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문학(산문)
당신이 있어 따뜻했던 날들
최명숙 지음|푸른사상 산문선 37|147×217×13 mm|216쪽
16,000원|ISBN 979-11-308-1767-5 03810 | 2021.2.1
■ 도서 소개
작은 기억의 알갱이, 그 그리움의 온기를 찾아
최명숙 작가의 산문집 『당신이 있어 따뜻했던 날들』이 <푸른사상 산문선 37>로 출간되었다. 저자는 유년 시절에 포근한 온기를 남겨주고 떠난 삼촌에 대한 그리움을 기억의 갈피에서 꺼내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가난한 살림과 가장이라는 부담 속에서도 무한한 사랑을 주었던 삼촌과의 갖가지 추억은 독자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준다.
■ 작가 소개
최명숙
충북 진천에서 태어났으며, 가천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석사 및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화작가 및 소설가로 활동 중이며, 가천대학교 한국어문학과에서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 『21세기에 만난 한국 노년소설 연구』 『문학콘텐츠 읽기와 쓰기』, 산문집으로 『오늘도, 나는 꿈을 꾼다』, 공저로 『대중매체와 글쓰기』 『꽃 진 자리에 어버이 사랑』 『문득, 로그인』 『여자들의 여행 수다』 등이 있다. (E-mail : sowoon823@hanmail.net)
■ 목차
작가의 말
제1부 구운 감자
막차를 타고 / 원조 조카바보 / 그 말, 한마디 / 가끔 속아주는 아량도 / 구운 감자 / 연필 세 자루 / 삼촌, 또 노름하러 가? / 뱀, 먹을 수 있어? / 새끼돼지 / 싸움대장
제2부 저 하늘의 별이라도
탁상시계 / 개구리와 미꾸라지 / 저 하늘의 별이라도 / 뭐가 돼도 될 아이 / 무엇에 홀린 듯 / 고추장 한 항아리 / 턱수염과 다리털 / 자존심을 닮았다 / 행랑채 / 깎은 밤같이
제3부 무슨 꿈이 있었을까
산비탈 따비밭 / 허세일까, 배짱일까 / 혼수이불 보따리 / 남긴 밥, 한 숟가락 / 무슨 꿈이 있었을까 / 맞선 보던 날 / 형부 눈이 빨개서 / 제일 많이 웃은 때 / 작은엄마와 존댓말 / 장터에서
제4부 따사로운 햇볕으로
풀잎의 이슬 / 손자국 / 그, 하나밖에 없는 친구 / 바람 불고 추운 세상에서 / 따사로운 햇볕으로 / 또, 이별 / 막연한 기다림 / 나들이 / 목숨 값으로 산 땅 / 기억의 문을 열면
■ 출판사 리뷰
최명숙 작가의 『당신이 있어 따뜻했던 날들』은 유년 시절 아낌없는 사랑을 주었던 삼촌과의 애틋한 추억이 담긴 책이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읜 삼남매에게 삼촌은 아버지와도 같았으며 고단한 삶의 골짜기를 건널 수 있는 힘을 길러준 조력자이기도 했다. 가장이라는 무게를 짊어지고 형 없는 형수와 조카 셋, 어머니까지 책임져야 하는 가난한 삶 속에서도 따뜻한 미소를 지어주었던 삼촌. 저자는 낡은 사진첩을 넘기듯 삼촌과의 추억을 한 장 한 장 기록한다.
일찍 세상을 떠난 형이 남긴 가족들을 책임지게 된 젊은이의 삶은 힘겨웠다. 남의 땅을 소작하는 것으로 다섯 식구를 먹여 살리기에 역부족이어서, 그는 때로 노름판에서 헛된 꿈을 꾸었고, 가을걷이가 끝나면 돈 벌러 서울로 올라가기도 했다. 그 모두가 가족을 책임지기 위한 고군분투였다. 하지만 그는 유쾌하고 거침없는 성격이어서 항상 웃었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국어책을 줄줄 외우는 조카를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니는 조카바보이기도 했다.
삼촌이 주었던 믿음과 사랑과 희생은 지금도 작가에게 따뜻한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비록 모든 게 부족했을지라도 마음과 영혼을 풍족하게 채워주었던 삼촌에 대한 기억들을 써내려간 이 책은, 독자들에게 고요한 울림과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다.
■ 작가의 말 중에서
문학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나’의 삶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나를 이해하게 되었고, 열등하게 생각되던 것들이 차츰차츰 나만의 독특한 경험으로 다가왔으며, 창작의 자양분이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묻어두었던 그것을 하나씩 드러내 글로 쓰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된 게 또 있었다. 고단한 삶의 골짜기를 건널 수 있도록 힘을 길러준 최초의 사람, 일찍 아버지를 여읜 우리 형제들에게 완벽한 아버지가 되어주었고, 내 기억 속에 따뜻한 기운으로 남아 나를 나아가도록 밀어준 사람이, ‘삼촌’이라는 사실이다.
올해로 삼촌이 세상을 떠난 지 꼭 50년이 되었다. 삼촌에게 받은 사랑을 영원히 묻어두는 건 염치없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삼촌과 함께했던 날이 내 삶에서 가장 따뜻했던 날들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가장의 무게를 지고 휘청대면서도 살아보려고 노력한 한 청년의 삶, 자식 하나 남기지 못하고 서른아홉 살에 삶을 마감한 우리 삼촌의 삶을, 내 방식으로 기념하고 싶었다. 그래서 살며시 꺼내 맑은 햇살 퍼지는 삶의 마당에 내놓는다. 나누었던 이야기, 받은 사랑, 삼촌의 모습, 짐작되는 것 등, 가슴에 담고 있던 삼촌과 얽힌 이야기를.
■ 작품 속으로
어려운 살림을 일으켜보려고 삼촌은 무던히 애를 썼다. 내가 기억하는 한 그렇다. 남의 땅을 소작하는 것만으로 우리 식구 식량이 부족했다. 그래서 가을걷이가 끝나면 삼촌은 서울로 올라가곤 했다. 설을 쇠러 집으로 내려왔다가 설 지나 다시 서울로 올라갔다. 봄이 되면 내려와 농사를 지을 때가 있었고, 아예 그대로 집에 있다가 농사철이 되면 담배농사에 전념할 때도 있었다.
설 전날 집으로 온 삼촌이 개선장군처럼 서울 이야기를 하면, 나는 자꾸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우리 때문에 장가를 못 가는 것 같아 어린 소견에도 미안했다. 삼촌이 서울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알 수 없다. 막노동이나 아는 사람이 하는 가게에서 일을 좀 하지 않았을까. 그 또한 신통치 않아서 어느 때는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다가 설 전날에야 돈 몇 푼 구해 우리들의 설빔을 사 들고 내려왔을 것 같다. 그러니 자연 막차를 탈 수밖에. 삼촌에게 들었던 몇 가지 이야기를 조합하여 짐작해보면 그렇다. 온 식구의 입과 마음이 자신에게 매여 있다는 그 책임감이 삶을 얼마나 지난하게 했을까. (「막차를 타고」, 16쪽)
삼촌이 집에 있을 때는 언제나 우리들의 연필을 깎아주었다. 하루 종일 일하느라 피곤할 텐데. 그게 조카들의 공부를 도와주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을까. 그런 식으로 사랑을 표현한 것일까. 그때의 사람들은 사랑 표현을 잘 안했던 것 같다. 예뻐도 빙긋 웃으며 머리 쓰다듬어주는 게 다였고. 그래서 삼촌과 특별히 나눈 이야기가 많지 않다. 툭툭 한마디씩 던졌던 말은 있지만.
내가 연필을 스스로 깎아 쓰게 된 것은 5학년쯤부터였다. 농사가 끝나면 삼촌이 객지로 나가는 바람에 동생들 연필도 내가 거의 깎아주었다. 그때 나도 삼촌이 했던 말을 동생들에게 그대로 했다. 맘대로 연필 깎지 마, 손 다쳐, 라고. 연필깎이가 흔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전교생 중에도 그것을 갖고 있는 아이들이 없을 정도로.
삼촌은 가지런하게 깎은 연필을 필통에 넣어주면서, 우리들이 연필처럼 반듯하고 가지런하게 자라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연필 세 자루」, 41쪽)
일자 형 초가집에 방 두 칸, 나중에 직접 벽돌을 찍어 지은 행랑채, 신식 화장실, 자그마한 안마당, 한쪽에 비스듬히 누운 사립문, 나지막한 토담, 뒤란의 싸리나무 울타리, 울타리를 타고 올라가던 황매화, 앵두나무 두 그루, 골담초, 건조실 두 개, 장독대, 옆에 피던 달리아와 백합, 작은 화단. 우리 삼촌과 여섯 식구가 오순도순 살던 옛날 우리 집이다. 이제는 내 기억 속에만 있는.
그 기억의 문을 열면, 삼촌이 감자를 구워 들고 건조실 아궁이 앞에서 우리를 기다린다. 검게 그을린 얼굴로 흐흣 웃으며. 동생들은 정신없이 뛰고 내달리며 시시덕거리고. 할머니와 어머니는 부엌과 뒤란에서 달그락거리며 부지런히 움직이고. 나는 방바닥에 엎드려 숙제를 하고. 달리아와 채송화가 분꽃과 함께 우리 식구들 웃음처럼 피어나고. 옆집 감나무에 매미 소리 시원스럽고……. 삼촌, 당신이 있어 따뜻했던 날들. (「기억의 문을 열면」, 214~2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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