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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사상 미디어서평

[문학뉴스] 이철, <단풍 콩잎 가족>

by 푸른사상 2021. 7. 5.

 

독자 억장 무너뜨리는 정직한 시인 이철


아버지가 있는 詩
 
내게 오는 시집은 거의 시인의 첫 작품이다.
시집은 시인의 피 묻은 자서전이란 생각을 한다.
만 원도 안되는 한 권의 시집에 시인의 전 생애가 담겨있을 때 독자로서 비애가 생긴다.
삶의 전환점마다 옹이가 진 언어를 고르면서 시인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
암포젤M 으로 몇 년을 살다가/ 제초제로 생을 마감한/ 아버지를 뒷산 살구나무 아래 묻고/
형과 누나와 나와 어머니와/ 우리는 그렇게 몇 달을/ 콩잎 가족으로 살았습니다/
이제 집에는 선반 위 그 하얗게 달던/ 아버지의 암포젤 M도 없고/ 아버지 윗도리 속의 세종대왕 백 원도 없고/ 찬이라곤 개다리소반 식은밥 곁에/ 돈다발처럼 포개진 삭은 콩잎/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발술을 대면/ 가만히 몸을 누이던/ 단풍 콩잎 가족
–  이철, 「단풍 콩잎 가족」 전문,  시집『단풍 콩잎 가족』

 

콩잎을 먹어본 적이 있는가?
나뭇잎처럼 거칠고 질긴 가을 콩잎을 먹는 방법은 소금물에 삭히는 것이다.
‘경상도 넘들 참 불쌍하당게, 아, 오죽 먹을 게 없었으모 콩잎을 다 먹더랑게.’
콩잎은 경상도 지방의 가난한 밑반찬이었다.

누런 단풍 콩잎밖에 먹을 것이 없었다면 지독한 가난이다.
아비가 스스로 절명한 후 지어미와 자식은 어떻게 살았을까.
콩잎을 물리듯 가난을 물릴 수 있었을까.

 


*
바삐 걸어가는 내 머리 위로 새로 산 양복 어깨에/ 새의 똥을 맞은 경험이 있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그런 일이 있었다/ 그 새도 나처럼/ 어디로 바쁘게 향하는 중이었을 것이다/ 그것도 질퍽한 물똥이었으니/ 나만큼 긴장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알 리 없는 상사는/ 결재 서류 뭉치로 내 머리를 내려치며 말했다/ 새대가리/ 나는 깃털을 줍듯/ 땅바닥에 흩어진 서류를 주워 상사의 방을 나왔다/ 사실 내 머리 정수리 근처에는/ 손가락 두 마디 길이의 큰 상처가 있다/ 나는 그때 엄마 무릎에서 젖을 빨고 있었는데/ 술 취한 아버지가 던진 나무 재떨이에/ 정통으로 맞은 것이다/ 놀란 할머니가 장독에서 된장을 한 술 발라주었다 한다/ 그래도 오늘은 올해 들어 최고로 일찍 마친 날이다/ 어깻죽지에 부족한 서류를 끼고서/ 사람들 틈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서편 하늘로 기러기 가족이 날아간다/ 모두 일곱이다
– 「새똥과 된장」 전문

시인이 몸으로 시를 쓰고 있다.
힘없던 어린 날 가족의 폭력도 몸으로 받았고 어른이 된 지금도 몸으로 받고 있다.
일찍 마친 하루라고 안도하며 내게 일곱 식구가 있다고 생각하는 시인에게서 이 시대의 가장을 본다.
자존심을 다치고 복수의 날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그가 나의 긴장을 알 리 없다고 생각한다.
언어의 유희도, 현란한 말장난도 없이 시인은 소처럼 유순한 눈을 껌벅거린다.
투박하고 정직한 생의 기록 같은 시를 만나면 독자는 억장이 무너진다.

 
*
아버지는 니기미러! 입에 달고 살았다/ 지금의 나보다 다섯 살이 적은 겨울 초입/ 아침 밥상머리에서 자살할 때까지/ 아버지는 니기미를 게거품처럼 입에 물고 다녔다/ 풍년 든 들판 허수아비 바라보며 니기미/ 언 대동 경운기 대가리에/ 뜨건 물 한 바가지 부어주며 니기미/ 그 니기미 한마디에/ 소 판 돈 떼먹고/ 서울로 난 친구 놈도 용서하고/ 손바닥에 퉤 가래침 뱉고/ 녹슨 조선낫 갈아 쥐고/ 니기미 니기미 오르던 뒷산/ 배를 쓸며 암포젤M을/ 니기미처럼 입가에 묻히고는/ 아까시 뿌리와 조석으로 싸우던 아버지/ 죽여도 죽여도 오뉴월/ 아버지의 아버지 무덤 위에 니기미로 핀/ 아까시꽃 들판에 기어이/ 학생광주이공휘종판지묘로 누워 계시다
– 「아버지와 니기미」 전문

이 시를 읽으면 시인의 가족이 보인다.
선한 이들은 남한테 싫은 소리 못하고 부당한 행위에도 자신이 잘못했다고 자책한다.
운명에 순응하면서 억울함이 치밀면 공격의 대상은 자신이 된다.
자해하듯 자신의 운명에 욕설을 퍼붓던 아버지는 식구들이 보는 앞에서 자살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삶은 곧곧했다.
시인의 말을 빌리면 주름마저 정장이었다.

 *
나는 아버지가 구겨지는 것을 딱 한 번 본 일이 있다/ 부면장집 대문 앞에서 아들의 등록금을 구걸하는/ 풀 죽은 정장을 본 적 있다 
– 「서울의 달」 부분

갈수록 세상은 겨울인지라/ 아버지는 국밥을 좋아했다/ 국밥보다/ 국밥 가득 피어나는/ 사람들의 입김을 좋아했고/ 국밥보다 더 따뜻한 사람들의 손을 좋아했다 
– 「아버지의 국밥」 부분

시인의 아버지는 술과 사람을 좋아하는 선량한 가장이었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병든 몸과 사람들의 배신을 벗어날 순 없었으리라.
시인은 계약직으로 기간제 직원으로 가족을 부양하며 아버지보다 오래 살고 있다.
이 시집 『단풍 콩잎 가족』의 많은 시가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우직하고 정직한 시어의 사이사이 눈물이 그렁한데 넘치진 않는다.

 
*
연말 시인 모임에 갔었습니다/ 가히 물 반 고기 반이었습니다/ 시상이 있었고 시국 성토가 있었습니다/ 밥과 술이 오갔고 사이사이 안주처럼/ 욕새과 삿대와 시비가 있었습니다/ 그런 중 점잖은 한 분이 중심을 잡고/ -시인은 시로써 말하는 겁니다/ 그러자 냉큼 그 말씀 불태우며/ – 저런 개새끼, 시인은 삶으로 말하는 거야/ 나는 여태 저런 새끼로 살았습니다
– 「달팽이 6」 전문

 
아버지의 ‘니기미’를 닮지 않았는가.
타인에게 욕하는 듯 결국 자신에게 향하는 ‘개새끼’는 시인의 시에 대한 결기를 보여 준다.
생의 비애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건 내 의지가 아니지만 시는 나의 의지다.
그렇다면 이철 시인은 이 시집 한 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첫 시집은 가족으로 시작했지만 분명 생의 비애를 넘어 새로운 세계를 보여줄 것이다.
현란한 언어의 유희가 아닌 정직한 삶의 시어로 몸이 쓰는 시도 있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이 시집에서 시인은 열두 편의 달팽이로 자신을 그리고 있다.
눈여겨보자. 이철 시인이다.

 

문학뉴스, "독자 억장 무너뜨리는 정직한 시인 이철", 김미옥, 2021.7.5

링크 : http://munhaknews.com/?p=48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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