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선 시인 “아픔 지닌 광주·제주는 제 마음 속 부채의식”
광주일보 신춘문예 출신
5월 희생자 추모 시집 ‘가슴에서 핏빛 꽃이’
제주 4·3항쟁 다룬 장편소설 ‘퍼즐’ 펴내
시인은 그달을 0월이라고 했다. 왜 0월이냐고 물었더니 “잘 기억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마도 “오래되었으나 지워지지 않은 기억의 파편”으로 남아 있는 듯했다.
시인에게 80년 5월은 특정할 수 없는 달이었다. 당시 그는 초등학생이었다. 어머니와 동네 아주머니가 주먹밥을 지어 트럭에 탄 아저씨와 형들에게 주는 모습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0월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당시 창문을 이불로 가렸는데 소리가 나갈까, 여린 숨소리도 아꼈지요. 그리고 소문으로 거리가 뒤숭숭해지자 우리 가족은 나주로 피난을 갔습니다.”
강대선 시인에게 그해 5월은 기억은 희미하지만 잊히지 않는 시간이었다. 총에 맞아 벌집이 된 자동차와 선명한 총알자국은 의식의 저변에 여전히 남아 있다.
강 시인이 이번에 5월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는 시집을 펴내 눈길을 끈다. 또한 시집과 함께 제주 4·3을 다룬 장편소설 ‘퍼즐’(푸른사상)도 동시에 출간했다. 도서출판 상상인의 5·18 추모 기획특집으로 발간된 시집 ‘가슴에서 핏빛 꽃이’는 5월을 ‘0월’로 대체해 오늘의 시간으로 불러낸다. 소설은 4·3의 진실을 기억하고 억울하게 죽어간 망자를 위로하는 데 포커스를 맞췄다.
광주일보 신춘문예(2019) 출신이기도 한 그는 다재다능한 문인이다. 시 외에도 시조와 소설에까지 영역을 넓혀 창작활동을 펼치고 있다. 광주일보 신춘문예 등단에 앞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조로 등단했다. 지난해에는 송순문학상 우수상에 소설이 당선돼 작가로서도 역량을 검증받았다.
“시간을 내 틈틈이 창작을 합니다. 재능이 많은 게 아니라 없어서 노력을 한다는 게 맞을 겁니다.”
‘부지런한데다 문학적 재능도 많다’는 말에 그는 “전혀 그렇지 않다. 과찬이다”며 자신을 낮췄다. 국어교사이기도 한 그는 언제 봐도 반듯하면서도 진중한 모습이다.
“글을 써 오면서 내가 숨 쉬고 사는 공간과 시간을 고민했습니다. 광주와 제주는 이 세상에 태어나 많이 듣고 자란 그리고 많이 가본 곳이기도 하구요. 두 지역은 5·18민주항쟁과 4·3 항쟁이라는 아픔을 지니고 있는데 부채의식처럼 늘 제 의식 속에 남아 있었습니다. 언젠가 이 두 사건을 모티브로 창작을 해야겠다고 약속을 했었죠.”
그가 시집과 장편소설을 발간하게 된 이유다. 작가에게, 시인에게 특정한 사건이나 기억은 중요한 기제가 된다. 과거에는 몰랐지만 오랫동안 잠재돼 있다가 ‘발효과정’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창작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는 어린 시절 피난을 떠났다가 돌아와 다락방에서 혼자 놀았던 시간을 희미하게 기억한다. 밖은 두려운 공간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고등학생이 된 후 농성동 성당에서 ‘광주 5·18’ 비디오를 봤다. 너무 충격적이어서 내내 울었던 기억이 있다.
이번 시집은 5·18기념재단에서 간행한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에 나온 희생자 증언을 시로 엮었다. 또한 2014년 열린 ‘그해, 오월전’의 내용도 참고했다.
“이 시집을 통해 패배하지 않은 정신을 말하고 싶었어요. ‘0’이라는 숫자에 총소리, 구멍 난 가슴, 울음, 공동체, 망월, 광주, 역사, 진실, 희망을 담고 싶었습니다. 손에 손을 잡고 하나가 되어 도는 강강술래이기도 하고 환한 보름달이기도 하고 혼을 그리는 풍등이기도 하죠.”
“바람이 불어오면 노를 저어가자/ 바람의 노를 저어 서러운 혼들에게 바삐 가자/ 이름조차 없이 사라진 혼들이 또 얼마인가/ 바람에 혼을 싣고 망월동으로 넘어가자/ 죽음을 먹고 권력을 쥔 그날의 총성은/ 0월의 하늘을 흔들고 있건만/ 죽음은 죽음으로 흘러가고/ 이 땅에는 다시 오월의 꽃이 피어난다…”(‘80년 0월’ 중에서)
작품의 지향점은 결코 패배하지 않는 광주의 정신에 닿아 있다. 시인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떠올린다. ‘인간을 파멸시킬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 않는다’는 말을 빌어 “광주는 패배하지 않았다”고 단언한다. “불의의 신군부에 물러서지 않았던 광주의 정신은 올곧은 정신으로 우뚝 서 있다”며 “광주는 깃발”이라고 강조한다.
그런 점에서 소설 ‘퍼즐’도 동일한 맥락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진실을 직시함으로써 내일로 나아가는 것, 그리고 이 바탕 위에서 용서와 화해의 지점을 발견하자는 것이다.
“1948년 이땅에 좌우의 대립이 극심했던 시절 제주에서는 수많은 민간인들이 억울하게 희생을 당했습니다. 이번 소설은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의 기억을 퍼즐 조각처럼 나열해가며 한국 현대사에 깊은 상흔을 남긴 4·3의 참상을 증언하지요.”
교직생활을 하며 글을 쓰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그는 짜투리 시간을 잘 활용한다. 학생들에게도 그렇게 말한다. 특별히 문학을 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는 많이 놀 것을 권유한다. “많이 놀기는 하되 돌아와서는 글로 남기는 습관을 들이라”고 조언한다.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고 글로 남기면 나중에 그 글에서 “움이 트고 잎이 나고 가지가 뻗고 한 그루의 나무가 되는 모습”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향후 계획은 “좀 더 내적인 부분을 더 충실히 채우고” 한발 물러서서 관조를 할 참이다. 많이 쓰고 공부해서 내적인 힘을 키우겠다는 의미다.
광주일보, "강대선 시인 “아픔 지닌 광주·제주는 제 마음 속 부채의식”", 박성천 기자, 2022.1.24
링크 : http://www.kwangju.co.kr/article.php?aid=1643020800732777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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