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소개
“나도 어찌 보면 참 지독한 넘이다. 나는 지난 30여 년 넘게 하 모진 세월에 이리저리 아프게 찔리며 여기 저기 돌개바람처럼 떠돌아 다녔다. 그동안 쓴 시도 거의 다 잃어버렸다. 세월이란 바늘에 찔릴 때마다 ‘악! 악!’ 악을 쓰며 그 뼈아픔을 바느질하듯이 적었던 시작노트도 그 모진 세월을 비켜갈 수 없었다. 나는 1978년 공고를 졸업한 뒤부터 창원공단에서 8여 년이란 세월을 현장 노동자로 보냈다. 그 뒤 서울로 올라와 문인단체, 출판사, 문학대학 등을 거치며 제법 자리를 잡는 듯했다.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1990년대 허리춤께 어쩔 수 없이 출판사를 차렸다가 3년 남짓 만에 아파트까지 경매로 날리며 쫄딱 망하고 말았다. 나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여우 같은 아내와 토끼 같은 두 딸과도 흩어져 살아야 했다. 남들은 ‘기러기 아빠’니 ‘독신남’이니 하면서 팔자 좋은 소리를 지껄이고 있지만 나는 ‘기러기 아빠’도 ‘독신남’도 아니다. 지금 창원에서 작은 딸 하나를 데리고 살고 있는 아내는 어쩌면 남편이란 넘이 명절 때나 부모님 제사 때 가끔 찾아오는 ‘먼 친척’ 혹은 그저 지나치는 ‘길손’쯤으로 여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에서야 겨우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큰딸 하나를 데리고 서울 면목동 반지하 셋방에서 살고 있지만 사실 크게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오십대 허리춤이 된 지금까지 그래도 별 탈 없이 멀쩡하게 살아있으니 내가 나를 보기에도 참 지독한 넘이라 하지 않을 수 없지 않겠는가. ‘종이학 한 쌍이 깨어날 때까지’라는 이름을 단 이 책은 내가 공고를 졸업한 뒤 화학분석2급기능사 자격증을 들고 8년 동안 창원공단에서 일하면서 느꼈던 심상을 꼼꼼하게 적은 일기장이다. 다시 말하자면 20대 새파란 청춘을 바친 한 노동시인이 이 세상에 던지는 ‘공장일기’라는 그 얘기다. 그렇다고 케케묵은 이야기는 아니다. 이 이야기는 21세기에 접어든 지금도 공단 현장에서 숱하게 일어나고 있으니까.”
-‘출근하는 글’ 중에서
* 추천의 말
박노해, 백무산, 정인화 등과 함께 1980년대의 산업 노동시를 이끈 이소리 시인의 젊은 날들을 담고 있는 『종이학 한 쌍이 깨어날 때까지』는 슬프면서도 진한 감동을 준다. 화학분석 2급 기능사 자격증을 들고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창원공단에서 8여 년 동안 동료들이 손가락을 자주 잃는 프레스실, 하루에 서너 번씩 마스크를 갈아 써야 하는 연마실, 작업복이 기름과 쇳가루 범벅인 밀링 선반실 등에서 겪었던 일들은 안타깝고도 서글프지만, 그 고통과 불안과 절망을 품은 노동자 시인으로 나아갔기에 숙연해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 산문집을 통해 가난한 가정 형편과 ‘조국 근대화의 기수’라는 독재 정권의 기만적인 정책으로 인해 한 젊은이가 어떻게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또 산업 노동자가 되는지를 알게 된다. 또한 안전사고, 해고, 권고사직, 시말서, 일방적인 부서 이동, 월급 미지급 등으로 노동자들의 인간 가치가 얼마나 유린되고 훼손되는지를 알게 된다. 나아가 여전히 고통 받고 있는 노동자들이 왜 어깨를 걸고 독점 자본에 맞서야 하는지를 깨닫는다.
『종이학 한 쌍이 깨어날 때까지』는 한 노동자 시인의 공장 일기 차원을 넘어선다. YH무역 여성 노동자 농성 사건, 마산·창원 위수령, 10·26사태, 비상계엄령, 광주민주화 항쟁 등의 역사적 상황을 노동자 시인의 시선으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의 불꽃을 노래한 이소리 시인의 이 산문집은 시대적이고 역사적인 기록이라는 의의까지 지닌다.
- 맹문재(시인, 안양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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