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의 진원지 시로 옮기는 장우원
[김미옥의 종횡무진]
지극히 사적인 독후감 한 편
오늘 병원에서 아주 이상한 경험을 했다.
복도에서 형제를 기다리며 시집을 읽는데 갑자기 진공상태에 있는 것 같았다.
마치 우주에 있는 듯 귀에서 웅 소리가 들렸다.
나는 시집을 덮고 처음 만나는 이질감의 근원을 생각했다.
*
당신을 위해 그런 게 아닙니다.//
모두 나를 위해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힘들어서/ 그래서 그렇습니다//
그러니 이제/ 편히 주무십시오//
꿈이 깨면/ 육신의 무게가 사라졌음 좋겠습니다.//
어머니
– 「요양 병원 침대맡 기도」 전문, 시집 『수궁가 한 대목처럼』 중
*
내가 태어난 게 아니고//
나의 아버지가 녹내장이 아니고/ 나의 큰형님이 녹내장이 아니고/ 거기에 췌장암도 아니고/ 나의 첫째 형이 녹내장이 아니고/ 나의 막냇동생이 녹내장이 아니고//
막 그랬다면,// 이를테면,// 이를테면!
– 「물려주고 싶지 않은 직계(直系)」 전문
여기까지 가족사의 고통으로 읽었다.
시집의 시는 점점 가족에서 세상으로 확대되어 노동자, 자본주의, 나의 정체성을 의문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몸을 깊숙이 담구고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대해 고통으로 때로 희망으로 노래한다고 생각했지만 표면적인 것일 뿐, 시인의 정체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
세상은 용궁과 같아서/ 제정신으로는 버티기 힘든 곳//
제정신으로 버텨야 하는 곳//
토끼 용궁 가듯/ 토끼 간 넣어 두듯/ 햇볕 잘 받는 창가/ 버티고 섰는 빨래 건조대에/ 나를 걸어두고 나아가야지//
나 없이 빈 몸으로 나왔어야지//
그럴 수 있다면/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토끼 간 찾으러 가듯/ 나를 다시 찾을 수 있다면//
토끼 용궁 빠져나가듯/ 반지하 한 움큼 빛을 따라/ 한 번쯤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제정신으로는 버티기 힘든 세상/ 토끼 간 꺼내 놓듯/ 나를 두고 나설 수 있다면
– 「수궁가 한 대목처럼」 전문
나는 시의 뒷면에 숨은 시인을 찾아내려 했다.
오늘 내가 병원 풍경을 진공 상태에서 바라본 것처럼 시인은 세상과 무관했다.
고통과 희망을 노래하지만 몸을 빼내어 저만치 떨어진 거리에서 세상을 직시하고 있었다.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 내내 시와 시인을 생각했다.
가로수 아래 차를 세우고 플라타너스 잎을 바라보다 『달과 6펜스』의 스트릭랜드를 찾아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태어날 곳이 아닌 데서 태어났다는 이방인의 마음으로 평생을 산다.
고향과 가족들에게도 낯선 곳에서 온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긴 거리도 자기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기가 아닌 어딘가 돌아가야 할 곳이 있다는 모호한 그리움.
어떤 사람은 우연히 그 곳을 발견하기도 하지만 영원히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시인이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움의 진원지를 시로 옮기는 것이다.
시인의 고향, 광활한 시의 우주에서 시어를 별로 더듬는 사람.
그래서 가족과 세상에 더 치열한 언어를 구사하지만 정작 자신은 떨어져 있는 사람.
존재하되 부재하는 이방인.
시 너머를 읽는 것은 시인을 읽는 일이다.
나는 쓸쓸했고 조금 슬펐다.
이상한 날이다.
시집을 읽다가 이런 생각이 든 건 처음이다.
시인 장우원을 알아봐야겠다.
문학뉴스, "그리움의 진원지 시로 옮기는 장우원", 김미옥 문예평론가, 2022.7.18
링크 : http://munhaknews.com/?p=66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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