

 

쌓여 있는 길

 

몸이 과녁인 줄 몰랐다

중심을 먹고 자란 나이테 속에 쌓인 길

절개된 눈벽의 피부에서 꿈틀거린다

단층 이룬 틈바구니마다

질긴 목숨들 몸부림친 흔적 선명하다

흩어졌던 외길이 모여 신작로 만들듯

걸음마다 허방 짚던 어두운 길눈

보푸라기처럼 흔들리는

가슴에 숨겼던 등불 하나 꺼내

작은 새 한 마리 허공으로 날려 보낼 일이다

골목에 쌓인 녹슨 시간의 침묵들

회색 이념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눈동자

소통의 손길 뻗어보아도

건너길 거부하는 시퍼런 물결이 두렵다

민둥산에 홀로 선 늙은 소나무

황톳빛 능선에 핀 진달래는

그래도 낯설지 않아 눈시울이 뜨겁다

건너편 길 따라 남으로 가면

숙부가 일궜다는 묵정밭에도 분홍빛 만개했을 터

저 길은 끝인지 시작인지

깊이 잠든 눈동자는 길을 잃어

허물어진 허공을 무리 지어 날아가는 날개들

 

 

출렁거리는 신념

 

자작나무를 심자

민들레 노란 눈웃음이 그리울 때

녹슨 바람 한 줌 손에 쥐고

강변에 눈 녹고 새소리 날리도록

강물 빨아올려 나뭇잎 무성하게

 

휘파람은 어디에서 방황하고 있는가

울울창창한 숲의 근육

힘겨운 시간은 가슴에서 단단해지는데

바람 소리도 느끼지 못해

너울 일렁이는 저녁의 비음

 

철조망과 강이 맞잡은 악수는 숙명이 아니기에

헐거워진 빗장 열고

천년의 보폭으로 물은 흘러갈 것이니

숲에 붙박였던 눈길 외면한

기득권인 당신의 두려운 눈빛 분명치 않은가

 

강변을 뛰어가는 아이의 실한 엉덩이처럼

벌거벗은 상상을 하자

껍질 벗은 모습 강물에 비치면

너울에 쓸려간 이파리를 그리워하자

무화과나무처럼 가슴속에 꽃피우고 향기는 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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