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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사상 미디어서평

[광남일보] 최기종, <목포, 에말이요>

by 푸른사상 2021. 1. 21.

 

"살아온 세월이 너무 커 '목포' 떠날 수 없었죠"
‘목포의 삶’ 남도말로 담아낸 시집 출간 최기종씨
역사 등 생동감있는 방언 구사…남악서 창작 매진

“1980년대 중반 목포에 들어와서 6월 항쟁을 겪었고 전교조 문제로 해직이 돼 거리의 교사로 살아야 했습니다. 1990년대 교육운동과 시민운동을 계속하다가 복직이 돼 그리운 아이들과 해우도 하고, 월드컵 때 아이들과 거리응원에 이어 압해도와 가거도를 거치면서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뀌었네요. 고향 부안 당봉리가 그리운데도 여기 머무는 까닭은 목포에서 살아온 세월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전교조 해직교사 출신이었던 한 시인이 제2고향으로 삼은 목포를 노래하는 시편을 발표해 관심을 모은다. 주인공은 일곱번째 시집 ‘목포, 에말이요’를 3년만에 푸른사상 시선 140번째권으로 펴낸 최기종 시인(65)으로, 그가 20일 인터뷰를 통해 밝힌 소감이다. 

최 시인은 이번 시집에 목포를 배경으로, 남도 특유의 토속적인 방언과 더불어 민중들의 정서, 풍습, 전통 등을 정감있게 담아내고 있다. 이번 시집에는 4부로 구성, 60편의 시 작품이 수록됐다. 표제 역시 말을 걸 때, 시작할 때 하는 ‘에말이요’는 ‘여보세요’의 전남 방언이다. 구수하고 정감어린 남도말이 시집 곳곳에 넘쳐난다. 

특히 일제강점기 식민지 수탈의 거점이기도 했던 목포의 역사와 민중의식을 생동감 있는 방언으로 구사해 목포 문학의 지형도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보통 은퇴하면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패턴에도 시인은 목포를 지키기로 하고 목포에 머물며 문화예술계 및 창작 활동을 펼치고 있다. 최 시인은 정작 목포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로 “정이 들어서”라고 밝힌다. 

그는 구수한 사투리로 “목포살이 손꼽아 시어봉게 삼십육 년이네그려. 그런디 아직도 목포는 생소하기만 허다. 이유는 딱 하나 목포에서 태어나서 자라지 않은데다 학창 시절이 없었기 때문”이라면서 “목포에 계속 남아 살고 있는 것은 그동안 사귄 벗들이 수두룩허고 거리거리 골목골목이 산도 바다도 섬들도 저를 붙들고 있어서다”라고 말했다. 

문학평론가 맹문재 교수(안양대)는 “‘에말이요’의 언어적 가치는 물론, 사회적 가치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목포라는 지역에서 사용하는 방언인 만큼 국어 연구의 기초 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민중들의 친밀감도 볼 수 있다”면서 “표준어를 뛰어넘는 민중들의 정서와 전통 및 풍습 등을 알 수 있다. 결국 화자는 ‘에말이요’란 방언을 연결고리로 삼고 목포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는 것”이라고 평했다.

최기종 시인은 원광대와 목포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 1985년 목포에 들어와 항도여중, 청호중, 제일여고, 목포공고, 목상고 등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은퇴해 현재 남악리에 거주하고 있다. 1992년 교육문예창작회지에 ‘이 땅의 헤엄 못 치는 선생이 되어’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나무 위의 여자’, ‘만다라화’, ‘어머니 나라’, ‘나쁜 사과’, ‘학교에는 고래가 산다’, ‘슬픔아 놀자’가 있다. 목포작가회의 지부장과 전남민예총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목포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장을 맡고 있다.

 

광남일보, ""살아온 세월이 너무 커 '목포' 떠날 수 없었죠"", 고선주 기자, 2021.1.21

링크 : www.gwangnam.co.kr/read.php3?aid=161113495137647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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