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푸른사상 미디어서평

[경북일보] 박인환, <선시집>

by 푸른사상 2021. 8. 17.

 

국내 모더니즘 시 운동 주도 박인환 ‘선시집’ 복간본 출간

 

‘木馬와 淑女’


‘한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바아지니아·울프의 生涯와

木馬를 타고 떠난 淑女의 옷자락을 이야기 한다

木馬는 主人을 버리고 거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傷心한 별은 내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少女는

庭園의 草木옆에서 자라고

文學이 죽고 人生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愛憎의 그림자를 버릴때

木馬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 때는 孤立을 피하여 시들어 가고

이제 우리는 作別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女流作家의 눈을 바라다 보아야 한다

……燈臺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거저 간직한 페시미슴의 未來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木馬소리를 記憶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거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意識을 붙잡고

우리는 바아지니아·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한다

두개의 바위 틈을 지나 靑春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잔의 술을 마셔야한다

人生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雜誌의 表紙처럼 通俗 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木馬는 하늘에 있고

방울소리는 귓전에 철렁 거리는데

가을 바람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매어 우는데’



한국 모더니즘 시 운동을 주도한 박인환 시인의 첫 시집이자 생전에 발간된 유일한 시집인 박인환 ‘선시집’이 푸른사상사에서 복간본으로 출간됐다. 시집이 간행된 지 66년 만에 그 모습 그대로 생생하게 만나볼 수 있다. 온몸의 언어로 노래한 시인의 작품들에서 해방기와 한국전쟁을 겪은 시대인들이 겪은 불안과 상실감과 허무함의 체취를 함께 느낄 수 있다. 현대 독자를 위한 맹문재 시인(안양대 교수)의 ‘시어 풀이’를 첨부해 어려운 시어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경북일보, "국내 모더니즘 시 운동 주도 박인환 ‘선시집’ 복간본 출간", 곽성일 기자, 2021.8.5

링크 : https://www.kyongbuk.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80788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