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문학(시)
강으로 향하는 문
김금분 지음|134×205×14mm(하드커버)|144쪽|12,000원
ISBN 979-11-308-1829-0 03810 | 2021.11.1
■ 도서 소개
서정의 샘에서 길어 올린 고향 시편들
김금분 시인의 네 번째 시집 『강으로 향하는 문』이 푸른사상사에서 출간되었다. 시인의 근원이자 서정의 샘인 춘천에서 길어 올린 고향의 정서가 이 시집의 저변에 흐르고 있다. 춘천의 인물과 역사, 자연을 체험할 뿐 아니라 근대화의 물결로 인해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회한과 그리움을 노래해 감동을 준다.
■ 시인 소개
김금분
1955년 춘천에서 태어나 1990년 『월간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한림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국민포장, 여성가족부장관상, 한국예총공로상, 강원문학상, 강원여성문학상 대상을 받았다. 김유정문학촌장, 강원예총 수석부회장, 강원도의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사)김유정기념사업회 이사장, 춘천글소리낭송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으로 『화법전환』 『사랑, 한 통화도 안되는 거리』 『외로움이 아깝다』 등이 있다.
■ 목차
제1부
아이라인 / 춘천, 무진 / 아, 윤희순 / 춘천, 김추자 / 소양강 처녀상 / 춘기계심순절지분(春妓桂心殉節之墳) / 선물이 무덤 / 아침못 / 춘천, 하롱베이 / 언덕배기 움막집 / 춘천역 / 춘천, 공무도하가 / 가마우지와 버드나무 / 갈밭둥지 / 해바라기 / 강으로 향하는 문 / 낙엽은 지는데 / 구봉산
제2부
고립 / 촛불 / 흑백 / 움파 / 낭만파 / 몸, 눈사람 / 기름값 / 명랑한 이유 / 풀무, 쇳물 소리 / 일자(一字)집들 / 땡땡이 무늬 / 장삿집 메뉴 / 연엽(蓮葉) / 은수천(銀水川) / 꽃다지 / 산새
제3부
앰뷸런스 / 모종 / 어린 가을 / 길눈 / 세월 양장점 / 코의 힘 / 꽃사태 / 은종 / 그대여 / 겨울비 / 산국(山菊) / 입동 / 화목원 팥배나무 / 베개 / 말랑말랑 구두 / 코로나 19, 시(詩)
제4부
생강나무 이파리로 제의를 지어 입고 / 마을회의 / 우화(寓話)-붕새 / 곡(哭), 웃음이 터졌네 / 고추장 / 못 버리는 일 / 농담계(弄談契) / 구부정한 법 / 역지사지 / 맨드라미 / 작은 똥 / 그냥 / 5대 5의 불평등 / 도마뱀
작품 해설 : 잃어버린 근원, 그 현재화에 대한 감각_ 송기한
■ 시인의 말
애증으로 심하게 다툴 수 있는 사물들아,
사람들아,
살아 있었구나
그 틈바구니에서 생성되는 노함과 용서는
무미건조한 시대를 들끓게 하였다
오래 바라보니 그래, 내 말이 그 말이다
집 밖에 나가기 주저하는 시(詩)가 채비를 차렸다.
별다르게 모양을 내지 않아도 흉 될 게 없는
그쪽을 만나러 가기 위해서다.
춘천에서 출발해서 내 시가 있는 춘천으로 돌아온다.
■ 추천의 글
시집 『강으로 향하는 문』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내 경우에는 ‘그윽함’이다. 특정한 한 장소에 머물러 있다 하여도 머무르고 있는 것은 공간이지 시간은 아니다. 연필 깎듯, 삶에서는 마음에서 조금씩 버려지는 것들이 있고 또한 그럼으로써 드러나는 연필심의 향내도 있다. 이 시집에는 그런 흑과 백의 대립이 아닌, 하나로 서로 닮아가고 물들어가는, 거스르지 않는 포용의 아름다움이 있다. 관조의 조바심 없음도, 성찰의 투영으로 인한 냇물의 보드라움도 있다. 철학이라는 거창한 말은 여기에 어울리지 않는다. 철학은 단지 마음의 하위개념일 뿐이다.
- 최계선(시인)
■ 작품 세계
이 시인의 작품 세계의 근본 특색 가운데 하나는 감성적이라는 점이다. 시인의 시집을 읽으면 금방 알 수 있는 것처럼, 시인의 작품들을 지배하고 있는 정서는 센티멘털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서정시가 일인칭 자기표현의 양식임을 감안하면, 이런 서정적 지배소들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상재하는 『강으로 향하는 문』도 지금껏 시인이 보여주었던 그러한 정서의 흐름으로부터 비껴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시집을 지배하는 정조역시 센티멘털한 감수성으로 물들여져 있는 까닭이다.
하지만 『강으로 향하는 문』에는 이전의 시집에서 볼 수 없었던, 분명 새로운 인식적 지반이 펼쳐져 있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무엇보다 시인이 응시하는 정서가 긍정적인 것들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까닭이다. 이전과 이후를 구분하는 작품 세계들의 인식성의 지표는 고향이라는 정서, 보다 구체적으로는 시인의 실제적 고향인 ‘춘천’에서 찾아진다. 고향이란 흔히 통합의 정서, 완결된 정서를 구현하는 까닭에 어떤 부정의 감수성이 들어올 틈이란 게 애초에 차단되어 있다. 따라서 『강으로 향하는 문』에서 읽혀지는 정서의 긍정적인 효과는 모두 이 고향이라는 지역성과 밀접히 결부되어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중략)
김금분의 시들은 고향이라는 절대적 공간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곳은 시인의 동일성과 자신의 영원한 꿈이 깃들어 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공간마저도 근대의 어두운 단면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그리하여 시인은 그 잃어버린 낙원을 자신의 정서 속에 지우지 못하고 계속 회고의 정서를, 그리움의 정서를 표명해 내었다. 잊지 않기 위해서는 무의식 속에 갇혀 있었던 흔적을 발견해 내고, 이를 끊임없이 환기시켜야 했다. 그 속에서 시인은 내밀한 상처를 치유하고, 미래를 향한 새로운 동력을 확보하고자 했다. 활활 타오르는 촛불 속에 자신을 무화시켜 가면서 새로운 인식지대를 만들어내고자 했던 것이다. 그 노력의 표현이 『강으로 향하는 문』의 기나긴 서정의 도정이라 할 수 있다.
- 송기한(문학평론가) 해설 중에서
■ 시집 속으로
춘천역
춘천 근화동 자취방에 경춘선 기적 소리 멈춘 적 없다
입석 버스 십 원 아끼려고 교동3 6번지까지 걸어 다닐 때
친구와 나는 그 기차를 타본 적은 없다
역 광장까지 가서도 상행선 기차표를 끊지는 못했다
함께 자취하는 친구는 왕국회관 파수대 시험공부에 푹 빠져들고
나는 기말고사 범위 안에서 몇 밤을 뱅뱅 돌았다
잠을 쫓기 위해 춘천역까지 달리기하던 한여름 밤,
윗동네 홍등가에서는 홀딱 벗은 불빛이 으시시 겁을 주고
미군부대 서치라이트는 빠른 물레방아처럼 돌고 있었다
딱정벌레 같았던 자취집은
명 질기게 버텨서 아직도 허물어지지 않았는데,
진학 상담 없이 졸업을 하고 친구는 소식이 끊겼다
비둘기, 통일호, 무궁화호 다 사라지고
청춘열차 ITX 으스대고 내달리지만
상경에 서툴렀던 여고 시절만큼이나
춘천역 개찰구는 여전히 낯설고 아득한 이정표다
한 칸 방 기차에 세 들어 살았던 근화동,
덜컹덜컹 닳아 없어진 미군부대, 난초촌, 옛 춘천 역사
기억의 철길 따라 반사되는 춘천의 낯익은 이름들이 귀청을 울린다
강으로 향하는 문
북한강과 소양강이 만나
낮고 푸른 곳으로 머리를 두고 흐르는 강
인생의 물결처럼 안으로 깊게 출렁인다
어디로 간다 눈짓도 없이,
그곳으로 가는 경계가 여기 있다
강으로 향하는 문!
안과 밖이 꽃처럼 통하고 나와 그대가 차 향기로 소통하는 곳
이 문은 희망과 사람이 마주 보는 거울
열어도 보이고 닫아도 보이는 문
세월 양장점
옷 사는 일도 큰 노동이다
고르고 걸쳐보고 맘에 들 때까지 몇십 년
아까워서만은 아니다
내가 선택한 무늬와 디자인의 한철 유행
걸어만 두고 내다 버리지 못한 까닭은
내 몸의 오랜 기억과 그때 시간의 간이역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장소를 떠올릴 수 있어서다
그런 것들만 남겨두기로 한 것인데
맘에 들지 않았던 옷도 지나고 보면 입을 만하고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옷들끼리 걸어놓기도 한다
묵은 옷장은 육신의 그림책이자 역사서
걸치고 풍미했던 길목마다 푸릇한 습작 시가 폼을 잡고
헐렁한 단추 조이며
옷의 전성기를 암호화한다
휘날리던 머플러 자락,
바람결에 스쳐간 촉감들이 살아나기도 한다
계절이 바뀔 때 입었다 벗었다
혼자 하는 패션쇼,
길거리에 나가지 않아도 만날 수 있는 사람들
젊은 날 어깨 뽕이 살아 있는 옷장 속 세월 양장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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