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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사상 미디어서평

[세계일보] 김장수, 오스트리아 최초의 여왕 마리아 테레지아

by 푸른사상 2020. 8. 19.

전례없는 위기 극복…마리아 테레지아에게 배운다

오스트리아 최초의 여왕 마리아 테레지아/ 김장수/ 푸른사상/ 2만6000원

올해는 18세기 유럽 열강에서 오스트리아를 견고히 지켜낸 뛰어난 정치가인 마리아 테레지아(1717~80)가 서거한지 240주년이 되는 해다.
 
그는 오스트리아의 최초의 여왕이자 이 국가의 의무교육 제도를 최초로 실시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자신의 막내딸로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이로 비극적으로 삶을 마친 마리 앙투아네트보다 인지도는 낮다.
 
국고 낭비와 반혁명 시도 등 사후 평가가 부정적인 막내딸과 다르게 마리아 테레지아는 오늘날도 ‘오스트리아의 국모’로 추앙받고 있다.

그가 이런 위상을 쟁취할 수 있던 이유를 이 책은 명확하게 드러낸다.
 
왕위를 승계할 아들이 없는 선친인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6세는 타계 전 프로이센을 포함한 주변 국가들에 딸의 왕위 계승권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서약서인 국사 조칙을 받아낸다.
 
그럼에도 여성의 왕위 계승을 금지하는 ‘살리카 법’에 따라 프로이센 왕국의 프리드리히 2세가 프랑스, 스페인 등의 여러 나라와 연합하여 약속을 어기고 전쟁을 선포한다. 이렇게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1740~48년)이 발발한다.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에서 패배한 오스트리아는 빛더미에 오르고 국제적 지위 역시 저하됐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국가 재건을 위해 내정과 군제, 교육 등 다방면에서의 국가 개혁에 박차를 가한다. 특히 전통적으로 적대적인 관계인 프랑스와의 관계 개선을 도모해 동맹을 맺어 ‘외교 혁명’이라 평가를 받는데, 주변 강대국들과 까다로운 외교 관계에 놓인 대한민국 상황과 견주면 더욱 몰입이 되는 대목이다.
 
오스만투르크와의 전쟁(1526년~1791년), 프로이센과의 전쟁 등 오랜 전쟁으로 국가가 존폐의 위기에 처했을 때 마리아 테레지아의 탁월한 인사 등용은 재건의 동인이 되었다.
 
정치적, 당파적 이해를 떠나 필요하다면 출신 지역과 관계없이 인재를 등용한 그의 강단은 온갖 차별로 적재적소에 인재들이 빛을 바라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현재에도 시사점을 준다.
 
전세계적으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사태와 자연재해 등으로 어려운 이때 국란을 극복한 마리아 테레지아의 리더십이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다. 

 

세계일보, "전례없는 위기 극복…마리아 테레지아에게 배운다", 김찬영 기자, 2020.8.18

링크 : www.segye.com/newsView/20200809511403?OutUrl=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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