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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간행도서

김림 시집, <미시령>

by 푸른사상 2023. 4. 24.

 

분류--문학()

 

미시령

 

김림 지음|푸른사상 시선 176|128×205×8mm|144쪽|12,000원

ISBN 979-11-308-2027-9 03810 | 2023.4.28

 

 

■ 시집 소개

 

미시령의 혹독한 추위 속에서 희망을 노래하다

 

김림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미시령』이 <푸른사상 시선 176>으로 출간되었다. 시대와 세대를 넘나들며 관심의 끈을 놓지 않는 시인은 세상을 등진 일가족과 가난 등 개인의 사연뿐만 아니라 세월호 참사, 남북 분단 등 사회 곳곳에 생긴 상처를 기꺼이 어루만진다. 미시령 같은 세상의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며 희망을 노래하는 것이다.

 

 

■ 시인 소개

 

김림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고 어진내(仁川)에서 머물고 있다. 2014년 『시와문화』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꽃은 말고 뿌리를 다오』가 있다. 현재 한국작가회의, 민족문학연구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 목차

 

제1부

콩밭 너머 / 전쟁놀이 / 11월 / 목백일홍 / 매미 / 홍어무침 / 네가 오던 날 / 아버지의 등 / 놓지 못한 것들 / 순간의 파닥임 / 숯 / 참새나무 / 옥선(玉蟬) / 그곳에만 가면 / 연산군 유배지에서

 

제2부

동백의 노래 / 속도의 수렁 / 잠들지 않는 눈 / 희망. 퇴직 / 가난 증명서 / 소리 감옥 / 늙은 밥그릇 / 소낙비 / 분실신고 / 찜질방에서 / 어떤 본능 / 무턱 시대 / 저편, 신세계 / 명암 / 반지하

 

제3부

미시령 / 이소(離巢) / 행잉 코핀스(Hanging Coffins) / 휴전선 / 월동 / 간, 신장 구합니다 / 박열 / 2014년 4월 16일 / 광성보에서 / 블랙홀 / 비밀의 바다 / 겨울나기 / 심장 근처 / 바람의 성지 / 춘궁기

 

제4부

수렁 / 미구에 / 참혹한 시선 / 폭설 / 구름의 서사 / 벽 / 우리가 바닥이다 / 결 / 미행(微行) / 초콜릿국 / 가을 오기 전, 여름 / 황사주의보 / 여전히 먼 / 꿈의 무게 / 작심 없이

 

작품 해설 : 특권의 시와 의무의 시 - 최종천

 

 

■ '시인의 말' 중에서

 

올해에도 어김없이 테이블야자가 꽃을 피웠다

긴 겨울 내내 꾸준히 새 가지를 밀어올리더니

오목눈이 눈동자만큼 작고 노란 꽃망울을 데려왔다

 

첫 시집을 내고 12년 만에 두 번째 시집이다

오래도록 겉돌았다

봄의 성화가 오랜 게으름을 건드렸나

겨울이 깊었던 만큼 봄을 키우는 지력이 풍요로울 것을 소망한다

 

 

■ 추천의 글

 

오랜 인연 덕에 시인의 시를 간간이 접할 수 있었다. 그때마다 발표한 시들을 떠올리며 시인과 어울릴 문장들을 생각했다. 여러 시를 한꺼번에 만난 이번 시집을 읽으며 비로소 또렷해졌다. 김림은 시적 대상에 대한 시선이 온화한 시인이다. 고통받는 이를 어루만져주는 시인이다. 시대와 세대를 넘나들며 관심의 끈을 놓지 않는 시인이다. 교묘히 진화하는 부조리를 고발하는 시인이다. 평소 차분한 성향 탓일까? 세상의 통증을 끌어안고 조용히 아파하는 시인이다. 사랑의 본질을 일깨운 첫 시집(『꽃은 말고 뿌리를 다오』)이 그러했고 두 번째 시집(『미시령』)도 역시 그러하다. 시인의 말처럼 우리 몸 어느 한 곳에 작은 상처가 생겨도 온통 신경이 모아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사회 곳곳에 생긴 상처에는 왜 관심이 없는가? 김림은 우리에게 묻는다. 통증을 함께 치유할 생각이 없는가? 김림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묻는다. 어서 대답하라는 듯 집요하게 묻는다.

― 손병걸(시인·한국작가회의 인천지회장)

 

김림 시인의 시 세계는 나무의 존재학 혹은 나무의 사회학이다. 시인은 바다의 길 끝에 선 어머니와 수렁에서 풀려난 아버지의 생애를 몸을 비운 나무 같다고 여긴다. 목백일홍을 꺼지지 않은 불꽃을 지닌 존재로, 은행나무를 풍성한 수다를 떠는 존재로 바라본다. 헐벗은 채 홀로 선 나무로부터 가난 증명서를 떼기도 한다. 어른들이 무시하고 싫어하는 아픈 아이의 말을 들어주는 가로수에게 고개 숙인다. 나무가 지나온 길을 따라 역사를 품고 광장에서 촛불을 든다. “생전에 빚진 이라면/오직 나무 한 그루”(「옥선(玉蟬)」)라는 마음으로 미시령에 오르자 거친 혈맥을 내보이며 환영하는 나무들, 시인은 그 앞에서 어깨의 높이를 회복한다.

― 맹문재(문학평론가·안양대 교수)

 

 

■ 작품 세계

  

시를 읽으며 놀라는 것은 사회적 사건을 다루는 시편들이 많다는 것이다. 나는 여성 시인이 이렇게 사회적 문제를 많이 다루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폭설」은 최근에 일어난 이태원 참사를 다루고 있는데, 이 시도 애도의 마음으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미구에」는 생태 위기를 다루고 있다. “인간은 어느 바다로 떠밀려 있을까?” 하고 묻고 있는데 바다에는 제주도만큼이나 큰 쓰레기 섬이 떠다니고 있다. 미구에 인간이 그런 꼴을 당하리라는 것이다. 지구의 생태계는 먹이사슬로 되어 있다. 땅속의 미생물-미생물을 먹는 식물(식물의 광합성)-식물을 먹는 초식동물-초식동물을 먹는 육식동물-모든 것을 먹는 잡식동물 인간. 먹이사슬은 에너지의 이동 경로이고, 에너지를 순환시키는 시스템이다. 먹이사슬은 배열된 것이고 해체시에는 배열의 역순으로 된다. 인간이 그 첫 번째 대상이 된다. 이 진화의 질서에서 인간이 마지막으로 나타났다는 것은 어쩌면 인간은 다른 존재, 동물이나 식물, 미생물 등에 비하여 가장 덜 필요한, 상대적으로만 필요한 존재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 상대적이라는 것은 지구 생태계의 균형이고, 균형이 있으면 아름답다. 자연의 진화도 아름다움을 고려한 것이다. 인간은 이러한 의미를 살펴야 하는 의무를 지고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생태 위기는 곧 인간의 소멸로 이어지게 되어 있다. 이런 시를 쓰기는 의외로 만만치가 않은데도 불구하고 시인은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상식적인 수준에서 말하고 있다. 생태 위기는 갈수록 고조될 것이다. 2023년 2월 15일 오늘 뉴스에서는 “이태원 희생자 서울 광장서 추모”…… 서울시 “반드시 철거”라는 기사의 헤드라인이 읽힌다. 그러니까 이 나라 대한민국에서는 앞으로도 이런 사건이 계속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는 것이다. 이런 사건을 다루는 경우에도 특권이 있다. 이 특권은 시인의 것이 아니라 시 그 자체의 것, 즉 표현의 자유이다. 시인은 「폭설」에서 “실종된 책임을 우리는/어디에서 찾아 누구의 멱살을 잡아야 하는가”라고 하고 있지만, 기실은 잡아야 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잡아야 하는 문제이다. 누구의 멱살을 잡아야 하는지는 우리 국민, 모두가 알고 있다.

― 최종천(시인) 해설 중에서

 

 

■ 시집 속으로

 

전쟁놀이

 

옹기종기 모여 앉은 아이들

햇빛 아래

빛나는 사금파리 무기로

전쟁놀이가 한창이다

금단의 선을 범하면

명쾌하게 내려지는 사망 선고

“야, 너 죽었어.”

죽었다는 말이 이리도 명랑한 말이었나

머리를 긁적이며 죽은 아이가 웃는다

지나간 것들은 동글동글

모서리가 닳아져 있게 마련

조막만 한 손바닥이 지구를 훑는다

 

 

미시령

 

가파른 고립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오래전 종적을 감춘 길, 나보다 앞선 이들이 태고의 침묵 속으로 가는 동안 나의 눈동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과녁에 고정되었다. 여전히 산마루는 완강히 금을 그은 채 다가오지 말라고 한다. 얼마나 많은 걸음들이 경계 앞에서 돌아섰을까. 금단의 선을 넘은 이들은 돌이 되어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저마다 제 몸 가득 묘비명을 새긴 채.

 

‘김림, 여기 깃들다.’

 

속초 밤바다에 누워 낮에 두고 온 미시령을 꺼내어본다. 한 치의 접근도 허락지 않던 도도한 자태. 연신 차 앞 유리를 훔쳤다. 밀어낼수록 더욱 두꺼워지던 안개, 멀미가 일었다. 바다를 배회하다 극한에서 일어서는 유빙, 미시령은 혹독한 추위 앞에서야 제 높이를 회복한다.

 

 

우리가 바닥이다

 

50년 전,

견고한 어둠에 저항하여 한 몸 불살랐던 그때로부터

반세기가 지나도록 어둠은 더욱 촘촘해지고

자본이 방치한 세상의 막다른 골목에선

하루에 일곱 명씩

한 해 2020명의 목숨이 죽음 속으로 떠밀렸다

끝나지 않은 어둠

소통이 없는 세상에서

죽음이 비로소 언어가 되는 세상

사악한 자본은 죽음을 먹고 몸뚱이를 키운다

평범한 행복을 꿈꾸던 자

그조차 꿈을 꾼 죄로 죽어야 하는가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의 25시

뫼비우스의 띠처럼 하루의 시작과 끝이 모호한

분류되지 않은 택배물처럼 널브러진 휴식

퉁퉁 부은 눈으로 열리지 않은 새벽

살얼음판 노동의 현장으로 발을 디뎌야 한다

 

누가 계급을 나누는가

우리는 모두 바닥이다

바닥을 딛지 않고 오르는 계단은 없다

노동의 등짝을 즈려밟고 오르는 자본이여

땀 냄새 나는 노동 없이 그대 존재할 리 없다

바닥은 무너지지 않는다

야만의 발길질은 결코 우리를 이길 수 없다

만신창이 몸을 질질 끌고서라도 기어코 가야 하는 저기

 

쓰러지는 모든 것은 바닥을 딛고 일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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