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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간행도서

엄현주 소설, <참 좋은 시간이었어요>

by 푸른사상 2023. 5. 1.

 

분류--문학(소설)

 

참 좋은 시간이었어요

 

엄현주 지음|푸른사상 소설선 46|146×210×14mm|256쪽

17,500원|ISBN 979-11-308-2030-9 03810 | 2023.5.6

 

 

■ 도서 소개

 

비극적 운명 끝에 찾아온 참 좋은 시간

 

엄현주 작가의 장편소설 『참 좋은 시간이었어요』가 <푸른사상 소설선 46>으로 출간되었다. 역사적 사건의 간접적 피해자인 심진순 할머니와 불안한 현재를 살아내고 있는 신지수, 세대를 뛰어넘은 두 여성이 참 좋은 시간을 보낸 기록이다. 국가 폭력과 사회 재난이 개인의 삶에 끼치는 영향을 소상히 그려낸 이 소설에서 과거와 현재를 비추며 서로를 위로해주는 두 인물의 교류는 깊은 감동을 준다.

 

 

■ 작가 소개

 

엄현주

2002년 평사리문학대상을 받고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06년 문화예술위원회에서 창작지원금을 지원받아 창작집 『투망』을, 2020년 창작집 『불꽃선인장』을 출간했다. 함께 쓴 창작집으로 『코비드 19의 봄』 『기침소리』 등이 있다. 2016년 장편동화로 법계문학대상을 받았다. 현재 한국소설가협회와 작가포럼에서 활동하고 있다.

 

 

■ 목차

 

▪작가의 말

 

1. 첫날

2. 갑작스러운 고백

3. 휴일에 찾아온 손님

4. 비는 내리고

5. 사과꽃 향기

6. 꽃신을 신은 아이

7. 아픈 사랑

8. 벚꽃 여행

9. 사진들

10. 단상

11. 피해자

12. 가족, 추석, 그리고 전화

13. 깊은 죄의식

14. 마지막 날

15.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작품 해설:자기 극복을 위한 ‘지금, 여기’ _ 이덕화

 

 

■ '작가의 말' 중에서

 

지난 시간에 대한 후회와 다가올 시간에 대한 불안으로 현재를 제대로 살아내지 못한다고 반성하면서도 여전히 나는 현재에 머물지 못한다. 과거와 미래를 끊임없이 오가는 내 의식을 붙잡아두기 위해 필요한 것은 언제나 ‘글쓰기’이다. 글을 읽고 쓰는 일만큼 나를 온전히 사로잡는 게 아직 없다는 사실이 행(幸)인지 불행(不幸)인지 알 수가 없다.

내가 쓴 글이 누군가에게 전해져 아주 잠시라도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면, 하는 바람이 안타까운 기다림으로 남아 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또한 헛된 욕심이리라. 시간이 환영(幻影)이듯이…….

이제 보낸 시간보다 보낼 시간이 훨씬 적게 남아 있다는 걸 받아들이면서 『참 좋은 시간이었어요』를 구상하게 되었다.

신지수와 심진순은 헤어질 때면 “참 좋은 시간이었어요”라는 말로 작별 인사를 나눈다. 그러면 마법에 걸려 함께한 시간이 무조건 좋은 시간이 되기라도 하듯……. 이 소설은 서른 살인 신지수와 아흔 살이 넘은 심진순이 자신들의 미래와 과거를 서로에게서 찾아내며 한때를 함께 보낸 시간의 기록이다.

역사적인 사건 사고나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 낡은 인습들이 아무런 관여를 하지 않은 개인에게 끼치는 영향이 때로는 치명적인 경우가 있다. 그렇더라도 힘없는 개인은 그걸 감내하며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심진순과 신지수도 마찬가지다.

많은 아픔을 안고 여전히 과거의 시간을 살고 있는 심진순과 현재가 고달프고 불안한 미래 때문에 힘들어하는 신지수지만 그들이 함께하는 시간만큼은 따뜻하고 즐겁다. 그 시간 동안 그들은 우정을 나누었고 친구가 되었다. 그러니까 그들은 정말 ‘참 좋은 시간’을 보낸 것이다.

이 작품을 쓰는 동안 나는 작가로서 즐겁고 행복했다. 독자들과 함께하는 시간도 ‘참 좋은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 작품 세계

 

인간은 누구나 나름대로 각자의 짐을 지고 있다. 그 짐이 부당한 것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 근대사에 일어난 다양한 사건은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것이 많았다. 그런 것들이 개인의 운명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 이 작품의 인물들은 개인의 잘못보다는 국가의 폭력 앞에서 어쩔 수 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피해로 불행을 겪는 인물이다.

이 작품 속에는 그토록 사랑했던 부모, 자녀, 약혼자, 친구 등의 많은 죽음이 있다. 사실 그들과 했던 경험과 아직 여기 남아 있는 인물들과의 그 많은 죽음 속에서 현실에 있는지, 또 다른 세상에 있는지 혼란스럽다. 그들의 죽음으로 내 곁을 떠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없었던 게 아닐까 하는 삶의 환영을 본 듯하다.

죽음으로 가까운 이들을 떠나보낸 인물들은 이처럼 혼란된 경험 속에서 미몽을 헤맨다. 어제까지 웃던 사람들과 오늘부터 만날 수 없다는 점에서 모든 죽음이 같다. 사랑하는 사람의 인생이 이토록 일찍 끝난다는 것에 슬픔을 느낄 사이도 없이 혼란 속을 헤맨다.

6·25사변이 그렇고 세월호 사건이 그렇다. 전쟁으로 약혼자를 잃고 불행한 삶을 살아야 했던 인물, 가부장적 의식에 의한 남아선호사상으로 훔쳐진 인물의 혼란된 정체성, 자녀의 개인 주체성보다는 집안의 소유물화에 의한 불행, 다양한 이유로 이 작품에 주로 등장하는 인물 외 가족으로 거론되는 인물까지 모두 불행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이것은 작가의 세계관과도 관련이 있다. 인간은 나름대로 다 불행하다는 명제를 가지고 작가는 그 불행을 어떻게 극복하고 ‘지금, 여기’를 행복하게 즐길 수 있느냐에 서사의 초점을 맞춘다.

이것은 작가가 메타픽션적 글쓰기의 방법을 선택한 것과도 관련이 있다. 전략적으로 메타픽션적 글쓰기를 선택한 것이다. 한 인간의 일생이 마치 누군가 자신의 운명을 조작해놓은 듯한 환영과 같은 것으로 보는 세계관에 의하면 한 인간의 인생을 한 가지 관점으로 해석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여기에 작가의 메타픽션적 글쓰기가 유효하다.

- 이덕화(소설가, 문학평론가) 해설 중에서

 

 

■ 출판사 리뷰

 

엄현주 작가의 장편소설 『참 좋은 시간이었어요』의 등장인물들은 누구 하나 불행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인간은 개인적인 문제든, 국가적 폭력에 의한 피해든 각자 나름대로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되짚어보면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으로부터 세월호 참사에 이르는 국가적 재난에, 남아선호사상으로 대표되는 사회 구조적 문제까지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았다. 이 소설은 역사적 사건의 간접적 피해자로서 가까운 이들을 저 멀리 떠나보낸 아흔 살의 심진순과 불안한 현재를 살아내는 서른 살의 신지수, 세대를 뛰어넘은 두 여성이 ‘참 좋은 시간’을 보낸 기록이다.

임용고시 준비생인 신지수는 생계를 위해 치매기가 있는 90세 할머니 심진순의 말동무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두 사람 이름의 초성이 ‘ㅅㅈㅅ’으로 똑같다는 것에 놀라워하며 60여 년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친구가 되기로 한다. 6개월 동안 오후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신지수는 심진순의 불행한 가족사를 듣게 된다. 국문과 출신이며 출판사를 다닌 적 있는 신지수는 그 이야기를 상상하고 재창작하며 언젠가 책으로 엮어주겠다고 약속한다. 신지수는 심진순의 이야기에 몰입하면서도 아버지가 잘못 선 보증으로 인해 암울했던 과거와 취업 문제 등으로 불안한 현재의 삶을 글쓰기를 통해 극복하고자 한다.

심진순은 태평양전쟁으로 오빠를, 한국전쟁으로 약혼자를 잃고 딸 둘을 둔 홀아비와 결혼하는데, 남아선호사상을 가진 시누이에게 시달린 나머지 해서는 안 될 행동까지 저지르고 만다. 그로 인해 훗날 모종의 사건으로 친자식을 잃고, 세월호 참사로 인해 손자까지 잃는다. 역사적인 사건이나 사고가 무고한 개인의 삶에 끼치는 문제가 지대하다는 것을 심진순의 이야기로 실감한 신지수는 우리는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나아가 개인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해야 하는지의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과거의 상처로 인해 여전히 아파하는 심진순과 고달픈 현재와 불안한 미래로 인해 힘들어하는 신지수지만 그들이 함께하는 시간만큼은 따뜻하고 즐겁다. 서로의 과거와 현재를 비추며 우정을 나누는 모습이 독자들의 마음을 따스하게 어루만져준다.

 

 

■ 작품 속으로

 

-정말 백합 겉었제. 청순하게 생긴 얼굴에 마음씨는 또 얼매나 고왔다꼬. 인자 저승 가몬 만날란가. 우리가 시누 올케 사이가 될 뿐했제. 그랬더라몬 여러 사람 인생이 바낐…을 낀데. 그눔의 전쟁이 들어 말칵 다 망친 기라. 봄에 약혼하고, 그해 가을에 혼례를 치룰라꼬 했는데 난데없이 육이오가 터지뿌는 바람에……. 그 대여섯 해 전에는 우리 오빠가 학도병에 끌리나가 죽어삐고. 참말로 에리븐 세월을 살았다. 에휴…….

태평양전쟁, 6·25사변. 물론 들어보긴 했다. 역사적 사건으로만 내게 여겨지고 있는, 그 전쟁들로 진순 씨는 사랑하는 사람을 둘씩이나 잃고 인생이 바뀌었다니. 진순 씨의 한숨 끝에 묻어나는 삶의 고난과 비애. 숙연해지면서 슬픔이 내게로 전해와 가슴이 먹먹해지려 했다. 나는 애써 분위기를 바꾸어볼 요량으로 약간 장난스럽게 말했다.

-에구구, 우리 진순 씨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래도 잘 견뎌냈으니 짱이에요.

(29쪽)

 

역사에 남을 만한 엄청난 사건 사고가 개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나는 그다지 관심이 없을뿐더러 그런 것들과 관련된 생각조차 평소에 별로 해본 적이 없었기에 뭐라고 해줄 말이 없었다. 딱히 그런 일들이 내게 직접적인 영향을 준 적이 없었을 뿐 아니라 늘 당면한 문제들과 상황에 갇혀 오로지 그것들을 해결해나가는 것만이 내가 살아가는 길이라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물론 심각한 취업난과 나날이 어려워가는 교원 임용고시가 나라 경제 탓이라고, 흙수저가 받아야 하는 불이익들이 정말 부당하다고 가끔씩 푸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의 근본적인 문제는 물론이고 해결책 따위를 아예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 그래 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필요 없는 데 에너지를 쓸 만큼 어리석지도 여유롭지도 않다. 그런데 내가 만약 진순 씨처럼 저런 일들을 당한다면? 나야말로 미약한 일개 국민일 뿐이라는 사실을 순간 깨우치고서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나도 모르게 조그맣고 쪼글쪼글한 진순 씨의 손을 꼭 잡았다.

(77쪽)

 

나는 가방을 어깨에 메고서 평상시처럼 진순 씨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진순 씨, 참 좋은 시간이었어요.

진순 씨도 앵무새처럼 내 말을 그대로 따라했다.

-지수 씨, 참 좋은 시간이었어요.

그늘이 지기 시작하는 골목길을 걸어 나오며 나는 소망했다.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들이 진순 씨에게도 나에게도 ‘참 좋은 시간’이었다고, 오래오래 기억되길…….

(133~1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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