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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간행도서

박설희 시집, <가슴을 재다>

by 푸른사상 2021. 11. 10.

 

분류--문학()

 

가슴을 재다

 

박설희 지음|푸른사상 시선 150|128×205×8mm|144쪽|10,000원

ISBN 979-11-308-1832-0 03810 | 2021.11.10

 

 

■ 도서 소개

 

창공을 날며 존재들의 삶을 노래한 아름다운 시편들

 

박설희 시인의 시집 『가슴을 재다』가 <푸른사상 시선 150>으로 출간되었다. 날개를 단 새들이 창공을 날며 너른 세상을 탐사하듯 시인은 이 세계에 존재하는 것들을 포착해서 탐구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곳에서 온 힘을 다해 움직이는 존재들의 충만한 삶을 노래한 시인의 시편들은 선하고 의지적이면서도 그지없이 아름답다.

 

 

■ 시인 소개

 

박설희

강원도 속초에서 유년을 보내고 2003년 『실천문학』 신인상을 받으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쪽문으로 드나드는 구름』 『꽃은 바퀴다』가 있다.

 

 

■ 목차

 

제1부

부리 / 모든 곳에서 / 벽이 온다 / 거미박물관 / 눈깔사탕 딜레마 / 꽃 / 접는 중 / 호모 케미쿠스 / 섬에서의 대화 / 다시 벽이 온다 / 대피소에서의 잠 / 회식 / 돌멩이에게도 입이 있다 / 오월 / 휘파람

 

제2부

숙희 / 첫물 / 한 걸음 / 선감도 / 지구에서 아주 잠깐 / 모란공원에서 / 망명자 / 아이야, 네 손에 /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 낯선 집 / 사월 / 아득한 그리움은 꽃으로 피어나고 / 위기 / 새 / 사과를 베어 물다 / 있어요

 

제3부

안부 / 실눈을 뜨다 / 여신들 / 가슴을 재다 / 폐사지에서 별 보기 / 구름교차로 / 361로(路) / 스위치 / 한탄강에서 / 세류천 / 사회적 거리 두기 / 이런 말 / 물의 가족 / 그 자리 / 저수지

 

제4부

잔도 / 이 자리에서만 보이는 것이 있다 / 제비 풍속 / 꿀샘에 이르는 길 / 바람 소리 / 구름, 비, 나무 / 37.5 / 홍시 / 늦가을 / 손들 / 무용수 / 거미 / 애완돌 / 새

 

작품 해설 : 세상에 묻힌 온몸, 시의 세계-박수연

 

 

■ 시인의 말

 

대지에 깊이 팬 상처들

아물지 않는 가슴들

어둠이 어둠을 삼키는 동안

덩굴처럼 이야기들이 자라나

계속되는 푸른빛

날마다 무언가를 구하는 가난한 하루가

또 시작되고

때때로 배반하지만

여전히

그리운 땅

그리운 사람들

그리고 어머니……

 

 

■ 작품 세계

  

박설희의 시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두 개의 대비적 세계이다. 세계는 대립하거나 대조적인 것들로 대비되고, 대비되기 위해 연결되며, 연결되면서 변화한다. 시인이 염두에 두었을 시집의 전체 구성이 이미 그렇다. 첫 시 「부리」는 하늘을 나는 새를 소재로, 그 새의 형상을 그려놓고, 두 번째 시 「모든 곳에서」는 새의 탄생과 성장을 그려놓는다. 시집의 마지막 시 또한 「새」이고 그 앞의 시는 바로 세계의 모든 곳에서 굴러다닐 사물이자 읽는 사람에 따라서는 새의 비유로 읽히기도 할 「애완돌」이다. 처음과 끝이 이렇게 연결되고 대비된다. 이 양편의 시편들이 포괄하는 저 안쪽에 ‘새’의 무수한 표현이 있을 것이다. (중략)

시는 이 평범함과의 싸움일 수밖에 없다. ‘모든’으로 지칭되는 세계와 사물들의 모습에서 그 ‘모든’을 특별하게 만드는 무엇인가를 하나하나의 형상으로 발견해야 하기 때문이다. 개별적인 언어를 찾아 모든 모험을 감당하는 일이 시 쓰는 일일 텐데, 박설희의 시집이 짊어진 숙제는 이 ‘모든 것’에 대한 특별한 형상 부여일 것이다. 어떻게 이 세계의 ‘모든’ 것의 의미를 평범하지 않게 구성할 수 있는가가 그것이리라.

그가 시집의 두 번째 시 「모든 곳에서」에서 새의 탄생과 성장이 이루어지는 장소를 세상의 모든 곳이라고 말했을 때, 시의 제목은 ‘모든’의 의미 바로 그것을 따라서 세상의 특별한 곳이 아닌 모든 장소를 환기한다. 시인의 시선에 포착된 모든 장소가 새가 자라는 곳이라는 뜻이다. 해석을 확장하는 예민한 독자들은 세상의 모든 것이 새와 관련된 사물이거나 사건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예를 들어 세 번째 시 「벽이 온다」는 “공중을 더듬으며 길 찾는 목숨들”이라는 비유로 새를 노래한 것일 수도 있고, 「대피소에서의 잠」과 같은 시는 벼랑과 낭떠러지 직전의 둥지에 몸을 숨긴 새의 안식을 표현하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해석이 과한 것일지 모르지만, 이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사람이 바로 시인 자신이다. 서시와 결시가 모두 새를 소재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집은 꿈과 좌절, 희망의 비애와 절망의 일반성이 펼쳐지는 모든 장소가 새의 형상과 이어지는 광경들을 모아놓은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중략)

별을 보는 순간이 시가 탄생하는 순간이라고 독자들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의 비밀을 볼 때 우리는 새가 탄생하여 비상하는 모습을 본다. 그것은 추락과 비상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존재를 보는 것이며, 땅속 깊은 종소리와 함께, 그 종소리의 모습으로 별 하나가 가슴에 박히는 순간을 경험하는 것이다. 박설희의 시집은 이 모든 비밀로 시가 탄생하는 순간을 노래한 비유들의 성채이다.

- 박수연(문학평론가) 해설 중에서

 

 

■ 추천의 글

 

박설희의 시편들은 대체적으로 염결하고 유연하다. 이는 그가 현실과 사물들을 통하여 세상사의 신산함을 말하기도 하지만 그것들을 존중하고 위무(慰撫)하는 정신의 깊이와 함께 언사의 품격을 견지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시인은 시 속에 자신을 숨기려 하지 않는다. 그 역시 시정의 평범한 갑남을녀의 한 사람으로서 구체적 삶의 굴곡에 몸을 맡기기도 하지만 “그 작은 날개로/제트기류와 난기류, 돌풍을 헤치고/태풍보다도 멀리”(「제비 풍속」) 가고자 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시집 근저를 관류하고 있는 역사 인식 또한 그의 시적 정처를 말해주기도 한다.

한편 시인은 시적 대상들에 대하여 쉽사리 호오를 내비치거나 판단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독자의 몫이다. 그것이 박설희 시인의 시가 가진 흡인력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시인은 돌멩이에도 입이 있음을 알리는 사람이자 약하고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을 위로하고자 하는 사람이며 궁극적으로는 불편하고 외로운 세상을 함께 살고자 하는 사람이다. 그것이 그의 시적 의지의 선함일 것이다.

한편 “파스처럼/어깨에 내려앉는 나뭇잎”(「늦가을」) 같은 고전적 감각의 효과를 함께 즐기는 것도 특별하지만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라고 호소하는 정지용의 처연한 식민지 향토성을 넘어 “시를 받는 달 시월, 일 년 내내 시월”(「홍시」)을 데리고 돌아오는 문자적 상상력을 만나면 길이 환해지고 즐거워지기도 한다. 이러한 여유와 에돎이 그의 시편들이 결코 가볍지 않은 내용들을 담고 있음에도 무겁게 다가오지 않는 이유들일 것이다.

― 이상국(시인,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 시집 속으로

 

부리

 

바람을 입는다

두 눈에 해를

가슴에 달을 품고

 

맨 앞에 내세운 부리

끝이 닳아 있거나 금이 가 있거나

그것은 집 짓고 사냥하고 깃털 고른 흔적

 

그 속에 감추어져 있다

찻잎 같은 혀

그리고 공룡의 포효보다

야무진 침묵

 

발을 뒤로 모으고

허공을 가로지를 때

 

앞세운다,

제 존재가 무엇보다 크고 귀중하다 일러주는

따뜻한 부등호

 

 

가슴을 재다

 

브래지어 사러 왔는데 치수를 잘 모르겠다고 했더니, 눈대중으로 얼추 비슷한 치수의 것을 들고 성큼 일어선다

 

양팔을 들게 하고 브래지어로 내 가슴 치수를 잰다 나도 모르는 내 가슴의 치수를 잰다 줄었다 늘었다 어떨 땐 콩알만 했다 어떨 땐 듣도 보도 못한 공간으로 휙 날아가 버리는 내 가슴을 잰다 내 가슴 크기를 나보다 더 잘 안다고 한다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며 사양해보지만 막무가내, 평생 누군가를 먹이고 입히느라 살가죽에 가까워진 젖가슴으로 당당히 서서 내 가슴 크기를 잰다 당신 가슴은 얼마라고 숫자를 댄다

 

황송히 그 숫자를 받아들고 아, 내 가슴이 이만하구나 그런데 큰 건지 작은 건지 기준치를 몰라 쩔쩔매다가 생각해보니 가슴 크기의 평균이 뭐가 중요하랴

 

내게 딱 맞는다며 자신 있게 내미는 브래지어를 웃음으로 받아 들고 돌아서려는데 주변 노점에서 지켜보고 있던 수원 남문시장의 가슴들이 다들 깔깔 웃는다 빈 가슴으로 웃는다 비워서 충만해져서 웃는다

 

 

애완돌

 

돌멩이를 길들이려면

특수한 명령어를 사용해야 한다

앉아

기다려

굴러가

그리고 잘했다고 쓰다듬어줄 것

 

여행 갈 때마다 주워온 돌멩이들에 이름을 붙여준다

보봐리, 개츠비, 라스콜리니코프……

 

항아리 속 오이지를 라스콜리니코프로 지그시 누른다

사랑에 눈이 먼 개츠비는 장식장 위에 얹어둔다

목마른 보봐리는 어항 속 열대어의 쉼터가 되라고

 

반항을 꿈꾸는 돌멩이

꿈까지 통제할 수는 없는 일

 

수면을 스칠 듯 말 듯 통통통 건너가거나

날개를 달고 새처럼 창공을 날아가는

화려한 지느러미 달고 물속을 탐사하는 꿈

 

떠오르는 햇살에 말갛게 씻긴 돌멩이에게 새로운 명령을 내린다

오늘은 굶어,

침묵하고

왜 그러느냐는 듯 빤히 쳐다본다

 

매일 아침 미지의 문 앞에 서 있는 돌멩이와

여전히 동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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